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묘한 날씨와 이 대단한 원정을 무어라 다 말하랴...

 

오늘은 산에 가는 날, 날은 따숩고, 하늘은 청아했다.

계자를 닫는 날 전날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서는 산오름이다.

167계자는 , , 푸르나.

저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덕유산 향적봉을 지나 요기 삼도봉에 이르고

황악산으로 이어진다.삼도봉에서 잠시 가지 뻗은 능선은 석기봉-민주지산으로 연결되고,

거기 물꼬가 깃들어 산다.

첩첩산중, 골이 깊은 곳. 골이 깊은 만큼 스며든 이야기도 많지.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를 업고 가는 모험 길이라.

애초에 푸른 산을 뜻하는 푸르다는 개념은 없었다.

그 색깔은 언제부터 그 이름이 되었을까.

거기에는 푸르나라는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으니...

아이들의 하루를 모시기 전 샘들이 먼저 하던 해건지기,

오늘은 김밥을 싸는 것으로 대신한다.

계자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김밥,

대체로 볶은 멸치와 김치 밖에 들어간 게 더는 없는.

새끼일꾼 여원이 형님이 김밥을 싸는 모습을 본다.

저 아이 자라서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싸고 있다니!

계자 아이들이 자라 저렇게 새끼일꾼이 되고 어른이 되고 물꼬에 살림을 보태고,

혼례를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물꼬를 오고...

샘들이 짊어지고 떠날 가방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고

(희중샘이 일찍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다),

각 가방에는 화장지에서부터 아이들 여벌 양말이며 옷이며들을 간밤에 꾸려놓았고,

아침에 이동식과 물과 김밥을 넣었다.

오늘 수행방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모인다.

산오름 준비운동이기도 한.

팔단금으로 몸을 풀고 호흡명상을 하고.

셋째마당의 마당걷기는 생략.

왜냐? 오늘은 어마어마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종일 좀 걸을 거니까.

 

이불을 개고, 밥을 먹고, 아이들도 저마다 여장을 챙겼다.

평소엔 옷을 들고 따라다니며 입으라 부탁을 해도 안 듣더니

눈 쌓인 험한 산을 간다고 하자 어찌나 무장을 하던지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둔해서 산을 또 어디 오른단 말인가.

나름 단단한 준비라는데, 그래 한 번 떠나보자.

 

산오름 안내모임.

옛이야기가 늘 동행하는 자리다.

이번 산오름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거기 어떤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가...

화전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태어난 푸르나,

아버지를 잃고 두 오래비는 먼 친척의 주막에 맡겨지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잃고 만다.

가난한 마을이었으나 모두가 푸르나를 키우고,

잘 자란 푸르나는 자신이 그렇게 자랐듯 사람들을 섬기는 집을 만들지.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 걸음에!

 산에 가서 1지점 쉼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아이들이 빨리 가자고 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다 같이 모여 , , 푸르나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보다 더 집중해서 들었다.

옆에서 같이 듣던 서윤이는 조잘조잘 질문거리도 많고,

화전의 흔적을 찾아 간다는 데 흥분하기 시작했다.‘(휘령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학교를 나선다.

푹하다. 샘들은 학교를 나서기 전 조금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을 것이다.

그 짐이야 샘들 등에 멘 가방 안으로 가겠지.

샘들은 혹 우리가 간격이 떨어지더니 위험한 상황에 놓일 때를 대비해

아이들 눈에, 또 멀리서 잘 보이도록 형광조끼들을 입었다.

한 줄로 서서 번호를 외쳤다; “열다섯, 번호 끝!”

아이들 여덟, 이번 계자 아이들에서 아무도 빠지지 않은 숫자이다,

어른 일곱(새끼일꾼 둘 포함)이 떠난다.

학교에 남은 밥바라지샘과 학교아저씨는 산을 무사히 내려올 우리를 기다리며

김 오르는 밥상과 따뜻한 아랫목을 준비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는 산이 궁금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어린 아이들이 많은데 잘 올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며 출발했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하게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가는 산이었다.’(세빈샘)

초등을 마지막으로 지난 시간을 건너뛰고 재작년 연어의 날부터 물꼬 일정에 합류한 세빈샘,

아니, 지난 계자도 같이 했는데, 왜 처음이라고 하지... 했다.

쌍둥이인 세인샘이랑 그는 구분이 몹시 어렵게 닮아

나는 아직도 한 사람을 부를 때도 두 사람 이름을 한 번에 외치고는 한다니까.

지난여름에는 세인샘이 있었고, 이번겨울에는 세빈샘이 있는.

그런데 한 얼굴인. 하하.

 

맨 앞은 제가, 맨 끝은 휘령샘이 갑니다.

 저보다 먼저 가면 낮밥으로 먹을 김밥이 사라지고,

 휘령샘보다 늦으면 우리가 참으로 먹을 사탕이 사라집니다.

 마술이지요. 보고 싶으면 그리 하시도록!

 수범아,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뜻이야?”

젤 어린 1학년이 알아들었으면 다 알아들었을 게다.

대문 밖을 나서는 것이니 우리들은 마스크부터 챙겼고,

마을길을 벗어날 때까지 조용히 세 덩어리로 나뉘어 걸음을 옮겼다.

비로소 달골 계곡 이르러서야 모두가 합해졌고, 마스크도 벗고.

달골 올라 명상정원 아침뜨락부터 걸었네.

벌써부터 더운 아이들은 달골 기숙사 대문 바로 안쪽의 창고동 계단에

옷들을 죄 벗어놓고 아침뜨락을 들어갔다 왔다.

달골에 먼저 들렀는데 아침뜨락 주변에 영동 풍경이 너무 예뻤다.’(건호 형님)

아침뜨락 명상정원을 돌며 정말 기분 좋은 시작을 했다.’(해찬샘)

적지만 손을 보탠 아침뜨락을 오르며 올 때마다 다른 모습에 항상 감탄한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그 속을 뛰어다니며 지금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휘령샘)

 

물꼬 안에서도 놀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왜 굳이 산으로 가는 걸까요?”

숙제를 안고 가는 산오름이라.

달골 대문을 나서서 작은 계곡을 끼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눈이 덮여있다.

길은, 서서히 우리를 준비케 하기도 전 급작스럽게 가파르다.

벌써부터 화장실들을 찾는다.

동선이 길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만 지냈던 아이들,

움직임이 커지자 당장 화장실들을 찾는.

여긴 국립공원이 아니니 그곳에서 볼 수 있는 화장실은 없다.

대신 널린 게 화장실; 바위 뒤, 나무 뒤, 모퉁이 돌아.

아이 몇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샘들과 저어기 보이지 않는 모롱이 화장실을 다녀온다.

이를 대배해 샘들 배낭에 화장지가 하나씩 들어있지.

 

아이들이 새처럼 지저귀었다.

아직 갈 만하단 말이지.

산허리를 돌며 기울기가 거의 없는 길이 이어진다.

얼마 전 산판을 한 일이 있어 길은 넓게 훤하고 순조로우나

경사도를 깎지는 못한 급한 길이다.

우리는 걷는 게 아니라 기었다.

점점 가파르기가 심했다. 아주 격했다.

70도도 넘어 된다 싶은 각도가 등장하기도.

게다 산판 하러 들어왔던 굴착기가 파헤쳐놓은 땅의 뿌리가 자꾸 발에 채였다.

산길이 그렇다. 가파르다고 경사길만 있는 게 아니다.

죽겠다 싶게 기어 올라가도 살아라고 편편한 데를 만나기도 하는.

우리 사는 날들이 그러하듯.

소나기 만나고 바람도 만나고, 쥐구멍에 볕도 뜨고, 비온 뒤 땅도 굳고,

때로 예상된 길이 있기도 하지만 복병처럼 거친 길이 있기도.

생각보다 올라가는 등산길이 너무 힘들었다. 등산길이 있을 줄 알았는데,

길을 개척해서 가서 약간 충격이었다.’(채미샘)

서윤이가 특히 엄청 보채며, 거의 드러누우며, 질질 끌려 올라갔다

해찬샘의 증언이 있었다.

 

온통 비탈이라도 제법 모여 앉을 공간이 있다.

저 멀리 우리 떠나온 마을이 보였다.

도시락을 먹기로 한다.

맨 뒤에 오던 태양과 휘령샘에게 건호 형님을 지원군으로 보낸다.

털썩, 기어올라 흙바닥에 주저앉은 태양이가 참았던 울음도 함께 터뜨렸다.

조금 둔한 자신의 몸도 무거울진대

신발도 긴 털옷도 산오름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흙투성이었다.

다가가 위로했고, 살펴주었다.

일단 밥을 먹자.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들을 이어 의자처럼 놓았다.

산에서 먹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채미샘)

멀리 첩첩의 산이 우리가 얼마나 깊은 곳 혹은 높은 곳에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 또 가보자. 푸르나가 살던 마을은 어디쯤 있는 걸까...

서윤이와 동우와 인서와 수범이가

저만치 먼저 나아가 정찰병처럼 사방을 살펴준다.

태양이에게 물었다, 갈 수 있겠냐고, 가볼 수 있겠냐고.

가 보자 하니 그래 보자 한다.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또 걸어보기로 한 태양이가 멋졌다.

나는 삶의 어떤 부분을 그렇게 살아내야 할까?’(휘령샘)

깊은 감명이 퍼졌다.

어쩌면 거기서 다음 깔끄막을 오르게 한 건 바로 태양이의 그 모습 아니었을지.

서윤이는 한국인의 밥심을 보여주었다지.

아주 질질 끌려올라가던 서윤, 밥 먹은 뒤에 씩씩하게 내딛고 있었다.

 

이제 치고 올라 능선으로 다가갈 때.

키 작은 잡목을 헤치고 나아간다.

가시나무들이다.

앞서서 가지를 치며 나아가지만

어쩌다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잡아야 할 것.

더러 옷도 찢어지겠고나.

여름이면 계곡 바위를 미끄러진 흔적으로,

겨울이면 난로나 들불에 혹은 이렇게 산길에서 찢어진 옷 때문에 재봉틀을 돌리고는 한다.

그래도 다른 쌤들이랑 애들이 도와줘서 갈 수 있었던 것 같다.’(채미샘)

대개 어릴수록 산을 더 잘 탄다.

가벼워서도 그렇겠고, 그저 많은 생각 없이 나아갈 수 있어서도 그럴 것.

아이들이 샘들을 챙기며 오르는 산이라.

 

마지막 능선에 닿았다, 그 어디 푸르나가 살았음직한.

버너도 꺼내고,

현준에게 동생들이 와락 손을 뻗치지 않게 안전선을 만들어 달라 했다.

겨울산에 먹는 핫초코라.

정상에 올라가서 핫초코 앞에 쪼로록 앉아있는 애들의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웠다.’(세빈샘)

전주에서 온 수제초코파이도 꺼냈다.

어릴 때 이처럼 계자를 다녀갔고, 고교생이 되어서는 한 달 위탁교육도 다녀간

우빈이네서 보내왔던 선물이다.

계자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발과 마음이 닿던가.

채성이가 농을 줄지어 하며 주위를 밝혔다.

그의 농담은, 다른 이를 불편케하면서 하는 그런 농이 아니다.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던 채미샘도 웃느라 뻣뻣해진 몸을 다 풀었다.

채성이는 사람들을 웃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채미샘)

내려올 땐 윤수가 채미샘 곁에서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자기 얘기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이건 뭐, 아이들이 샘들을 데리고 하는 산오름이라니까.

하늘이 어두워진다. 구름이 덮쳐 온다. 살짝 는개비가 몰려온다.

이제 일어서야 할 때.

 

오르기보다 내리기가 더 힘든 법이라.

다리는 자꾸 힘이 빠지고 눈길에 미끄러지고는 한다.

그래도 웃음이 미끄러지는 법은 없다. 말이 깨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힘이 우리 원정대를 밀어준.

굽이 닳은 운동화를 신고 나선 건호 형님 제 몸이 힘든데

곁에 가는 현준이가 자꾸만 길을 벗어난다.

그건 또 현준이의 즐거움이었겠지만

위험이 도사린 길 없는, 곳곳에 눈 덮인 산에서 다치기 쉬운 일,

김현준을 연신 불러대며 걷고 있는 건호형님.

동우 수범 윤수도 마냥 신났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도

그 상황을 인지하거나 본 사람은 몸의 긴장으로 더 크게 다치는 반면

자거나 마냥 즐겁게 있었던 이들은 덜 다친다던가.

굴러도 가벼이 데굴거리고 굴러갔다 탁탁 손 털고 옷 털고 올라올 것 같은 그들이라.

주로 말썽꾸러기들 무리에 붙으려 노력했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나의 눈엔 너무 위험하고 아슬아슬하 순간의 연속인데,

녀석들은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내가 그랬던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그런 말썽꾸러기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다.’(해찬샘)

그냥 그러는 거다.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거다.

아직 생이 심각할 게 없다.

그런 순간이 인간의 낙천을 길러낸다 싶은 생각도.

그렇게 한껏 노는, 사는 날들이 어려운 시간을 건널 힘을 쌓아주기도 할 것.

밀려오는 파도에 신발을 버리지 않겠다 하다

한 번 젖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

흙도 그렇다. 이제 깨끗하기를 포기했는데 어찌 걸은들 어떠리.

 

산오름에서 늘 맨 끝에 겨우 겨우 매달리다시피 오던 채성,

한둘의 샘들이 그를 끌고 밀고 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는데,

오늘 그는 혼자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계자에서 희중샘이나 다른 샘들의 도움 없이는 못간다고 하던 채성이가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산오름을 마친 그 감동이 진했다. 아이들마다 때가 다른데,

채성이의 때가 왔음을 알았다. 물꼬 정말 대단하다!’(휘령샘)

먼저 앞서 내려갈 수도 있었던 인서가 채성이 오빠랑 어깨를 겯고 걸어주었다.

같이 만두를 빚으며 더 친해졌던 그들이라.

나는 고라니다!”

고라니처럼 산을 잘 타고 싶다는 챙성이가 외치면

인서는 힘든 산길에서 답했다.

‘(경사가, 혹은 어려움이) 매운맛이야!’

게다 얼마나 흥겹게 내려오던지.

옥샘, 저 여기 있어요!”

한 번씩 맨 앞을 향해 자신들이 잘 따라오고 있음을 알렸다.

 

곧 눈비 내렸다.

눈비는 가랑비가 되었다.

길은 더욱 질퍽였다.

조금 서두르자 하지만, 우리는 사실 원정대보다 나들이 나온 상춘객들에 가까웠지.

저기 마을도 내려다보이는데, 우리 모두 같이 있는데, 아직 밤 아닌데,

긴장할 게 없는 길이었다.

비는 는개비를 지나 가랑비가 되었다.

산을 빠져나왔다.

아침뜨락 저편으로 올랐던 길이었고,

아침뜨락 이편 계곡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마지막 사람들이 다 나오길 기다리며 잠시 모여 있었 적,서윤 왈, “옥샘, 물꼬에 (고난의 산오름 때문에) 안 올까 봐요.” 했다.

그때 태양이가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또 올 건데!”‘

그 고생을 하고도 말이다. 장한 태양이, 태양이 같은 태양이.

곧 서윤이도 말을 바꾸었지, 자기도 와야겠다고.

이제 학교가 머잖다. 800m 내리막길이면 마을길에 닿는다.

그로부터는 200m만 가면 물꼬가 우리를 맞을 거지.

비에 젖고 있었는데, 두터운 옷이 도움이었다.

물꼬에서 하는 일들은 어쩜 이렇더냐,

이토록 딱딱 아귀가 맞더라냐.

젖은 겉옷의 물기가 속옷으로 스미지 않을 만치에서 우리는 학교에 닿았다.

올라가면서 애들끼리 깔깔거리며 한없이 즐거운 표정들을 보며 덩달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저렇게 한없이 순수하고 맑을 수 있을까... 모두에게 참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올라갈 때, 내려갈 때 애들이 정말 뛰듯이 빠르게 가서 놀랐고, 애들 걱정할 게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세빈샘)

 

산을 내려와 샘들이 메고 갔던 가방에 든 것들 꺼낸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갈 것도 보내고, 가방은 털어 욕실로 보내놓았다.

휘령샘은 아이들 겉옷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내고.

이 시간 이후로 나오는 빨래는 비닐에 싸서 아이들 집으로 가게 될 것인데,

입고 가야 할 겉옷도 있어...

산오름이 일정의 끝인 양 샘들이 모든 걸 팽개쳐놓고 널부러지던 계자도 있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들이다.

그 사이 샘들 하나하나도 얼마나 단련되었는지.

샘들이 부엌의 장에서 마구잡이로 아침저녁 꺼낸 수건,

계자를 끝내고 산더미 같은 수건을 빠는 게 남은 이의 큰일 하나였고,

옷을 찾아 입느라 샘들이 마구 헤쳐 놓은 옷방을 정리하는 것 역시 적잖은 수고였던.

그렇게 한 번 입고 쌓아놓은 빨래가 겨울옷이라 얼마나 큰 더미던지.

애들 돌보자고 모여서 고생들 한 샘들이 고마웠지만

일정이 끝나고 나면 돕겠다고 왔던 샘들의 뒤치다꺼리가 더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했다.

무책임했던, 배려 없었던.

거기 질서를 부여하느라 몇 해 동안 연규샘이 샘들한테 싫은 소리를 하곤 했다.

하는 이도 어렵고 받는 이도 쉽지 않았을 그런 시간을 지나

지금은 이렇게 질서가 생긴.

그런 것도 일종의 이 공간의 축적물일테지.

 

한데모임.

물꼬 노래집 <메아리>를 열고 몇 순배 노래가 돈 뒤,

푸르나 이야기를 이제야 매듭을 지었네.

푸르나의 무덤에 풀이 돋았다.

사람들은 그 색을 푸른색(엄밀하게 말하면 초록색일)이라 불렀다.

세상에 없던 낱말이 그렇게 생긴.

그런데 왜 , , 푸르나냐고?

그건 푸르나가 죽기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환영을 보고 한 말이었는데,

그때 거기 있었던 이들만, 그러니까 167계자에 함께한 우리들만 아는 걸로.

그리고 숙제검사; 우리는 왜 산에 갔던 걸까?

어려운 일 앞에서 그리 나아가라, 홀로 말고 다른 이들과 연대하라,

단단히 준비하고 걸어가라, 이기고 돌아오라,

자연 속을 걸어라, 몸을 튼튼히 하라, 자신을 넘어라, ...

산을 가지 않아도 맞힐 수 있는 답들이었고,

산에 올랐기에 몸으로 안정답이었을 것.

 

대동놀이.

늘 계자의 마지막 밤의 대동놀이는 강강술래 한 판.

이 날을 위해 간간이 한데모임에서도 강강술래를 익혔더랬지.

흥이 넘친 동우며 현준이며 자꾸 가운데로 삐죽거려 들어오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 잡은 손으로 원은 유지되고 있었더랬다.

서로가 서로를 이어낸.

같이 뜨겁게 연대하며 오른 산오름에서 돌아와 강강술래로 다시 모이는 건

연대의 훌륭한 연장이었네.

아이 때 싫어하던 시간이었는데 일꾼이 되고 나니 정말 재미있었다.’(새끼일꾼 건호 형님)

일곱 살 아이가 자라 열입곱이 되었다.

아주 오래 한 아이의 성장사를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반짝 한데모임!’

그냥 가면 서운할 뻔했네.

또 한 아이를 놀려 속을 상하게 한 사내아이들 있었다.

그찮아도 여러 차례 벌어졌던 일이고,

아이들이 떠나기 전 한 번 짚어야 했고, 내일은 바쁠 거니까,

딱 지금 하라고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이 있었다.

그 순간 모두를 불렀네.

긴급한 사고가 아니라도 간절하게 하고픈 말이 있을 때도 반짝한데모임을 제안할 수 있었다.

누구를 비난하자고 한 모임이 당연히 아니었다.

혹 내 재미만 보느라 타인을 살피지 못한 일이 없었나 물었고

모두 여기서 보낸 날들을 돌아보았네. 성찰이라.

이곳에서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이런 식이다.

책방에 책을 꽂지 않았다, 그러면 묻는다. 그런 적이 있는 이가 누구냐고.

그러면 손을 드는 아이들.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한 번 물어보지요.”

밥 종이 쳐서 마음이 바빠 팽개치고 갔다, 돌아와서 계속 읽으려고 그랬다, ...

자기 행위를 되짚어본 뒤엔 각자 자기가 무엇을 해야는지 안다.

다음 날 당장 어떤 변화가 있지 않더라도 조금씩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어떤 이의 마음을 돌보고, 다시 돌아보는 순간. 이 과정들! 아름답다.’(휘령샘)

, 태양이가 수범에게 사과하는 일이 있었는데,

군더더기 없는, 그야말로 사과였다.

자주 변명이 먼저였던 태양이의 변화는 우리 모두를 흐뭇하게 했다.

수범이도 가뵈얍게 받아주었더라.

이심전심, 염화미소였을세.


장작놀이.

보슬비는 부슬비가 되고 끝나지 않은 말처럼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당에 불을 피우려 쌓아둔 장작이 젖고 있었다.

비가 그으면 마당에서 장작놀이를, 비가 내리면 방에서 촛불잔치를 할 것이었다.

무엇이나 지난 닷새를 갈무리하는 시간일.

아이들에게 물었다.

비를 좀 맞아도 되겠냐고. 그래도 밖으로 나갈까냐고.

봄비 같았으므로 맞을 만한 비였기에.

하나쯤 귀찮아하기도 하련만 만장일치였다.

샘들도 얼떨결에 표를 같이 모았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사이에도 기름을 넣어가며 불을 키워 장작놀이를 한 것을 보고

물꼬의 한다는 의지를 느꼈다.’(건호 형님)

물꼬가 그렇다.

우리는 자주 그렇게 최선의 지점을 찾는다.

겨우 붙인 불에 우리 현준 선수,

눈덩이를 불에 던졌고, 동우가 따라 했다.

현준이 한 소리 듣는다.

형님이 되는 길이 그렇다.

바로 멈춰준 그였다. 그렇게 형님이 되어갔다.

둘러서서 지난 닷새 돌아보기를 할 적,

동우가, 수범이가... 긴 시간을 사람들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었다.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우가 시간이 늦게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모두 자기도 그렇다고들 했다.

장작 앞에서 노래 부르고 동우와 수범이도 짧지만 진지하게 마지막 기분을 얘기할 때 인상깊었고 

물꼬가 주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과 마음의 힘을 얻고 가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다.’(세빈샘)

비가 오는 날 장작을 피워 갈무리를 한 건 처음이었다. 애써주심에 감사합니다.’(휘령샘)

삼촌, 기름 좀...”

학교아저씨가 20리터짜리 말통, 기름이 거의 차 있는, 을 들고 왔다.

이미 아이들이 둘러서 있고, 비는 부슬거리고,

어둠 속에 옮겨 담을 통을 챙겨오기도 마뜩찮고.

불이 사그라들 때마다 이미 흠뻑 젖은 나무 위로 등유를 끼얹었다.

(*그러게. 애 좀 썼다, 하하

이튿날, 원인을 찾을 수 없게 어깨가 몹시 아팠는데, , 기름통 때문이었던 거다!

산골에서 자주 그리 무식하게 몸을 쓰고는 하는...)

 

샘들 하루재기에서 휘령샘은, 산오름 앞에서 푸르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 학습에서 동기부여에 대해 생각했다고.

학교 현장에서 늘 진도를 따라가기 급급해 많은 걸 놓치지 않았던가 하고.

예컨대 학급 동기를 끌어내는 걸 생략한다든가 하는.

계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도 감동과 함께 배움들을 불러 일으킨다.

그게 또 우리(어른들)가 계자에 모이게 하는 힘이 되기도.

산오름... 그것은 특정 이벤트가 없어도,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만으로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교육 일정이다!

몸으로 들어오는 공부라.

어떤 위대한 무엇이 있어도 종국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모두, 무사히, 돌아왔네.

 

이번 167계자 주제가는 모두들 여기 모였구나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산오름 역시 계자 주제에 걸맞았네.

불길도 헤치고 물속을 헤엄치고 가시밭길 돌무덤 바위산을 뚫고서

모두들 여기까지 모두들 여기까지 달려왔구나.

온 나라에 울려 퍼지는 노래 크게 외쳐 부르며

이제 갈 길 알았노라고, 아아아 아아아 모두들 여기까지 여기 모여 있구나

신경림 시인의 시 일부를 대학 때 노래로 만들어 불렀더랬지.

오랜 시간 지나 다시 아이들과 부르고 있나니.

코로나19 3차 확산을 뚫고 우리 여기 모여 167계자를 하는 마지막 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5540 2월 어른의 학교(2.26~28) 갈무리글 옥영경 2021-03-16 417
5539 2월 어른의 학교 닫는 날, 2021. 2.28.해날. 흐리다 빗방울 살짝 지나는 오후 옥영경 2021-03-16 524
5538 2월 어른의 학교 이튿날, 2021. 2.27.흙날. 맑음 옥영경 2021-03-16 417
5537 2월 어른의 학교 여는 날, 2021. 2.26.쇠날. 갬, 정월 대보름달 옥영경 2021-03-16 413
5536 2021. 2.25.나무날. 흐리다 세우 / 산불 옥영경 2021-03-16 370
5535 2021. 2.24.물날. 맑음 옥영경 2021-02-25 467
5534 [2021. 2. 1.달날 ~ 2.23.불날]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1-02-14 732
5533 2021. 1.31.해날. 맑음 옥영경 2021-02-14 431
5532 2021. 1.30.흙날. 해 옥영경 2021-02-14 430
5531 2021. 1.29.쇠날. 맑음, 그리고 밤눈 옥영경 2021-02-13 449
5530 2021. 1.28.나무날. 눈 옥영경 2021-02-13 399
5529 2021. 1.27.물날. 맑음 옥영경 2021-02-12 415
5528 2021. 1.26.불날. 비 옥영경 2021-02-12 423
5527 2021. 1.25.달날. 흐림 옥영경 2021-02-11 418
5526 2021. 1.24.해날. 맑음 옥영경 2021-02-11 388
5525 2021. 1.22.(쇠날)~23.(흙날) 봄날 같은 / 1박2일 ‘더하기 계자’ 옥영경 2021-02-11 446
5524 2020학년도 겨울, 167계자(1.17~22) 갈무리글 옥영경 2021-02-10 395
5523 167계자 닫는 날, 2021. 1.22.쇠날. 비 내리다 갬 옥영경 2021-02-10 390
» 167계자 닷샛날, 2021. 1.21.나무날. 청아한 하늘 지나 빗방울 떨어지다/ 푸르나가 사는 마을 옥영경 2021-02-09 494
5521 167계자 나흗날, 2021. 1.20.물날. 해 옥영경 2021-02-08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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