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참가기

조회 수 2430 추천 수 0 2003.12.26 11:28:00

대해리 이장님이랑 총무님, 그리고 보건진료소 소장님이
어느 이른 아침 면담을 요청해오셨습니다.
영동군에서 전국노래자랑을 하게 되었는데
동네마다 책임지고 하나 이상씩을 내보내야 한답니다.
우리 동네에선 자유학교 물꼬에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저희가 가면 어떻겠냐 물어오셨습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였지요.
"전국노래자랑, 그거 정말 명품입니다."
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말 촌스럽고, 도대체 거기 나오는 사람들 코드가 이해가 안된다니까."
하는 부정적인 얘기도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들끼리도 얘기 많았지요.
"대안교육 바닥 너무 진지하잖아,
좀 비틀고 유쾌한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애."
그 정도로 생각을 모으고 노래 연습을 하였지요.
동네어르신들은 자주 잘되어가냐 물어오시고.
뱃노래와 군밤타령을 며칠 저녁 불러댔지요.

예심이 있던 날 아침,
그 장관을 그 감동을 어찌 설명해얄지...
아이들은 조각나무들을 옮기고 있었는데,
손에 딱 쥐기 좋은 나무토막들을 찾아내
박자맞춰 딱딱거리며 학교 떠나갈 듯 노래들을 불렀지요.
불렀지요, 불렀지요.
"목 쉴라, 고만해라."

어른들은 물꼬 샘들 같이 입는 민복 웃옷을 입고
(서울역에서 애들이 우리 못찾을까 입는 옷)
아이들은 바탕산 잠옷을 입기로 하였습니다.
없는 녀석들을 위해
바탕 상머슴 병욱샘이 영동 난계국악당까지 배달도 오셨댔지요.
그 옷, 무대에 세우니 참말 예뿌데요.

노래자랑,
그게 그렇게 신나는 축제인 줄 몰랐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한번이나 봤을까,
그런데 예심이 더 재밌더라니까요.
다들 그러더이다.

옹헤야를 뒤에 받쳐주는 이 없어 혼자 부르는 할아버지껜
관객들이 뒷소리가 되어주고,
아는 이 모르는 이들이 하나가 되어가는데,
하하하, 정말 잔치더라구요.
"수고하셨습니다!"
로 탈락을 알리는 목소리에
처음엔 수줍어하던, 노래부른 이들도
차츰 편하게 그 자리를 즐기고
"합격!"
소리에 같이들 기뻐하는 그 신남들...

심사를 세 사람이 하고 있었는데
주로 가운데 앉은 이가 중심인 듯 하더이다.
피디라고 해두지요, 에이디쯤이겠다 싶기도 하고
성질 안좋게 생겼던데...
노래자랑 십년 공력이 그냥이 아니었겠구나 싶데요.
잘 합디다.
프로 냄새가 푹푹 하더란 말이지요.
처음부터 영 아니겠다 싶은 할머니의 한 노래를
그 할머니가 제 신명을 잘 풀고 갈 수 있게
한참을 들어주기도 하고...

231번까지 접수가 되었고 접수를 미처 못한 이들도 무대에 올리데요.
우린 203번이었습니다.
우리 구슬이가 마이크를 잡았지요.
"대해리 마을주민 대표로 왔습니다."
아카펠라로 군밤타령을 불렀지요.
노래가 끝나고
이 심사위원 한참을 말을 안하는 겁니다.
잠시 자리가, 그리고 무대가 술렁이는데
"수고하셨습니다!"
아, 이러는 겁니다.
우리는 비질비질 웃음을 흘리고
관객석 한 구석에선 갑자기 고함소리 들렸지요.
"왜?"
"웬만하면 해주겠는데 도저히 음정이 안맞아서 안되겠어요."
그래요, 어쩜 그리 음들을 못맞추던지...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부조화란 걸 모르고 갔을까요?
조화롭게 하기 위해 노래 잘하는 이들만 무대에 오르는 게
우리에게 맞는 일이었을까요?
...
다른 때라면 객기를 좀 부려서라도
뚜벅뚜벅 걸어가서 우리 준비한 다른 곡도 있으니 들어봐 달라고도 했겠는데
우리 아이들, 그리고 우리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노래를 듣는 내내,
그리고 우리가 준비하는 내내
정말 신났거든요.

무대를 내려 객석 통로를 걸어오는데
여러 사람들이 인사를 합니다.
어디서 왔느냐에서 잘했다에 이르기까지.
밖을 나오니
영동감연구회장님과 생활개선회장님이 맞아주셨습니다.
아이들 위로 오뎅과 핫도그를 사주셨지요.
어떤 할머니 들어오셔서
노래 아주 잘들었다 인사도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아이들은 '수고하셨습니다'의 서운함을
천막 안에서 오뎅 국물 앞에 놓고
자유학교 물꼬 밥노래를 열창하며 달랬지요.
그냥 오기 섭섭하여
감축제 준비하는 곳도 돌아보고
학교를 위해 나중에 잘 쓰이실 분들도 만났습니다.
장아찌 연구하시는 분, 목공예 하시는 분, 감 염색하시는 분...
아이들 오랜만에 읍내 나왔다고
아무래도 고기를 멕여 보내야겠다
임산 어르신 남백현님과 강정희님이 맛난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돌아오는 차안,
우리는 아이들과 열택샘이 진행하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청취 혹은 시청했지요.
"수고하셨습니다!"
"합격!"
우리의 신명에
남아서 일을 하던 품앗이들이 도대체 예심탈락을 믿기지 않아 하시데요.
밥을 해주러온 정근이 아빠는
돈까스를 직접 준비했는데 상차림 못해준 걸 못내 아쉬워하고.
"그거 합격해도 우리 못갈 판이에요."
녹화를 한다는 흙날에 학부모 면담이 네 건에다
그게 1시에 녹화라지만 출연자들은 9시부터 모여 녹화연습을 한다데요.
물꼬로선 그런 거 또 못견뎌하잖아요.
위로의 말이지요,뭐.

아이들의 노래는 한밤에도 이어졌습니다.
자라 자라 하고서도 한참을 더 불러댔지요.
정녕 무엇을 더 바란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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