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빈들 이튿날 / 2009. 5.23.흙날. 맑음

조회 수 1005 추천 수 0 2009.06.06 01:55:00

5월 빈들 이튿날 / 2009. 5.23.흙날. 맑음


6시에 모를 옮겼습니다.
어른들은 그만큼 서둘러 아침수행을 하였지요.
그런데 7시, 이앙기를 돌릴 인술이 아저씨가
대구 갈 일이 생겨부렀습니다.
오후에 오신다지요.
하여 오전 오후 일 차례를 바꾸기로 합니다.
아침을 먹은 아이들은
후식으로 꽃밭의 밭딸기를 따먹고 있었네요.

야콘을 심으러 달골을 오릅니다.
빈들모임을 다녀간 안동의 박성호님이
그제 모종 200포기를 보내왔지요.
이른 봄에 거기서 보내온 야콘을 먹어보았는데,
국내에서 나오는 야콘 가운데 당도가 가장 높다는 소문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답니다.
먹어본 야콘 가운데 당도가 제일 높았다마다요.
그런데 로터리를 쳤다고는 하지만 묵혀두었던 콩밭은
여간 거칠지가 않았습니다.
일일이 다시 밭을 패고 둑을 올리고
비닐을 덮었습니다.
비닐, 물론 반생태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안의 작물을 열대성을 만들어 신토불이로 보기 어렵다고
아예 생각도 아니 해본 물건이니
당연히 처음으로 씌워보는 비닐이지요.
야콘 만큼은 비닐을 씌워달라는
박성호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더랬습니다.
뭐 또 그리해보지요.

달골로 점심을 해서 올라갑니다.
“색깔 너무 예뿌다!”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원두막에 둘러앉아
국수를 먹었습니다,
갖가지 색깔의 고명을 올려 잘 익은 열무김치랑.
어르신 한 분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맘 오래 느끼고도 싶어
다른 국수 먼저 다 꺼내먹고 더디게 먹은 거라지요.
기분 좋은 바람이 얼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거(死去)를 높여 그리 부르나요.
그런데 사거(辭去: 작별하고 떠남)라 일컫고 싶습니다.)
산골에서 소식 모를까 하여,
행사 중이라 못 들었을까 봐
여러 사람들이 소식 전해왔습니다.
울고 분노하며
뜨거운 80년대를 보낸 선배들이 주로 한 연락이었지요.
“어쩌니, 어쩌니...”
저녁에는 모여서 술을 마시며
또 전화들을 해왔습니다.
5년 여 만에 연락을 해온 캐나다친구의 아내도 있었지요.
옥선생은 산골에서 계속 살아라 나오지 말고,
이 꼴 저꼴 보지 말고 살아라 했습니다.
“새색시 목소리가 이제 굵어졌네.”
이제 산골아줌마 냄새도 난다데요.
그리 세월이 흘러갔네요.

모밥을 냈습니다.
모내기 때
들에서 마을 사람들도 불러 같이 먹는 밥을 그리 일컫지요,
그래야 풍년든다고.
“큰 도둑들은 다 살아있는데 양심이 있으니까 죽은 거야.”
우리 동네 할머니들의 서거 소식에 대한 논평이었습니다.
“아침에 테레비서 뉴스보고 내가 어찌나 맘이 안 좋던지...”
그래도 삶은 계속됩니다.
우리는 한바탕 잔치처럼 막걸리를 걸쳤답니다,
상(喪)도 축제 같은 왁자지껄함으로 승화시키는,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은 우리 전래의 죽음관처럼.

달골은 달골대로 야콘을 이어 심고
아래 논은 논대로 모내기를 해서 모두 녹초가 되었으나
춤명상으로 몸도 풀고 마음도 가다듬었습니다.
‘농부들의 미사’ 곡으로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춤을 추었고,
청명춤이라 일컫기도 하는 민들레춤을 추었지요.
그런데 춤을 멈추고 하루를 다 돌아본 뒤에도
애고 어른이고 가운데 놓인 촛불을 떠날 줄 모릅니다,
물에 띄운 꽃잎을 들여다보느라.
마치 겨울밤 난롯가에 모여 앉은 풍경 같기도 하고
지리산 산방에서 머리 맞댄 혁명가들 같기도 하였더이다.
피곤해서 그냥 쉴까 하는 유혹을 뿌리치길 잘 했다며
소소한 얘기들을 나누었더랬지요.

그래요, 삶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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