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다섯 번째 계자, 6월 25-27일

조회 수 1910 추천 수 0 2004.07.04 23:27:00


"오디 물고 죽순 밭에서"라고 연 계절자유학교가
살구비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살구는 늘 따먹을 수 있는 놈들보다
떨어지는 녀석들이 더 많다니까요)
낮은 하늘만큼 반딧불이도 풀섶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지요.
마흔 셋의 아이들과 열 하나의 어른들이 함께 했습니다.
시설은 솔직히 기대이하인데
재미는 기대이상이라는 두연이의 표현이
이번 계자를 표현해준 하나라 할까요.
왔던 아이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다른 계자와 달리
고작 여섯이 얼굴 익은 아이들이어서
내심 흥미로움이 컸더랍니다.
뭘 모르니 시끄럽기는 덜 합디다,
근래 보기 드물게 조용하게 보낸 계자였지요.
아이들이 유달리 컸어요,
강당에서 동애따기를 할 때 보니
이야, 꽉 찹디다.
한데모임에서 달싹달싹하는 진만이한테
아이들이랑 같이 윤슬이가 외쳤답니다.
"니네 엄마 누구니?"
야단 한판 같이 치다가
"어, 우리 엄마잖아."
얼른 목소리를 낮추었지요.
그리 구석구석에서 변함없이 웃기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열린교실을 들어가서 익힌 것들을
저녁 모임에서 주욱 늘어서 서로 자랑 한창이었지요.
채현이 민정이 지윤이 지수 윤슬이 지원이는 물들인 옷감들을 펴들고 섰고
다시쓰기에서 악기와 장수풍뎅이를 만든 승민이와 두연,
물총을 만든 선우, 포도 벽걸이를 엮은 다현, 로켓을 같이 만든 건이와 영우,
그리고 민규과 기환이가 만든 것들을 들어올리자
박수소리 높기도 높았답니다.
해니와 류옥하다 혜수 혜원이 영준이 민국이는 단오부채를 팔랑거리며 섰고
효진이 민경이 효연이 윤형이 진만이 큰 예진이 담이는
주머니들을 흔들어댔지요.
연극놀이에 홀로 들어갔던 영빈이는 너무나 풍성하게 제 한 것들을 보여주었고,
호준이 상찬이 충훈이 장훈이 준영 인영 동호는
열린교실 들어갈 게 없다고 다싫다로 모이더니
밭매러 갔다가 농삿일 한 판 잘하고 돌아왔더라지요.
아, 소곤소근방의 일곱 살들
유진이 유하 작은 예진이 하린이 주이 상진이 재영이는
봉숭아 따다 곱게 물을 들였더랍니다.
이어진 보글보글방 때문에 그만 얼른 떼느라 겨우 물들인 체만 하였더라도
손톱에 남았다 남았다 자랑 컸더라지요.

돌아가던 아이들이 복도 끝에서 마친보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많이도 불편한 곳에서 잘 지내서 고맙다는 말을 꼭 하지요.
담이가 그러데요,
"안 불편했어요.
여기 화장실이 더 좋아요,
저희 집은 두 개 밖에 안돼서 기다리고 그래야 하는데 여기는 많아서..."
가다가 돌아서며 한마디를 더 건네옵니다.
"제 동생(혜수)은 여기서 살고 싶대요..."
늘 걱정은 어른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 정말 어데서 그리 귀한 놈들이 이 세상으로 왔을지요.
아이들은 어디에서건 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번번이 하늘이 돕지요, 물꼬의 날씨.
비 많다는 예보에 걱정하는 전화 여러 통 받았지요,
(새로이 오는 이들이 많으니
유달리 전화가 많은 이번 계자였지요)
그런데 비, 구경도 못했습니다,
는 아니고 날 참말 무난했더랍니다.
비도 비껴다녔더라지요.

아이들이 올 때마다 현재 유행하는 어떤 문화도 업어오지요,
유행을 얼마나 잘 타는 이 나라이더이까,
이번엔 곤충잡기가 한참인가 봅디다.
누가 곤충 잘 키운 얘기가 신문을 온통 뒤덮은 뒤라지요.
유행 따라 말고
아이들이 정말 이 세상을 채우는 다른 존재들한테
깊이 관심갖기를 바래봅니다.

애쓴 건 늘 아이들이지요.
마흔 셋 밖에 안되는 이들이니
사흘이나 지냈으면 헷갈릴 것도 없는 이름들입니다.
하나 하나 떠올려봅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기꺼이 손발 보태오는 품앗이 샘들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을 수 없지요.
용주샘, 인화샘, 수나샘, 선진샘, 나윤샘, 욕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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