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90일수행 여는 날.

별스런 과정은 아니다. 늘 하는 수행이고.

순전히 멧골 모진 추위 때문에 만들어진 동안거이고,

그저 사람맞이는 덜하고 안으로 더 다지자는 여정.

수행에 조금 더 힘을 싣는 정도.

언제나처럼 대배 백배가 들어있는 해건지기로 아침을 열고,

밤에는 지느러미길을 걸었다.

느티나무 삼거리에서 매트가 놓인 지느러미길을 걸어

아침뜨락 들머리 계단 앞에서 돌아 나오면 150보였다.

예순일곱 바퀴를 돌면 만보가 되겠고나.

 

일종의 자책이랄까.

조명등을 하나 만지고 있었다.

투명 유리인데 밖을 닦아도 한 쪽이 뿌옇게 보였다.

다시 닦았다. 나아지지 않았다.

해체했다. 쇠로 된 클립이 유리를 잡고 있었는데, 피스 세 개에 의지하고 있었다.

잘 풀고 잘 씻어 말렸다.

당연히 피스를 잘 챙겨 드라이버와 쇠 클립과 함께 식탁 위 깔개 위에 잘 두었지.

완전히 물기가 마른 뒤 조립에 들어갔다.피스, 특히 그것이 작은 것이면 더욱, 조심해서 작업한다. 풀 때도 또 조립할 때도.

방심하면 어디 달아나버리니까.

그런데, 개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셋인 걸.

바닥에 수건이나 마른 걸레를 펼쳐놓거나

그것도 아니면 큰 달력이나 신문을 펼쳐놓고 작업하는 걸,

세 개라고 대수롭잖게 생각하며 식탁에서 선 채로 작업을 이어갔다.

어라, 피스가 하나 없다!

바닥에 엎드려 싱크대와 식탁 아래를 얼마나 찾았던지.

미처 보지 못했던 먼지와 거미줄 사이로 불을 다 비춰보았지만, 없었다.

진주 난봉가 마지막 구절처럼 내 그럴 줄 왜 몰랐던가를 외치는 순간이 어디 한 두 번일까.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하며 살아간다.

, 하고 깨닫는 순간 이미 늦어버리는 것만도 숱하다.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 구박하기, 한탄하기, 미워하기, ...

 

, 이제 수습할까.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누가 다친 것도 아니고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피스는 두 개 만으로도 쇠클립과 유리를 잡아줄 수 있다.

좀 찝찝하다는 게 문제인데,

그건 마음이란 말이지.

고정이 걱정스러우면 비슷한 크기의 피스로 대체해도 될 것이다.

물론 이 피스는 끝이 뭉툭하게 마감된 것이지만

대체할 수 있는, 내가 가진 다른 피스들은 끝이 뾰족하겠고,

색상도 차이가 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불완전한 상태로 두는 것보다 안정감을 더 얻을 수 있을 거고.

, 일단 당장은, 또 꽤 오랫동안도 그리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은 아니다.

, 제발, 그렇다면 좀 덮어두기.

하여 눈 딱 감고 조립하고 달았다.

두어 차례 생각이 났으나, “, 이제 그만!” 하고 말이지.

 

한밤에 물을 마시러 갔던 참이다.

식탁의 과일바구니 곁에서 뭔가 반짝한다.

피스다!

마치 어디서 이제야 온 것처럼.

아까도 거기 있었을 텐데,

식탁보 하얀 무늬 사이에서 눈에 띄지 못했던 모양.

다행하다.

찾아서도 그렇지만, 내가 질기게 그때까지 찾고 있지 않아서.

그거 가르치려고 숨었다가 나왔나 보다.

 

똘똘똘 엄지 한 마디만큼 말린 뭉치를 물에 적시면 손수건이 되는 물건을 봤다.

어제 깔깔했던 목이더니 감기가 그렇게 몸에서 불었다,

목도리를 하고, 소금물로 가글하고(이건 우리말이 뭔가...),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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