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까지 비 내렸다.

비 그을 녘 밭을 둘러보다. 마늘 촉이 오르고 있다.

봄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일과 일 사이,

출판사에서 온 교정지 위에 교정 메모를 하여 다시 보내고

이달 중순께 보낸 새 원고 초안을 진행하기 전,

어찌 알고 건축을 진행하려는 이가 시공사와 하는 상담 자리에 동행해줄 수 있는가 물어왔다.

경제적인 여간한 여유가 아니라면

시공사의 시공 제안과 다르게 건축주의 뜻에 따라 집을 짓기는 참 어려워 보인다.

결국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니까.

그런 말이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건축주여도 작정하고 속이려드는 시공자를 이길 수 없다는.

집 하나를 같이 지을 좋은 연대자여야 할 관계가

어째서 그리 되는 걸까?

시공사가 가장 많이 해본, 그래서 잘할 시공 작업이

하자도 줄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기도.

결국 시공사의 뜻대로 흘러가겠구나 싶던데,

건축주로서는 자신의 가치관에서 중요한 두어 가지, 물러서지 않아야 할,

그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물었네, 당신은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이 가까운 시공사가 어디인가를 보고 결정하십사 하였다.

건축이야말로(주로 자신이 거할 집짓기) 욕망의 총본산이라는 생각.

언젠가 한 선배가 그러더라,

집이란 게 벽 있고 지붕 있고 비 안 새고 전기 들어오고 물 쓸 수 있음 되지 하고.

그렇지 아니한가.

 

저녁에는 TED 강연 하나를 보았다.

비가 드는 날이면 확실히 여유롭다고 느껴지는 멧골살이.

사람이 쓰는 시간을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시간을 잘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흔히 시간을 쪼개서 남은 그 자투리 시간을 모아 뭔가를 할 때

시간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절약한 시간을 더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시간은 굉장히 탄력적.

예컨대 정작 고3 때 우리는 가장 시간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그때 가장 많이 놀았다는 농담들을 하지 않던가.

그때의 시간들을 돌아보면 사실 밥 먹고 화장실만 간 게 아니다.

심적 부담으로 이미 고3은 혹독해서 그 부담의 시간이 막대하였던 것이지

실제 공부량이 어느 해보다 유다르게 많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니면 공부 하는 사이 사이 볕같이 드는 꿀맛의 시간이 더 크게 다가와서

더 많이 놀았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여튼, 우리는 뭔가를 하려할 때 그것을 할 시간이 없다는 말을 늘어놓는다.

시간이 없다? 아니다.

진실은, 왜냐하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할 시간이 없다.

적어도 우리는 우선순위인 일을 위해 쓸 시간이 분명히 있다.

우리가 안한 많은 일은 그것을 할 시간이 없었으니 안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았으니 안 했다. 우선순위에 밀린 거다.

가령 이 겨울 보일러가 터졌다고 해보자.

모든 일을 밀치고 그것을 수습할 것이다, 하루가 걸리든 이틀이 걸리든.

그것을 해결할 시간이 바쁜 내 삶에서 어디서 툭 튀어나왔더란 말인가.

시간은 있다! There is time!’

우리가 바쁘다고 해도 중요한 것을 할 시간은 있는 것이다.

그런 농담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뛰어가지 마라고, 뭐 하러 미리 가서 앞의 비까지 맞냐고.

우리가 종종거리며 부지런을 떤 것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던가.

아닐 거다. 결국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실 시간이란 게 어딨는가. 물리적으로 그건 존재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내 마음이겠다.

정말 시간이 없었는가?

자기가 쓰는 시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도대체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쓰고 있는가?

무엇이 중요하냐가 관건이겠다.

우리가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여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고 그렇게 하며 시간은 저절로 절약된다.

다시 물어보자, 정말 우리에게 그것을 할 시간이 없는가?

시간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일을 언제할지를 생각하면 가능하다!’

이제는 이리 말할 수 있겠지,

생의 이 많은 시간을 어디에 쓸까 하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1676 2019 여름 청소년 계자(2019.7.20~21) 갈무리글 옥영경 2019-08-17 574
1675 2019. 7.22.달날. 갬 / 별일들 옥영경 2019-08-22 485
1674 2019. 7.23.불날. 가끔 해 / “삶의 이치가 대견하다.” 옥영경 2019-08-22 516
1673 2019. 7.24.물날. 가끔 해 / 깻잎 깻잎 깻잎 옥영경 2019-08-22 513
1672 2019. 7.25.나무날. 밤새 비 다녀가고 아침 멎다 옥영경 2019-08-22 488
1671 2019. 7.26.쇠날. 비 옥영경 2019-08-22 474
1670 2019. 7.27.흙날. 아침 볕 잠깐, 다시 비, 흐림 / 긴 그림자 셋 옥영경 2019-08-22 513
1669 2019. 7.28.해날. 비 추적이다 멎은 저녁답 옥영경 2019-08-22 463
1668 2019. 7.29.달날. 맑음 / 삼남매의 계곡 옥영경 2019-08-22 532
1667 2019. 7.30.불날. 맑음 / 164 계자 준비위 옥영경 2019-08-22 481
1666 2019. 7.31.물날. 맑음 / 날마다 하늘을 밟고 사는 이 옥영경 2019-08-22 544
1665 2019. 8.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9-08-22 523
1664 2019. 8. 2.쇠날. 맑음 옥영경 2019-08-22 516
1663 2019. 8. 3.흙날. 맑음 / 164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9-08-22 663
1662 164 계자 여는 날, 2019. 8. 4.해날. 맑음 / 2년을 넘어 다시 피는 계자 옥영경 2019-08-30 718
1661 164 계자 이튿날, 2019. 8. 5.달날. 맑음 / 저녁이 내리는 마당에서 옥영경 2019-08-31 713
1660 164 계자 사흗날, 2019. 8. 6.불날. 흐려가는 하늘 / 자유는 어떤 바탕에서 힘을 발하는가 옥영경 2019-08-31 688
1659 164 계자 나흗날, 2019. 8. 7.물날. 갬 / 걸으면서 열고 걸으면서 닫았다 옥영경 2019-09-08 632
1658 164 계자 닷샛날, 2019. 8. 8.나무날. 소나기 / 민주지산(1,242m) 산오름 옥영경 2019-09-10 579
1657 164 계자 닫는날, 2019. 8. 9.쇠날. 맑음 / 빛나는 기억이 우리를 밀고 간다 옥영경 2019-09-11 60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