이조 혜가가 초조 달마에게 말했다.

제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실 수 없을까요?”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얻을 수 없었다는 혜가에게 달마가 말했다.

네 마음을 벌써 편안케 해주었느니라.”

바로 지금 여기로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 하였으나

그 마음이란 없다.

지나간 마음도 오지 않은 마음도, 그렇다고 지금 마음이 실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없는 실체를 어찌 가져온단 말인가!

아침 해건지기에서는 몸을 풀고 대배를 하고,

그리고 바로 그 마음을 다루었다.

 

민주지산 올랐다.

아이들과 오를 땐 버스를 타고 물한계곡주차장에서 내려 황룡사에서 시작,

가장 짧은 길 쪽새골(속새골)로 걸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른들과는 황룡사에서 미나미골로 올라 삼마골재로 해서 삼도봉에 이르고

은주암골로 내려오거나,

석기봉 지나 민주지산까지 갔다가 쪽새골로 내려오거나.

혼자 오를 땐 황룡사 쪽에서 시작해서 민주지산 갔다가 무인대피소에서 비박을 하거나.

어쩌다 각호골로 올라 각호산을 올랐다 민주지산까지 가서 쪽새골로 내려오기도.

그 숱한 민주지산 산오름에서 도마령으로 출발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우리를 부려주고, 도착지에서 실어주어야 했으니까.

드디어 도마령에서 올랐다.


나를 데리고 오르는 산오름이었다.

산 아래서 천지로 나를 끌고 가던 것을

산에서는 내가 나를 챙겨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도 산에 간다.

조릿대들이 길가에 늘어섰다.

산 아래서 생각했던 조릿대는

산에서 만나는 조릿대가 아니다.

산에서는 조릿대를 오롯이 만난다.

산 아래서 생각했던 것들을

산에서는 그렇게 온전히 마주한다.

 

각호봉에서 한숨 돌렸다.

바위틈에 자리를 잡고

멀리 달려온 백두대간을 본다.

팔을 뻗으면 잡힐 듯한 덕유산 향적봉이

겹겹이 산을 거느리고 펼쳐진다.

민주지산 쪽에서 각호봉에 이르던 거랑

도마령 쪽에서 각호봉에 닿는 건 또 달랐다.

, 그렇겠다.

어디 서 있으냐, 어디를 바로보느냐가 다를 밖에.

 

드물게 사람들을 만났다.

도마령에서 각호봉까지만 왔다 가기도 했고,

골이 여러 곳이라 갈라지는 곳에서들 다른 길로 내려서기도 했다.

같은 산을 방문한 객들이니 우린 얼마든지 말을 섞을 수 있었기에

뻔뻔하게, 순전히 동행이 있는 까닭이었겠지만,

마르디 히말 트레킹기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를 소개하기도.

맞다, 내가 쓴 책 그거.

홍보에 그리 열심이지 못한, sns도 하지 않아 출판사에 참 덕 되지 못하는 저자인지라

그나마 산에서 그리라도 했더랬네.

 

무인대피소에서 늦은 낮밥을 끓여먹을 참이었다.

이런! 쓰레기, 쓰레기라.

산에 오는 사람들은 다 좋다시더만...”

무안해라.

버스로 무더기로 온 관광인들이여.”

치우기 시작했다.

난로에 태울 것은 태우고,

비닐류들이며 병들은 한쪽으로 모으고.

그때 밤을 나기 위해 온 다섯의 무리와

셋의 사내가 들어섰다.

같이 치웠고,

밤새 난로에 불을 지필 나무들을 해왔다.

 

부지런히 내려섰다.

우리는 잘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황룡사로 우리를 태우러올 차랑 만나기로도 했으니까.

민주지산으로 오지 못했던 지난 두 해,

쪽새골로 내려서는 1km의 아름다웠던 흙길 돌길이

일자로 된 돌계단 길로 바뀌어 있었다. 아쉬웠다.

돌아와 파전이며 막걸리며 놓고 하산주를 마셨더라.

 

밤마다 자신에게 짐 같았던 제 삶의 큰 덩어리를 풀었다.

한밤에 도착한 이를 맞아 같이 새벽녘에야 잠자리로 가기도.

다가오는 새 학년도를 위해 모두가 마음을 다진 사흘이었다.

이번 어른계자의 사흘 밥상은

보은의 현철샘이 보내온 것들로 가득했다.

김치며 고기며 대파며 오골계란이며 과일이며 곡주에다 주전부리까지.

다시 감사!

더하여 이번 일정이 산오름으로 가능할 수 있도록

다른 시간으로 자리를 옮겨준 가정에도 특별히 감사!


그나저나 단호박죽을 넉넉히 끓여 

가는 걸음에 챙겨준 것을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차에 남겨놓고 갔더랬다.

두고 간 마음이려니 생각했다.



도마령-각호산(1,202m), 1.4.km

각호산-민주지산(1,242m), 3km

민주지산-황룡사, 4km / 총 산행거리 8.4km(황룡사-물한계곡주차장, 0.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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