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23.물날. 소나기 몇 차례

조회 수 370 추천 수 0 2021.07.12 02:45:38


 

달 보러 가자!”

흐린 하늘이었으나 남쪽 하늘에 달의 윤곽이 보이는 밤이었다.

그거라도 보겠다고 마당으로 나갔다.

보름은 내일이나 벌써 둥근달.

마당에 내려서며 주춤주춤 신발을 신는데,

, 달 주변만 대문이 열리듯 훤해지더니

달이 온전히 제 모습을 보였다.

그만 들어갈까?”

제법 한참을 섰다가 이제 들어오려는데,

어머! 까만 구름덩어리가 아래에서부터 올라 달을 가리는 거라.

뜻밖의 선물 아니어도 충분히 벅차고 마음 어루만져주는 자연일진대

이런 신비한 순간으로 고명이 얹힌 감동이었다.

 

자정 지나 점주샘과 아침뜨락에 들었다.

지난주부터 내리 하는, 일정이랄 것 없는 일정이다.

멧돼지나 고라니에게 사람 소리를 전하는 일이었고,

또한 수행이었다.

대해골짝 모든 것이 안개에 잠겼다. 우리도 잠겼다.

안개 속을 헤엄치고 나왔다.

 

아침수행을 끝내고,

기분 좋은 밥상을 물린 뒤 아침뜨락으로 갔더랬다.

, , 풀이었다.

어제도 뽑았고, 오늘도 뽑을 것이고, 아마 내일도 그럴.

오늘은 아래쪽에서부터 해나가기로 했다.

들머리 돌계단을 뽑았다.

지난 4월 빈들모임에서 품앗이샘들이 뽑았고 5월에도 한 차례 맸고,

보름수행을 들어왔던 희중샘도 뽑고 나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처럼 다시 내민 풀들이라.

돌계단 옆 도랑 너머까지 키 큰 풀들을 쳐냈다.

멀리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 소리가 났고, 곧 나가는 게 보였다.

일어설 참에 준한샘이 들어왔다.

트럭에는 아침뜨락에 측백나무 133그루를 심은 이들 이름이 새겨진 돌이 실려 있었다.

연어의 날에 맞춰 제막식인 양 놓을 참.

염두에 둔 자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실물을 보고 놓을 자리를 다시 가늠해보고, 자리를 정리했다.

오늘은 거기까지만.

햇발동에서 낮밥을 모여 먹고,

마침 쉬는 참에 소나기 쏟아졌다.

더 쉬어가라고 비는 좀 더 이어졌다.

다시 풀들의 나라로 갔더니, 소나기가 가던 걸음을 되돌려 또 왔다.

오전 일이 고되었던 걸 알았나 보다.

덕분에 잠시 책을 좀 읽을 여유들이 있었네.

 

달골에 CCTV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들이 있었다.

1차로 하다샘이 몇 곳의 연락처를 추려 보내왔고,

기락샘이 다시 두 곳으로 꼽아 의견을 내주었다.

어제 한 곳을 정해 연락을 했고, 현장방문을 왔다.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손전화로 밖에서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녹화와 재생 기능이야 당연 되는.

아침에 눈을 떠서, 설치한다면 어여 해서 어여 잘 쓰자 싶었다.

오늘 신청서에 사인을 했다. 내일 작업하기로.

 

저녁을 먹고 점주샘과 각각 제습이와 가습이를 데리고

달골까지 산책을 했다.

아침뜨락에 습이들 흔적을 남기기로.

습이들이 저들 어릴 적 살았던 곳까지 오기는 처음.

 

연어의 날을 앞두고 바깥샘들과 오고가는 연락들도 여럿인데,

시골살이를 준비하는 이와

상담교사의 고단함을 전하는 이의 전화도 들어왔다.

벌써 20대 중반이 된, 어릴 적 계절마다 계자를 다녀가던 이가

다음 주 들리겠다는 연락도 있었다.

물꼬가 위로라니 고맙다.

 

생이 참 좋다!”

생이 좋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복이라.

벗이 들어와 연어의 날을 같이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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