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2.물날. 맑음

조회 수 368 추천 수 0 2022.11.03 23:29:06


, 가끔 하늘을 보러 마당에 나선다.

밖은 온통 어둠에 잠긴 멧골,

멀리 골목에 켠 가로등이 별처럼 밤을 지킨다.

현관문을 여는데, ! 저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잠시 대치상황처럼 서로 어리둥절하다가

저가 먼저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뒤뚱거리며 달아난다. 너구리다!

산짐승들이 그리 가까이 다니는 곳이다.

그러니 아침뜨락은 멧돼지와 고라니들의 운동장.

어제까지만 해도 아시바 파이프로 기둥을 세우고 그물을 두르거나,

마침 들어와 있는 콘크리트바닥 보강철물을 세우거나,

아침뜨락을 전체적으로, 측백너머로 울타리를 치자는 계획을 요리조리 따졌는데,

결국 제습이를 아침뜨락에 올려보기로 했다.

그게 제일 싸요!”

몇 사람의 조언이었다.

힘은 더 들겠지만 따로 비용이 들 일은 아닐.

집은 어쩌지? 어디에? 어떤 구조로 움직이게 하지? ...

 

더딘 아침이었다.

일어나려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통증이 시작되었다.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바로하고 더 누워있었던 아침.

심각한 문제로 보이지는 않고 뭔가 회로가 잠시 엉킨 그런 정도.

다행히 오래지 않아 정상작동이라.

그제야 해건지기.

시간이 길어진 요즘이다. 택견을 더하기 때문.

오늘은 움직임의 강도의 조금 낮춰서.

 

기술교육현장.

오늘도 어제에 이어 비닐하우스 부품들을 정리하는.

그리고 용접 잠깐.

이제 2m 각관에 구멍을 안낸다.

띄엄띄엄 하는 일이라 몸에 통 붙지는 않는.

시골에서 용접은 자주 요구되는 일인데, 익혀지기를.

 

제주도에서 하는 컨퍼런스에 가기로 했다.

사람들 많은 곳은 아무리 좋아도 피하고프다.

제주도 안 가고 싶다 한 게 벌써 대여섯 해는 되었나 보다.

그래도 일이 생기니 또 가게 되네; 1112일부터 가서 며칠 머물.

가는 길에 강연이 잡혀도 좋을 테지.

몇 곳에 메일을 보내기로 한다.

 

랩탑에서 지나간 글월을 하나 찾는 중에 살필 문장이라는 제목을 단 파일이 보였다.

옮기기만 한 문장인지, 내 생각을 더한 문장인지 경계가 불분명해지기도.

아마도 밑줄긋기 했을 테고, 그 끝에 몇 줄 생각을 매달았음직.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류동민, 웅진지식하우스)

p.63 담론의 정치적 효과:

보험 상품 판매 영업사원을 자산관리 매니저, 파이낸셜 플래너로 부름.

미국 은행들에서 그저 일상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결정권한 밖에 없는 중간관리자급의 직원을 부사장보(assistant vice president).

물론 대중목욕탕의 때밀이를 세신사로 부르듯 보통 사람들이 기피하고 천하다고 생각하는 직종에 대해 차별과 편견을 제거하기 위한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많은 경우 이러한 담론은 현실의 모순을 덮어 감추거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 해고를 구조조정, 가격인상을 가격현실화

임금동결 때로는 삭감을 경영합리화...

 

p.68 자본론 1권에서 마르크스는 시장에서 상품이 판매되는 과정을 목숨을 건 도약이라고 표현. 이 표현은 키르케고르가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쓴 표현.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 또한 나를 좋아할 때 비로소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유독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그러므로 목숨을 건 도약일 수밖에. 그런데 이 목숨을 건 도약의 독일어 원어인 

‘salto mortale’는 공중제비라는 뜻을 가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데 성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 노동자 자신이 성공적으로 

공중제비를 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중제비를 제대로 넘으려면 노동자는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입증해야만 한다...

 

p.240 <크랙 캐피탈리즘>에서 존 홀러웨이는 우리들 모두가 시장 매커니즘에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일상에서의 균열내기를 강조. ... 우리는 

일에서 즐거움과 보람의 요소, 타인의 일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조금씩이라도 키워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맞설 때 가끔씩이라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도록 노력하는 것, 비정규직 노동을 반면교사로서가 아니라 최소한 배려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일을 밥벌이의 지겨움으로서만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잠깐씩이라도 만들어내도록 노력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의 일과 삶을 더디게나마 

바꾸어나갈 것이다.

 

결론은 한 달에 백만 원 벌이라도 죽도록 일해야 하는사회에서 경제학자의 대안은 없는 대신 일하는 이들의 구체적인 삶을 바라보면서 

개인 차원에서나마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에 관해 말했다. 이 지겨운 밥벌이를 서로 조금씩이라도 이해하면서 순간의 짧은 즐거움이나 

보람이라도 더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잔다. 소비자로서 행동할 때 약간만 톨레랑스를 갖도록 노력하자, 어쩔 수 없이 죽도록 일해서 먹고살기의 

당사자가 나나 내 가족일 수도 있다, 노동자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일하는 이들 모두가 결국엔 노동자라는 사실부터 깨닫자,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노동자 또는 누구도 되고 싶지 않은 노동자가 

사실은 먹고 살아보겠다고 오늘도 아등바등 일하는 우리들 대부분임을 깨닫자,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로부터 바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먼저 그 관계를 일방적으로 주어진 틀 속에 가두어버리는 언어로부터 벗어나자.

그리고 민주주의가 투표장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 속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움직이도록 해보자,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바틀비는 고용주의 명령에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prefer not to)”라는 대답을 반복한다. 물론 밥벌이를 하면서 부당해 보이는 명령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바틀비가 결국 감옥에서 죽어가는 결말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지만 이 딜레마가 우리의 먹고사는 현실을 치명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는 안 하는 편을 택하도록해보자....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해야 할 것’ ‘해서는 안 될 것’, 그리고 안하는 편을 

택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우리의 자그마한 실천이 쌓여갈 때 우리의 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보할 것이다.

 

허무한 결론이고 너무나 미약한 결론이었네, 배신감이 느껴지는.

결국 별 할 게 없다는 말이었고,

하지만 저버리지 못할 약속처럼 우리가 이 시대 지켜야만 할 인간성에 대한 호소로 끝났네.

 

그러나 다시 읽는 지금은 그 결론이 창대하게 보이기도.

실천이란 그런 영역.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걸 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 인간이라.

하여 전투적인 느낌으로 다시 읽나니.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해야 할 것’ ‘해서는 안 될 것’,

그리고 안하는 편을 택해야 할 것을 구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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