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우리들의 어린이날

조회 수 1760 추천 수 0 2004.05.07 02:11:00

여느 날처럼 어른들이 모임을 하고
아이들은 조금 느지막히 일어납니다.
해건지기를 하고 새벽에 공수되어온 'KBS 현장르포 제3지대'를 봅니다.
우리는 텔레비젼이 없으니까요.
쭈욱 한줄로 늘어앉아서 아주 요절복통입니다.
자유학교 노래 일과 이로 마지막 화면이 멈췄을 때
하하, 우리 아이들 좀 보셔요!
"참내, 니들이 천사란다."
하며 비디오를 끄는데,
"올라올라 갔지요."
날개짓을 하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우리들의 새로운 인사법이 된 거지요.
아이들을 모을 때 세 차례 치는 손뼉이 끝나면
이 녀석들이 날개 퍼득이며 올라 올라 가는 거지요.
아침을 먹고 나들이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은 가서 읽을 책 한권과 그 밖의 짐들을 챙기고
부엌에선 김치김밥을 급히 싸느라 상범샘 젊은 할아버지 저도 같이 달라 붙습니다.
상범샘 먼저 나가 차를 좀 닦는데
아이들이 차 두 대에 어찌 나눠 타나 지들끼리 다 결정을 하더라나요.
먼저 어느 차를 타고 싶은가에 따라 나누고
다른 이를 위해 자기가 타고 싶은 차를 포기할 수 있는가를 묻고
마지막 설득의 과정을 거쳐 두 패로 나뉘었더랍니다.
그게 이곳의 방식이거든요.
아이들, 예, 본대로 합니다.
고스란히 이곳에서 해온 대로 어른들이 하던 대로 합니다.
뭘 가르친단 말입니까, 잘 사는 수 밖에.

어린이날 선물도 나누었습니다.
밤늦게 김천 이마트까지 달려가서 사왔지요.
달빛이 너무 좋아 얼른들 나와서 달도 보고 자라 일렀더랍니다.
'사람됨의 공부' 공책 한 권과 춥파춥스 사탕 세 개(나중에 덤으로 하나 더).
아, 우리 아이들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이 작은 선물이 어데서 이처럼 빛을 발할 수 있을지요.

나들이를 갑니다.
오늘은 열택샘이 병아리집도 짓고 한다고 학교를 지키겠다 합니다.
국악박물관부터 들릅니다.
고 앞의 정자는 둘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여섯입니다.
아주 우리 아이들에게 맞춤입니다.
박물관에서 어찌할지를 먼저 잘 새기고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잠시 돌아보기 좋은 크기입니다.
혜린이가 배가 아파서 내내 업고 다녔네요.
옥계폭포로 움직입니다.
소박한 공간입니다.
사람들이 번잡하지 않을 만치 들어오고 또 나갑니다.
점심을 먹고 오징어도 구워먹자
시작할 것도 없이 저마다의 놀이터에서 놀았겠지요.
어,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유명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저기 가는 아줌마가 우리 봤대요.
류옥하다랑 혜린이한테 어제 텔레비젼 나온 애들 맞지 했대요."
아이들은 아주 신기해라 합니다.
자꾸 자꾸 우리를 힐끗거리는 저어기 다른 몇도
어쩜 어제 한 방송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짐작해봅니다.
녀석들이 올챙이를 잡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물통을 탐냅니다, 택도 없지요.
"댐을 만들면 되지, 성을 쌓아..."
일어나 나서서 보여주어야 하나 망설이는데,
지들끼리 폭포 아래서 흙으로 둑을 쌓고 있습니다.
몇은 들고 간 책을 바위 위에서 들여다보는가 싶더니만
어느 사이 열 둘이 다 같이 올챙이 집 만들기에 힘 모으고 있더이다.
어른들은 제각각 쉬거나 책을 읽거나 상념에 젖거나 산책을 하고.
돌아 나오는 길,
어떤 이들이 차를 타고 막 들어오고 있었는데
차를 세우고 다가와 묻습니다.
어제 텔레비젼에 나온 사람들 맞지요 하고.
텔레비젼의 위력 정말 대단합디다.
홈페이지는 너무 많은 이들이 접속하는 바람에 멈춰버렸고
방송 끝나자마자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격려전화와 논두렁 가입들...

나온 김에 읍내에서 목욕도 하기로 했지요.
저는 서점에서 서성이고 장도 보고.
"짜장면, 짜장면!"
멀꿈해서 나온 아이들 길거리에서 외쳐댑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라고 주장주장해도 안먹혀들자
스승의 날에 밥해줄 테니 자장면을 사라 꼬드깁니다.
어버이날이 마침 밥알모임이랑 겹쳐 그날은 부모봉양 하겠노라는 아이들이니
우린 샘이면서 부모이기도 하므로 이래저래 손해볼 거 없는 장사겠습니다.
푸지게 자장면을 먹고
세상에, 예서도 발우공양하겠다 덤비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돌아오는 차에선 고 3때 떠날 여행에 대해 신이나서 떠들더니
저녁답엔 회의가 한창이었지요,
가마솥집을 차지한 날 무슨 음식을 할까, 어찌 할까로.

참외(물론 과일이지요)로 저물어가는 우리들의 어린이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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