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14.쇠날. 비 / 포도따기 첫날

조회 수 1426 추천 수 0 2007.10.01 02:43:00

2007. 9.14.쇠날. 비 / 포도따기 첫날


“내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임철우의 단편 ‘포도씨앗의 사랑’을 읽기 전엔
포도를 볼 때마다 그렇게 시작하던 이육사의 청포도를 읊조렸습니다.

원이네 집 행랑채에 스물이 될까 말까한 젊은 남녀가 새로 이사를 왔고,
소년무리들은 원이네 뒤란 커다란 은행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포도씨를 입에 가득 물고
서로의 얼굴에 퉤퉤 뿜어내며 까르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노는 그들을 훔쳐보지요.
그들은 더없이 유쾌하고 행복해보였습니다.
바로 그 해 늦은 여름 소년의 어머니가 끝물 포도를 사왔었지요, 아마.
그 이상한 놀이가 생각났고,
소년은 포도씨를 정확하게 어머니의 콧잔등과 뺨에 명중해 주었습니다.
아주 행복해하는 웃음을 막 까르르르 하고 터뜨려 볼 찰나였는데
순간 철썩하고 어머니의 큼직한 손바닥이 볼따구니를 세차게 후려쳤겠지요.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놀이인 줄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머니를 가졌다는 사실이
소년은 슬펐다던가요.

포도를 땁니다.
흙날 하루 날 잡아하자던 일인데
마침 오늘 손을 보태겠다는 이들이 있어
이틀을 내리 하기로 했지요.
작년엔 포도즙을 짜며 고온처리는 물꼬에서 하고
저온처리는 우리 기술이 모자라 유기농 농원에 부탁을 했는데
(당연히 저온은 영양이 더 살아있겠지요),
이번엔 포도밭도 작년 절반 밖에 되지 않으니
저온가공에 물량을 먼저 맞춰보자 하는데
그 최소 단위가 50콘티(흔히 농가에서 쓰는 노란 플라스틱 상자)입니다.
올해는 작황이 좋지 못해
그 양을 맞추고 나면 생과로 먹을 거나 있을까 모르겠다고들 하지요.

비 추적추적 내리는데 읍내에서 임산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온
영동대 유아교육과 정현님 보라님 은지님 민화님을 실어와
콩나물국밥으로 속 든든하게 먹고 일을 시작합니다.
상범샘 삼촌 기락샘 종범형 점곤아빠도 달골 포도밭에 들었지요.
종대샘도 전주에서 알타리와 고구마줄기김치를 싣고
점심때 들어왔네요.
류옥하다랑 종훈이는 마늘(네, 우리가 수확한 거지요)도 까고
장독대 풀도 맸더랍니다.
“점심으로 뭐 준비하고 계세요? 칼국수 먹고 싶은데...”
순두부와 김치잡채를 하려고 막 불에 올렸는데
달골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마침 어제 장을 보며 해물로 몇 실었더랍니다.
비오는 날 부침개와 칼국수는 또 찰떡궁합이지요.
몸이 젖었던 터라 더 맛나나 봅디다.
유아교육과 학생들은 점심에 난 짬을
아이들과 한바탕 놀아주는 일로 쓰고 있었지요.
다들 저녁차를 타고 나간다더니
참으로는 내논 두부김치가 식는데
이제나 저제나 해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비도 굵어지는데,
차시간은 가까워지는데,
따놓은 건 밭에서 다 꺼내 창고동에 펼쳐놓는다고
일이 더뎠나봅니다.
보내는 걸음들에 두어 송이씩 넣어 보냅니다.
어찌나 참하고 일도 잘하는지(게다 인물 좋지요, 공부 잘하지요)
물꼬 식구들 칭찬이 자자했댔지요.
돕는 손이 저리 흔쾌하면
고맙기 배가되지요.

밤엔 식구들이 대전 나갔습니다.
비가 굵어지데요.
“낼 포도 딸 수 있겄나?”
“내일 일은 또 내일일이지요...”
영화 보러 갑니다.
물꼬에서도 한 장면을 촬영했던 황동혁감독의 <마이파더> 표를
'시네라인'에서 보내왔더랬지요.

두드러기 나서 이틀밤을 설쳤더랬습니다.
긁는 소리에 스스로 놀래 깨기 여러 차례였지요.
“좋은 기름 쓰겠어요?”
“이모님은 좋은 것만 드시다가...”
낯설게 먹은 거라곤 어느 구내식당에서 감자튀김을 먹은 것인데
그걸 두고들 요새 같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그랬더랍니다.
몸의 균형이 깨지면 일어나는 일이니
흔들리다 잡히겠지요.
그래도 낮에는 멀쩡해지니
오늘처럼 내일 일하는 사람들 밥상도 무사하겠지요.
가라앉는가 싶더니 다시 불룩불룩 솟네요.
여튼 무지 가렵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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