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쇠날 맑음, 102 계자 다섯째 날

조회 수 1353 추천 수 0 2005.02.10 19:51:00

2월 4일 쇠날 맑음, 102 계자 다섯째 날

방에서 보내기로 한 오전입니다.
예서 배운 것들이 있으니 저마다 무언가를 하겠지요.
남자애들은 바둑알부터 놓고 앉았습니다.
시골 어르신들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장기 두듯
곁에서 훈수도 합니다.
“너, 왜 가르쳐 주냐?”
노인정에서 싸우는 어르신들처럼 목소리가 한때 높아도지지요.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주승이가 특히 바쁩니다)
노래책을 펴놓고 노래도 하고
실을 이리저리 다루고도 있습니다.
둥그렇게 앉아 놀이도 하고
몇몇은 책방에 있기도 하네요.
11시에는 우르르 몰려가 머리를 감습니다.
세게 쥐어뜯어서 머리 빠지는 줄 알았다,
온도를 못맞춰 머리 데이는 줄 알았네,
머리 숙이고 해서 허리 빠졌다,
툴툴거려대지만 샘들이 감겨주는 머리에
꽤나 개운들 했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산에 가기로 하였지요.
석기봉에 전해 내려오는, 현재형이기도 한,
‘나뭇꾼과 선녀’를 좇아가기로 했습니다.
왜 나뭇꾼은 기름보일러에서 다시 나무보일러로 바꾸었는가,
물꼬는 왜 그 나뭇꾼을 따라 보일러공사를 했는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준 누군가들처럼
우리도 다음에 이 방을 쓸 이들을 위해 나무를 하자합니다.
갈 사람만 가자고.
그런데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죄 손을 들었지요,
싫다는 애가 몇몇은 있기 마련인데도.
그간 애쓴 샘들을 본 게 있어서
더더욱 산에 가고자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아서도 그랬겠지요.

가기 전 남자샘들이 패놓은 장작을 아궁이 곁으로 날랐습니다.
저마다 나무를 안고 나르다가
길목이 좁아 한 줄로 서서 옮겨보자 합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서부터 말도 따라 붙습니다.
“크고 네모난 나무 옵니다.”
정말 크고 네모납니다.
“회초리 옵니다.”
정말 회초리예요.
“얇고 날씬한 나무 옵니다.”
널빤지같은 장작이 갑니다.
아이들처럼 그렇게 갖가지 모양들의 나무가
어느새 죄 옮겨졌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석이, 정말 누가(집안에) 철도청에서 일하나 봐요,
지혁이 현석이 인영이로 이어진 줄이
마지막 나무를 쌓는 승현샘에게로 닿아있는데
지혁이가 서너개씩을 모아 바로 인영이로 건넸던 모양입니다.
지혁이는 아는 것 많은 현석이한테
헛똑똑이라며 감정이 있었던 터였거든요.
화가 좀 난 현석이 외쳤다지요.
“그럼, 나는 간이역이냐?”
승현샘이 혼자 오달지게 웃었답니다.
누가(아이들 가운데) 간이역을 알았겠어요.

단도리를 하고 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서 선수,
또 난간(축대, 연석)에 올라가 시내로 돌을 던지고 놀더라지요.
“너는 어제 다쳐놓고 또 그래?”
현애샘이 물었다지요.
“어제 그 다리가 아니잖아요.”
이눔의 자슥, 떨어져도 싸다 그래,
슬쩍 놀려줍니다.
어제의 사고가 이이에게 공포로 남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이들이 들어간 골짜기는 옴푹하니 자리가 좋았더랍니다.
말소리가 울리기도 하였다지요.
아늑하기까지 해서 아이들이 푹해도 하였습니다.
서로 도와가며 톱질도 하고
잔가지들을 주워 담고
자루에 솔방울이며 낙엽들도 채웠습니다.

산에서 아이들이 내려옵니다.
산 들머리 무덤가에서 우식이는
나무를 툭툭 차고 때리고 구르고 벌떡 일어나기를 반복하더라지요.
번쩍번쩍 나무를 들던 우식이요.
군대 다녀온 샘이 전방낙법이라데요.
도훈이가 막 박수치며 감동했다고 난리였습니다.
대호는 엄청나게 크고 긴 나무를 들고 왔다지요.
“들고 갈 수 있냐?”
“근데 제 앞에 아무도 오지 마세요.”
3미터는 족히 될 길이였답니다.
수민이도 앞에 갑니다.
이따만한 통나무를 들고도 길에 떨어진 걸 주워드는 그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루를 포기하지 않고 툴툴대지도 않고 걸어오네요.
“의미 부여 과정도 재미있었고, 같이 일하는 것도 재밌었어요.
...저는 나무 보일러로 바뀐 것 오늘에야 제대로 인지를...”
유상샘이 그랬습니다.

어제 눈이 얼어붙어있는 고갯길을 저녁답에 달려갔다 왔지요.
현서 데리고 병원에 간 일 말입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한밤에 많이 아팠더랍니다.
저녁에 대동놀이 끝내고 들어온 아이들에게
안마도 좀 해보라하였지요.
“1번 안마기, 이름?”
“모 회사에서 나온 신제품, 500원짜리 동전 하나.”
“5번 중국산 안마기, 성능 좋음.”
“6번 일본에서 수입한 안마기, 기계가 너무 덜덜거림.”
아이들과 노닥거리는 이런 날들이 주는 즐거움이
물꼬 계자를 꾸리고 또 꾸리게 하는 게 아닐지요.
신명나게 말입니다.
아, 30년 전통의 7번 세인안마기가 최고였어요.
세인이는 날마다 엄마 안마를 해준다데요.
시원했습니다요.
벌떡 자리 털고 일어났지요.

지혜랑 현석이 진행을 맡은 한데모임이 끝나고
(현석이는 앞에 가니 조금 얼어서 아이들이 여러 번 소리쳐 주어야했지요.
“뭐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큰방으로 몰려가 강강술래에다 춤도 한판 추었겠지요.
그 끝에 불가로 옮겨갔습니다.
“다른 데도 마지막날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크게 쌓아놓고 휘발유 뿌리고...
여기는 목적이 감자를 굽는데 있는 것 같고,
소박하고...“
그게 물꼬인 것 같다 현애샘이 그러데요.
제(자기) 몸에 가려 제가 추울까
성욱이는 불 앞으로 저를 내밀어줍니다.
참 따뜻한 아이지요.
“뜨거워서 그러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이 살포기 장난을 쳤지만
어이 추워라 하는 제 목소리를 들은 그가 움직인 걸요.
아이들 노래주머니가 바닥나길 기다리다가는 날이 새겠습디다.
감자가 거의 익을 무렵 예서 지낸 날들을 돌아봅니다.
성큼성큼 가는 날들에 대한 아쉬움,
이런 학교가 있다는 것에 놀랍다는 격찬,
(집에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덕헌이 조차)
눈썰매장에 대한 극찬들이 있었지요.

손님방에 머물며 밤마다 나무를 때주던 동인샘,
나가시기 전 이불도 말리고 방도 쓸고 닦고
손님방이 그리 정돈 잘된 걸 처음 본다고 희정샘이 전합니다.
처음 오래 있었던 계자에서
자신의 발전도 함께 있었다는 인화샘,
태석샘은 내가 왜 여길 와서 장작을 패고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었다지요.
(“되게 힘들었군요.”
샘들이 위로를 아끼지 않았지요.)
그런 사유의 시간이 그간 있었던가 했답니다.
그래서들 우리가 모이나 봐요.
제 돈 들여 이곳까지 와서 귀한 시간을 쓰는 까닭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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