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계자 사흗날, 2008. 1.15.불날. 맑음

조회 수 1917 추천 수 0 2008.02.18 20:13:00

124 계자 사흗날, 2008. 1.15.불날. 맑음


“나이가 꽤 되는데도 이불 개는 게 안 돼요.”
샘들이 방을 나서면서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침대 문화에 익숙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스무 살 언저리였지 싶어요,
황순원 선생의 글 어딘가에서
우리의 온돌문화와 침대문화를 견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 이불을 개고 그걸 벽장에 정리하는 과정과
침대에 이불을 그대로 두고 일어나는 것을 통해
의식의 차이를 나름 설명했던 글이었지 싶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침대가 차지하는 자리가 커가면서
우리의 의식구조에 미친 영향도 크겠다는 생각 잠시 들데요.

“일우야, 생일 축하해.”
“네?”
“응? 일우야, 너 오늘 생일 아니야?”
“오늘이 며칠인데요?”
어머니는 멀리서 생일밥 못 먹는 아들이 에인한데
저는 저 생일도 모르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답니다.
네, 일우 생일이었습니다.
화수분이라던가요.
써도 써도 줄지 않는 샘 같은 재물을 말하지요.
가끔 이 산골곳간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루떡을 쪄냈지요.
“이거 다 네 거야.”
우리는 모다 잘 얻어먹었구요.

손풀기를 끝낸 아이들이 밖에 나왔습니다.
‘들불’시간입니다.
세간 실어 떠나는 피난민행렬처럼
리어카에 이것저것 실어 논으로 갑니다.
“일곱 살만 타.”
수레 끌던 종대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덟 살 형찬이가 그랬지요.
“저는 키는 여섯 살이에요.”
수레는 어느새 아이들 손으로 넘어갑니다.
동휘가 끌 때였는데, 앞서가던 민석이를 못 본 겁니다.
“어, 어, 어...”
수레는 내리막길에서 주욱 속도가 빨라지고...
그때 민석이 얼른 바닥에 바짝 드러누웠지요.
물론 수레는 그 위로 지나갔습니다.
으윽, 위기의 순간...

논 여기 저기 불이 피워졌습니다.
새끼일꾼들이 달고나 좌판을 열고,
형길샘이 가래떡을, 상범샘이 은행을,
종대샘이 고구마를 구웠지요.
그 곁자리에서 꼬치에
지난 번 미국행에 들고 왔던 머쉬멜로우도 꽂아 구웠답니다.
오늘은 영 바람이 도와주질 않아
군고구마 밑불이 젤 애를 멕입니다.
게다 포도즙이랑 바꿔먹었던 유기농가의 고구마가 바닥나
영동 읍내에서 좀 샀는데,
이런 죄 썩었네요.
그래도 그 가운데 먹을 만한 걸 건지며,
어디서 먹을 것을 그리 귀히 먹어볼까,
새끼 손가락만한 고구마를 들고 샘들부터 챙기는 아이들입니다.
“샘 한 입 드세요.”
그리고 희중샘,
“와, 드디어 3주 만에 고구마 큰 거를 먹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찌나 행복해 하던지요.
“벌떼였어요, 벌떼.”
아이들이 그리 몰렸다며
만든 거 먹여주고 또 만들어주고 그런 게 마냥 너무 좋았다는
새끼일꾼들이었지요.
희중샘은 이번 겨울 계자 3주 만에 처음 하는 달고나를
“집에 올라가면 한 번 사먹어야겠다” 했습니다.
동하랑 동휘는 모이 물어다 나르는 새처럼
떡, 마시멜로우, 은행, 고구마를
애쓰는 새끼일꾼들한테 가져다주었습니다.
늘, 한 번도 안 먹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애들이 꼭 있고,
어미새 앞에서 서로 입 벌리는 새끼들 같이 짹짹거립니다.
‘대화로 친해지지 않아도 벽이 얇아진다’는 누구의 말처럼
혹여 있었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벽이 다 허물어지고 있었지요.
‘물꼬에서만이 가히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물꼬 대해리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배경삼아... 날씨도 춥지 않아서 오순도순 모여앉아 놈담도 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런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도 음식들 모두가 정말 맛있었다.’
들불 시간은 에너지가 넘치는 매우 활동적인 아이들뿐만 아니라 조용한 아이들까지도 그 나름의 분위기에 맞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영화샘은 하루평가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답니다.

점심.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 남기지 마세요.”
윤찬이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이 가마솥방을 나왔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축구가 시작되었지요.
동하는 태클도 잘합니다.
“너는 덩치도 크고, 학교에서 운동하냐(운동선수 아니냐)?”
“네, 해요.”
“무슨 운동?”
“학원에서 다른 학원에 갈 때 뛰어가요.”
희중샘한테 얼굴에 공을 맞고서도
울지도 않고 금새 일어나데요.
재영이는 둔할 것 같더니 잘도 하더랍니다.
수민이랑 기현이가 오래 씨름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자질 했잖아,
미안해,
용서할 수 없어,
뭐 그런 과정입니다.
고자질도 자기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다른 것에 기대어 풀려는 방식 아닌가,
종대샘은 나름대로 흔히 알려져 있는 것과 다른 시각으로 고자질에 접근하며
그 관계의 중재자가 돼보려 하였지만
역시 어렵더라지요.
이제 정말 개입할 지점이 된 것 같습니다.
예서 보내는 날이 그리 길지 않으니.
문제는 서둘러 해결하고 잘 놀고 갔음 좋겠으니.
태현이가 잠바를 잃어버렸다고 내내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때 지나던 호열이가 그랬지요.
“네 주머니부터 찾아 봐.”
모자도 장갑도 잃어버리고
다 자기 주머니에서 찾았던 호열이었거든요.

‘구들더께’.
1,2모둠방은 여자 아이들이,
3,4모둠은 남자 아이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구들더께처럼 겨울 한낮 너른 방에서 뒹굴거려 보는 거지요.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고 움직여보는 시간 말입니다.
책도 읽고,
무궁화꽃도 피우고,
누워 얘기를 나누다 졸다가,
뜨개질을 하거나 실놀이를 하기도 했지요.
책을 읽다 스르르 잠이 든 형길샘 옆에
어린 예현이도 잠이 살포시 들었습니다,
마치 부녀지간처럼.
이제 형길샘도 장가 보내야겄습니다.
고교 3년이었던 형길샘은 이제 서른이 넘은 늦총각입니다.
새끼일꾼 소연은 시간이 아까워서,
말 많이 나누지 못했던 애들이랑 책방에 가서 얘기도 하고
뜨개질도 도왔더랍니다.
고래방에선 텔미춤 열풍이 이어졌지요.
종대샘은 인영 채윤 수진 윤정 윤지한테 불려나가
그들 맹연습에 음악을 맡아주었습니다.
서현 세아 세영이도 결합했지요.

‘열린교실’.
‘뚝딱뚝딱’에선 성건 재우 예현 형찬 지훈 성열이가
톱질 망치질을 연습한 뒤 나무칼을 만들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에 기여하는 물건 만들기라는
열린교실의 큰 방향은 총과 칼 같은 물건으로부터 거리가 멀기 마련인데
산오름 때 혹시나 만나게 될지 모를
멧돼지의 습격에 대비하는 거랍니다.
진행했던 형길샘은
나중에 인영이와 윤지의 원성을 사야했지요.
“우리 있을 때는(어제) 심부름만 시키고 일만 시키고
없을 때는 재밌는 거 만들고...”

‘한땀두땀’에는 처음엔 동휘 윤찬이까지 열 명이었다가
세영이 세혁이는 다른 데 위탁교육도 가고 하며
현주 인 세훈 호열 서현 세아 재희 현우가 남았더랍니다.
바늘에 실 끼워주고 매듭짓고 솜 챙기고,
수민샘은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지요,
새끼일꾼 진주까지 있었는데도.
두세 개씩 만드는 아이들의 애살에 더 그랬을 겝니다.
다들 완전 몰입이었다지요.
“나는 전생에 여자였던가 봐.”
세훈이는 자신의 바느질에 무척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다좋다’는 남자 여자 나뉘어 진행했더라네요.
윤지와 인영 수진이는 새끼일꾼 계원이랑 편지지를 만들고,
수민 상원 기현이는 무열샘이랑
물꼬지도를 가지고 거인계곡에 비밀통로를 찾으러 떠났답니다.
상원이가 먼저 쓰레기를 줍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이 같이 줍기도 하였다지요.
무엇을 해도 즐기는 상원이입니다.

동하 성혁 송휘 요한이는 ‘다시쓰기’를 했지요.
같이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교실 가거나 하랬더니
윤찬이 그림책으로 얼른 갔다지요.
따로 뭔가 하고 싶다 해도 되는데...
지난 번 연을 그대로 좋은 부분만 써서
요한이가 재구성하여 연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날리러들 나갔다지요.
“전깃줄이 정말 많데요...”
평소에 잘 들어오지 않던 전깃줄이 그제야 눈에 들더랍니다.
연을 날려보면 이곳 바람을 알겠기다 하다지요.
바람결이 거친 이곳입니다.
옥상으로 가서 날려보기도 하였답니다.
그런데 제법 높이 올랐던 연이
그만 살구나무에 걸려버렸지요.
지나다 그 연을 보았습니다.
나무를 탔지요.
그런데 저 멀리 형길샘 달려와 얼른 내려오랍디다.
“시골에서 산 놈이니까...”
서산 시골놈인 그는 나무타기도 한 재주합니다.
장작도 잘 패고 논두렁도 잘 세우고 낫질도 잘하고...
아, 동하는 방패연을 만들었댔습니다.
한동안 꼬리연만 보다가 반가웠지요.

하다 채현 세영 윤찬이는 책을 만들러 갔습니다.
다른 동화책을 베껴보기도 하고
제 식으로 만들기도 하였다지요.
‘원숭이와 나무’이야기는 채현이 것입니다.
“윤찬아, 나는 여기서도 다 보여.
네 동화책은 ‘어느 화창한 날이었어요.’로 시작하지?”
윤찬이 눈이 동그래집니다.
어찌 아느냐는 거겠지요.
“다 보여. 할머니가 되면 그런 것도 죄 보여.”
펼쳐보이기에 나와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그림을 보여주기도 한 그들이었답니다.

‘한코두코’.
민준 윤정 채윤 일우 태현 민석 대용.
민석이는 바늘이 짝짝이라고 안한다고 하는데
곁에서 민준이가 양보해 바꿔줍니다.
참 따뜻하고 여유로운 아이입니다.
어떤 녀석은
바늘이 하나 모자라 젓가락으로 대신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앞에 펼쳐보이기를 하러 무대로 나가면서도
계속 뜨개질을 하고들 있었습니다.

‘단추’랑 놀기.
류옥하다가 혼자 들어와 오붓하게 하려했는데
하다의 마음이 변해 한순간 폐강의 위기에 몰렸다가
재영, 동휘, 종훈, 세혁이가 차례로 들어와
다시 멋지게 부활했다 합니다.
어제 조금 아쉬웠던 방이름표를
오늘은 아주 깔끔하고 선명하게 만들어냈지요.
지나던 호열,
“어제보다 오늘이 왜 더 잘했어요?”
따졌더랍니다.
아이들은 짬짬이 팔찌도 목걸이도 만들고 하였지요.
그런데 재영이가 꽂혀있던 글루건 선을
가위로 싹둑 자른 대형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불꽃이 번쩍!
저 자신도 놀랬을 테지요.
더 큰 일로 번지지 않아 또 얼마나 다행인지...

‘한데모임’.
넘치는 노래로 시작하지요.
오늘은 ‘어머니가 참 좋다’도 배웠습니다.
“장에 가신 어머니를 찾다 길을 잃었지.”
물꼬에서 고전이지요.
지난 한 해는 잘 안 불렀던 노래인 갑습니다,
처음 듣는다는 아이들이 거의 다니.
“이 알맹이야 이제 그만 속 좀 엔간히 태워라.”
보건소를 다녀오던 소희샘,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장순이가 짖는 소리,
이곳을 채우는 여러 소리들로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너무나 따뜻했다지요.
모임은 윤지 동하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얼음 깨고 논 얘기에서부터
정해진 일정에 대한 평가들까지 쏟아집니다.
그런데 앉았는 저 아이들 보셔요.
세영이의 언니는 윤정이고
세아의 언니는 인영이며
예현이의 언니는 채윤입니다.
물론 실제는 세영이가 인영이와 세훈이 동생이고
세아는 성건이 동생,
채윤이는 수진이 동생,
예현이는 성혁이 동생인데 말입니다.
새로운 관계들을 맺으며
잘도 지내는 계자랍니다.

‘대동놀이’.
물꼬의 뜨거운 밤이지요.
먼저 공연이 있었습니다.
물꼬 원더걸스의 텔미춤.
그런데 같이 불려나간 희중샘,
잘 모른다면서 그래도 나가서 무대에 같이 서더니
‘어머나’ 대목에서 객석을 아주 휘어잡아버렸더이다.
물꼬축구가 이어졌지요.
월드컵 버금가는 열기입니다.
동하의 진흙마당태클이 여기서도 진가를 발휘했지요.
그러다 그만 넘어져버려 새끼일꾼 진주가 달려갔습니다.
“누나, 누나도 다쳐! 저리 가.”
수민샘은 재희의 이에 부딪혀 이마에 상처가 생기기도 했지요.
딸내미가 얼굴에 상처 나면 마음 쓰일 밖에요.
다 큰 처자 이마를 어쩔꼬...
무열샘은 안경까지 집어 던져놓고 달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하무적 종대샘이
무패의 기표샘 등장으로 몰락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대동놀이 물꼬 축구는 풍덩 빠져 함께 즐기는 시간. 오랜만에 묵직한 녀석, 기표라고, 이번에 품앗이가 되는. 물꼬 정규코스(* 주: 계자-새끼일꾼-품앗이일꾼)를 밟은. 약간 힘이 들었다.’
종대샘은 하루정리글에서 그렇게 쓰고 있었지요.
상범샘 역시 이제 하산해야 되겄더라나요.
힘으로도 뭘로도 이제 안 되더랍니다.
이 애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줘야 할 듯 진한 느낌이 들었다 합니다.
별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희중샘도
엄청 뛰었습니다요.

모둠하루재기였던가요,
언젠가의 겨울, 학교 밖 곶감집에 자느라 고생하는 남자애들한테
건빵을 위로로 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걸 떠올린 세훈이,
이번에는 뭐 안주냐데요.
곶감을 준다 하였습니다.
“너그럽고 의리 있는 너희들이니 여자애들이랑 나눠먹을 거지?
그래도 두어 개씩은 더 먹을 수 있지 싶은데...”
그때 동하가 얼른 말을 받았지요.
“남자만 줘요.”
하여 파악 눈을 흘기는데,
빛보다 빠른 동하의 반응.
“옥샘은 3개 드세요.”
가을 끝머리 아이들이랑 공동체식구들이 잘 갈무리한 곶감을
이 겨울 또 귀하게 잘 나눠먹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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