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조회 수 1909 추천 수 0 2008.01.02 17:18:00

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눈이 밤새 내렸습니다.
“들어만 오면...”
예, 아이들이 들어온 뒤에야 눈 아무리 온들
쌀 있고 김치 있고 장작도 쟁여두었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 라구요.
들어오는 게 걱정이지요.
아이들을 데리러 나갈 아침에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발 헤치고 몇 샘이 역으로 아이들 마중을 갔습니다.
너무 추웠으나 부모님들 분위기가 좋았다 합니다.
어른들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아이들 분위기와 묘하게 일치하지요.
하기야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 하니까요.
씨도둑 없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요.
해서 어느 때보다 수월할 것 같은 계자입니다.
그런데 형식이가, 첨 온 아이입니다,
샘들 보자 마자 그러더라지요.
“다음 여름에도 올 거예요.”
“너 아직 학교도 안 가봤잖아.”
뭘 보고 이렇게 말하게 됐을 까나요...

들어오는 차안,
정식 민상 현규 민규, 네 녀석이
버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지요.
“아저씨 텔레비전 좀 켜주세요.”
성화였던가 봅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딱 한 마디 하셨는데,
그만 잠잠해지더라나요.
까만 선글라스를 낀 덩치 있는 아저씨,
무게 잡고 저음으로 그러셨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뭐하는 거야, 녀석들!”

왔던 아이들이 서른에 가까우니
손이 갈 일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한 집안, 사촌에 이웃사촌, 한 동네,
그렇게 고리에 고리를 이어가며 계자에 아이들이 모이지요.
오빠와 같이 자려는 김현지와 따로 자겠다던 동하가 왔고
여름에 혼자 왔던 해온이가 다시 자누와 함께 왔습니다.
지난 겨울 지독하게 아픈 기억이 진한 자누입니다.
누워있느라 어느 아침 달골에도 오르지 못해
포도즙도 얻어먹지 못했던 자누.
“꼭 두 개 먹어.”
용범이 용하가 또 나타났고,
이번 계자가 마지막이 될 6학년 수현이 동생 현진이랑 같이 왔지요.
“엄마가 대단하시다. 6학년들 죄 학원에다 어학연수 보내던데...”
진주대표 하수민 선수와 상헌 선수가 동생 현정이를 달고 왔고,
한슬이가 드디어 일곱 살 동생 슬찬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영범이 재준이도 일곱 살 동생 단아, 재현이를 데리고.
승엽이 채현이가 역시 태오랑 같이 왔으며
재은이랑 유수민이, 범순이와 철순이 역시 같이 나타났지요.
“어, 양동진 오빠는?”
“호주 갔어요.”
그래서 광주대표 양현지는 혼자 나타났고,
쌍둥이 세인 세빈이 이젠 머리를 달리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왔습니다.
성수 경준이가 방학행사처럼 여전히 왔고,
지난 여름 첫발을 딛고 온 상훈이도 또 왔네요.
“아유, 저걸 어찌 보냈디야...”
여섯 살(그러니까 해가 바뀌면서 일곱 살이 되는 거지요) 우재가
세원 세현 외사촌누나들 틈에 끼여 오고 있었습니다.
“형제임이 틀림없구나.”
현규와 민규가 첫걸음을 했고,
뭔가 어색하고 잔뜩 움츠린 온이와 유(오누이겠지요.),
형제는 아니나 뭔가 아주 절친하고 비스무레할 것 같은 정식이와 민상이,
혼자 왔다지만 결코 분위기가 눌릴 것 같잖은 윤준이,
느리지만 끝까지 할 말 다하는 진석이,
야물게 보이는 유나와 잘 웃는 형식이도 처음입니다.
일곱 살부터 왔던 3학년 지인이야
새끼일꾼 언니를 따라 어제부터 와 있었지요.
턱 밑에서 아이들이 자잘거립니다.
비로소 내가 내 자리에 서 있는 기분,
이런 순간들이 정토이고 천국입니다,
바람 매운 속에 눈 여전히 펄펄거리고 있었지만.

더 거친 바람 속에 모두 난롯가나 구들만 질 것 같지만
웬걸요, 샘들과 함께 눈발을 헤치고 축구도 합니다.
민규 윤준 태오 형식 철순 재준 재현 범순 재현 승엽 성수 ...
세찬 눈보라에도 채현 세인 세빈 여성동지들 활약 두드러졌지요.
참 징허게도 합디다.
뒤늦게 붙은 상범샘, 자꾸 골문 앞에서 막혔는데
마음 넓은 민규가 위로했다지요.
“괜찮아요, 실수 할 수도 있지요.”

모두 둘러앉아 인사가 있었지요.
“너는 엄마 닮고 넌 아빠 닮았구나.”
“어, 어떻게 알았어요?”
세원이와 세현이가 놀랍니다.
“넌 아빠 닮고 넌 엄마 닮았지?”
“어, 우리 엄마 아빠 알아요?”
재준이랑 재현입니다.
우리 정도의 나이면 이미 알아버리는,
확률적으로 별로 실패할 리 없는 것들이 있지요.
노인네 흉내를 잔뜩 내며 아이들과 앉았습니다.
“예순이세요? 한 오십밖에 안된 것 같은데...”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자기가 관심 있는 것, 만들고 싶은 세상, 바램들을 담아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글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학교네.”
유나는 물꼬를 담았습니다.
그 운동장에 공을 차는 아이들을 죄 담았지요.
“자기 한 번 찾아보자.”
축구를 했던 아이들은 자기 모습을 찾기 바빴습니다.
“나는 그때 화장실 갔더니...”

두멧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우리가 지낼 산골마을에서 학교는 어디쯤이고
우리를 둘러친 곳은 어떤 덴가 보러 갑니다.
눈이 멎어주었지요.
마을을 돌아 큰형님느티나무 앞에서 눈싸움을,
빈 논에 들어서도 눈을 뭉칩니다.
어느 패는 계곡을 향해 바로 떠나기도 했고,
마을 큰 길을 걷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이 눈 속을 차가 있을 리 만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 길을(예, 엉덩이 울퉁불퉁 배기지도 않는)
아예 눈썰매장으로 만들었지요.
어느새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낯익어 있었습니다.

“고드름 되게 맛있어요.”
얼음과자이지요.
온 산골을 누비며 매달린 것들에 다 손 뻗치더니
학교 마당에 들어와서도 조르르 줄을 서 있습니다.
가마솥방 지붕을 타고 내린 고드름,
또 그 아래 전선줄을 타고 내린 고드름을
사다리 타고 종대샘이 따주고 있었지요.
오래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풍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예, 또 공을 찹디다.

겨울은 추워야지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지요.
불가가 더욱 소중해지고
구들장도 더욱 가치를 발합니다.
난롯가에서 숱한 얘기가 돌고
아이들은 공기놀이를 하거나 방바닥에 구르며 놀기도 합니다.
순하고 힘 좋은 사람은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지요.
아이들 대여섯은 희중샘한테 아주 매달려 있었답니다.

공을 차면서도 있는 힘을 다 쏟더니
대동놀이도 ‘죽을똥 살똥’ 했습니다.
마치고 샘들이 더 죽을라 하데요.
우리들의 고전, 이어달리기부터 하고
모두 닭이 되어 닭장을 누비다
닭장에 있던 알이 사람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밟아
그토록 원하는 베개싸움을 했습니다.
한 때, 이곳에 오면 온 교실을 누비며 했던 놀이이지요.
어느 해부터 정적인 흐름이 많아지면서 사라진 놀이었더이다.
그런데 오늘 하도 노래 노래를 부르기
그거 대동놀이에서 하쟀더니
잊지 않고 또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대대적으로 하나씩 들고 뎀볐던 옛적과 달리
고래방으로 베개 열을 갖다놓고
무슨 선수단 맞대결처럼 하였지요.
“괜찮겠어?”
1학년 자그만 유가 선수로 나서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염려스러워 다시 확인을 해봅니다.
끄덕끄덕.
기어이 울고 말겠다 싶더미만
맞은 편 선수들이 베개를 잡고 살짝 콩콩콩 할 뿐
유를 피해서 휘두르고 있데요.
이번 계자는 크게 거친 아이들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왔던 아이들이 많아 이곳의 평화를 누려주기도 해서이겠고.

남자들이 자러 올라간 곶감집은
자는 움직임을 잡느라 애 좀 먹었다 합니다.
불을 때는 시간이 조금 더뎠던가 봅니다.
아직 온기가 다 차지 않아 급히 이불 더 갖다 나르고
불도 더 집어넣고 했습니다.
형 한슬이는 슬찬이 손을 꼭 붙잡고 예쁘게 잠자리로 갔지요.
숨꼬방은 여자들이 다 모여 같이 잡니다.
현지가 지난 여름과 달리 오빠 동하 없이 자고
남하고 잔 적이 없다는 현정이도 어느새 잠이 들었지요.

그리고 다시 모인 가마솥방 난롯가의 어른들 하루재기.
전화번호며 이름을 잘 기억을 못한다는 종대샘은
아이들 이름을 외며 무엇인가 작은 변화를 느낀다지요.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는데, 느낌이 묘하더라구요.”
뭉클함 같은 것 아니었을 지요.
“이런 곳에서 이렇게 다시 아이들을 보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새끼일꾼으로 승격(?)한 영환이는
어떤 게 가장 인상 깊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샘들 하루재기에서 먹은 떡볶이가 맛있었어요.
아이들 몰래 먹기 때문인 거 같애요.”
선아는 아침에 아이들 맞이 청소를 하며 그렇더라데요,
애들이 와서 여기서 지낼 건데 하는 마음에 더 닦게 되더라고.
민화샘도 말을 더했습니다.
“아이들 발을 씻겨주는데,
애들이 맛사지 받는 것 같다며 좋아하던 모습을 생각만 해도 좋아요.”

참 기분 좋고 안온할 것만 같은 계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96 마지막 합격자 발표 2월 20일 쇠날 옥영경 2004-02-23 1946
6495 품앗이 여은주샘 옥영경 2004-02-20 1943
6494 124 계자 이튿날, 2008. 1.14.달날. 꾸물꾸물 잠깐 눈방울 옥영경 2008-02-18 1942
6493 8월 23일, 류기락샘 출국 전날 옥영경 2004-08-25 1942
6492 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옥영경 2004-01-30 1940
6491 2009. 7.13.달날. 지난 밤 큰비 다녀가고, 두어 차례 더 옥영경 2009-07-30 1937
6490 계자 둘쨋날 1월 6일 옥영경 2004-01-07 1929
6489 계자 세쨋날 1월 7일 옥영경 2004-01-08 1926
6488 12월 21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22 1925
6487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1924
6486 129 계자 이튿날, 2009. 1. 5. 달날. 꾸물럭 옥영경 2009-01-09 1920
6485 128 계자 닫는 날, 2009. 1. 2.쇠날. 맑음.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9-01-08 1918
6484 124 계자 사흗날, 2008. 1.15.불날. 맑음 옥영경 2008-02-18 1917
6483 6월 15일, 야생 사슴과 우렁각시 옥영경 2004-06-20 1913
6482 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옥영경 2005-12-20 1911
» 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옥영경 2008-01-02 1909
6480 아흔 다섯 번째 계자, 6월 25-27일 옥영경 2004-07-04 1910
6479 4월 10-11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4-04-13 1908
6478 10월 13일 물날 맑음, 먼저 가 있을 게 옥영경 2004-10-14 1906
6477 6월 28일, 그럼 쉬고 옥영경 2004-07-04 190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