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물날 맑음, 딴 거 안먹어도

조회 수 1291 추천 수 0 2004.09.28 20:24:00

길이 참 멉니다.
칡넝쿨을 구하러가는 참입니다.
시원스레 돌돌거리며 가는 계곡물이 발목을 잡고
포도 다 떨군 동네 밭들이 눈길을 잡고
밤알이, 감이 손목을 잡아끕니다.
대추나무 아래도 그냥 갈 수 없지요.
간다 간다 가을이
겨우 겨우 살 겨울 속으로 가는 길목에
제보다 젯밥이라고
널린 넝쿨이야 언제나 끊지 하고
칡뿌리를 캐느라 여념이 없는 아이들입니다.
힘깨나 써야 할 걸요...
이제 우리 것이 된,
아주 아주 커다란,
저 아래 마을을 다 굽어보는 곳에 훤칠하게 선 감나무는
우리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더랬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굴지 않는 요술뒤주처럼.

옥수수 베내고 갈고나서 시금치를 심은 오후였네요.
저녁에 아이들은 조릿대집 큰채 아궁이에 죄 붙어서서
고구마를 구워먹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만든 불은
가을 열매들을 적당하게 굽는데 그만이었더라지요.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싸울 법도 하건만
맛나다 맛나다 아궁이 앞의 밤을 즐겼더이다.
그리고 늘어서서 이를 닦는 량이라니...
누가 좀 봐주지 않나 뚤레거리는,
퍽도 정겨운 풍경이었지요.

열택샘이 마을 부역 나갔습니다.
상수도 둘레 청소였지요.
“우리 딴 거 안먹어도...”
더덕이며 칡이며 도라지며, 아마도 산삼까지
왼갓 약초들이며가 다 녹아들어
우리 마을 수돗물만 먹어도
몸을 보하겠더랍니다.
제주 삼다수처럼 어느날 우리 아이들이
대해리 뭔물이라며 물장수(술?) 나선다 할지도 모를 일이라지요.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뭐씨도 있었다던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316 9월 16일, 바깥샘 도재모샘과 오태석샘 옥영경 2004-09-21 1836
6315 9월 17-19일, 다섯 품앗이샘 옥영경 2004-09-21 1406
6314 9월 21일 불날 흐린 속 드나드는 볕 옥영경 2004-09-21 1558
» 9월 22일 물날 맑음, 딴 거 안먹어도 옥영경 2004-09-28 1291
6312 9월 23일 나무날 맑음, 밭이 넓어졌어요 옥영경 2004-09-28 1239
6311 9월 24일 쇠날 맑음, 령이의 통장 옥영경 2004-09-28 1203
6310 9월 24일-10월 3일, 한가위방학 옥영경 2004-09-28 1182
6309 9월 21-4일, 밥알식구 안은희님 옥영경 2004-09-28 1412
6308 9월 25일 흙날 맑되 어스름에는 흐려진 옥영경 2004-09-28 1279
6307 9월 26일 해날 흐림, 집짐승들의 밥상 옥영경 2004-09-28 1268
6306 9월 28일 불날 더러 맑기도, 우리집 닭 옥영경 2004-09-28 1521
6305 9월 26-8일, 방문자 권호정님 옥영경 2004-09-28 1815
6304 10월 4일 달날 흐림 옥영경 2004-10-12 1286
6303 10월 5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0-12 1338
6302 10월 6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4-10-12 1362
6301 10월 7일 나무날 아침 햇볕 잠깐이더니 옥영경 2004-10-12 1354
6300 10월 8일 쇠날 흐림 옥영경 2004-10-12 1292
6299 10월 9-10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4-10-12 1298
6298 10월 10일 해날 맑음, 호숫가 나무 옥영경 2004-10-12 1657
6297 10월 10일, 가을소풍 옥영경 2004-10-14 128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