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26.흙날. 맑음

조회 수 847 추천 수 0 2017.09.29 23:41:51

           

무밭을 만드는 중.

천지는 가을 날씨를 예비하는 중.


영화 <택시운전사>.

택시노동자로 제목을 착각하며 택시노동자의 투쟁기 정도로 짐작했던.

80년 5.18 광주로 갔던 택시 운전사 김사복은

광주로 잠입하는 사명에 찬 독일 기자와 동행하며

밀린 월세를 낼 기회를 잡은, 홀로 딸을 키우는 우리들의 보통명사 아버지.

김사복 역의 송강호 연기의 절정이라 할 만.

일상적 그림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그가 아니라면 신파가 되었을지도 모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안으로 쑤욱 들어가는 길을 따라

그 시점으로부터 수십 년을 떠나 있는 이들도 데리고 들어가는,

그리하여 5.18에 대한 객관성과 공감을 확보해 내는 여정.

첫 손가락으로 꼽기에 주저치 않을 명장면은

약속한 십만 원을 챙긴 그가 기자를 두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울로 돌아가다

결국 돌아서서 광주로 다시 향할 때.

영화든 책이든 어떤 장면에서 자신이 얹히기도 하는 경험들이 있다.

마음이 힘에 겨울 때 외려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용기를 얻으려거나 두려움을 밀쳐내는 그런 순간 같은.

그러다 그만 눈물이 핑 돌아버리는,

입은 노래를 부르는데 마음은 시린.

나는 광주로 되돌아가는 그일 수 없다.

말이야 어떻게든 정의롭지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불길 속으로 돌아가는 이는 어디 흔하더냐.

그래서 그런 삶이 빛나는 것이고,

그래서 이나마라도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일 터.

아직도 80년 광주를 왜곡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그 역사를 되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운,

그것도 영웅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시민을 통해,

선언하는 영화가 아니어서 좋았다.

깃발은 이 시대에 낡은 거니까.

힘을 빼고 하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더라.

역사성 시대성 따위 엿 바꿔먹은 지 오래인 이들까지도 80년으로 초대하는

영화의 힘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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