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날은 훌륭하다!

 

설악산에 오르려고 했다.

어제 대해리를 떠나 오색에 들었다.

눈 소식은 있었다.

자정 넘어까지 통제 소식이 없어

일단 들어만 가면 그 뒤에야 통제가 되더라도 산은 오를 수 있겠다 했다.

아침을 먹고 도시락까지 쌌다.

그제야 통제 소식이 떴다.

눈은 대청봉 가까이서만 살짝 흩뿌렸다.

그래도 폭설 예보에 산을 닫아야 한다는 국립공원 측의 답을 들었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 걸음은 그리 소득 없이 가려는가 했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생각했다.

전화를 넣으니 거기도 휴일이네.

 

마을 형님이자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분과 길을 나섰다.

젖어 있는 한계령휴게소를 보고

다시 내려와 필례 쪽으로 틀어 하추리를 지나고 원대리에 이르렀다.

언제 가보려던 길이기도 했다.

원대리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다.

그것 먹으러 간다는 사람들도 있었던 원대리 메밀국수.

바리케이트가 처진 입구였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처지를 헤아려 안내소에서 제법 안까지 자작숲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들머리까지 와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받은 특혜가 조금 무안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눈에 담기도.

설악산 통제로 올 수 있게 된 숲이었다.

우리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은 많은 날들이지만

그래도 그 날들은 그 날대로 의미가 있을.

때로는 더 좋은 것이 기다리기도.

하여 세상의 모든 날이 훌륭하다는 시작 문장을 썼을 밖에.

 

홍천나들목으로 가는 걸음이었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공원에 홀로 있었다.

곳곳에 물꼬의 인연들이 있다.

마침 가까이 사는 선배이자 역시 물꼬 논두렁인 분이 시간이 맞았다.

오래 전 이 가까운 곳에 폐교를 빌려 다섯 해를 목공 작업을 했던 이였다.

덕분에 소양호 상류지역을 감싸는, 이제는 잊힌 길을 걷고 달릴 수 있었다.

신남리-관대리-신월리.

양구에 이르렀다. 양구는 군인의 지역으로 기억한다.

그곳으로부터 온,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을 받은 적이 있었다.

4리에서 8202부대 백두산부대 빗돌을 보았다.

국토정중앙면소재지가 나왔다.

면 이름이 재미있다 했더니 작년 1월인가 남면에서 그리 바뀌었다고.

우체국에서 엽서를 찾았다.

그런 거 없단다.

흐린 날 엽서를 쓸 일은 없었다.

서울과 진영의 두 벗에게 엽서 대신 문자를 보냈더라.

차에 실렸던 소포 두 꾸러미를 국토정중앙면 소인으로 부쳤네.

 

춘천에 들어 널찍한 집을 안내 받았다.

성 같은 곳이었다.

선배가 영화를 보여주고 떠났다.

2월은 멧골 할미에게 영화관이 가까웠네.(앞서 두 차례는 지역의 작은 영화관이었지만)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영화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위한.

감독에 영화산업 종사자들에게 보내는 헌사쯤.

세 시간이지만 길지 않았다.

전위 퍼포먼스를 보는 듯한.

영화스러운 영화였달까.

한가닥한 옛날이 떠나도 다음 세대의 눈에 그 시절이 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설혹 쇠락기에 이르러도 당신의 역사가 실패가 아니었다 위로해주는 영화.

, 여자주인공 마고로비의 연기는, , 신들렸단 말을 이럴 때 쓸 수 있을.

 

춘천의 인연들을 만나고 떠나온다.

내일은 겨울90일수행 회향도 있고,

식구 하나 6년을 공부하고 졸업한다.

설악산은 아직 통제 중.

모레는 풀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

나선 김에 이번 여정으로 설악산의 법정 탑방로는 마무리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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