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계자, 5월 28일 흙날 벌써부터 찌는

조회 수 1345 추천 수 0 2005.06.02 14:19:00

103 계자, 5월 28일 흙날 벌써부터 찌는

< 일년만치 산 하루 >

새벽 네 시 잠이 깬 승찬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지요.
곁에 누웠던 현주샘이 달래기도 하고 놀기도 했답니다.
그길로 아침이 된 게지요.
하루 가운데도 문득 문득 승찬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다독이는 부엌의 밥알(물꼬 학부모이자 이번 계자 가마솥방 지킴꾼) 손길들을 통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생각 많이 했다는 현주샘입니다.

이른 아침,
어른들은 아침모임이 끝나자마자
몇몇 어른만 남긴 채 트럭에 몸을 싣고 달골 포도밭으로 떠나고
고래방에서 아이들과 해건지기를 합니다.
느린 곡조에 맞춰 요가 동작을 하나 하나 따라하고
깊이 바라보기도 하였지요.
밥을 먹고는 우리가락이 이어졌습니다.
판소리 한 마당 듣고 전통음율이 드러난 동요 하나를 패를 나눠 부르고
굳이 짧은 시간을 남겨서 풍물 악기 다 꺼내 두들겨도 보았네요.
좀 귀찮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아이들에게 더한 걸 줄 수 있다마다요.

봄이 가는 숲에 갔습니다.
뱀과 벌을 만나게 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각자의 삶터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갖춰야할 예의에 대해 얘기 나눈 뒤
찔레꽃 피고 지는 산길을 따라
산딸기와 오디와 앵두가 차오르는 길섶을 지나며
대해리의 보물 저수지에 이르렀지요.
동으로도 서로도 남으로도 북으로도 온통 산, 산입니다.
다시 숲으로 길을 잡았던 아이들도 저수지 가로 내려와
곳곳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앉았네요.
"아이들이 없어도 아름다운 곳인데..."
아이들이 있어서 살아있는 풍경이 됐노라 은주샘이 그랬지요.
자분자분 곁에 앉은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붙잡히는 아이들마다 저들 사는 얘기를 이것저것 물어도 보았더이다.

보글보글방 하러 모였지요.
잔칩니다요, 잔치.
아이들 많은 곳에는 두 장을, 적은 곳엔 한 장을 주겠다고 가늠한 부침개는,
부침개를 좋아한다는 혜수랑 주연이가 들어갔네요.
지원 정현 인경이랑, 따라온 여덞 살 성연이,
약속이나 하고 모인 것 같은 정말 조물조물한 녀석들은 샐러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감동적으로 도마질을 하는데, 몰입되어 그 일을 하는데,
힘을 쏟으면 쏟을수록 그 곳에서 힘을 얻는구나..."
샐러드샘이 그러셨지요.
지용 지수들은 잡채에 있습니다.
여러 샘들이 야채도 볶아주시고 콩나물도 삶아주시고 당면까지 건져주셨다지요.
"그럼, 니들이 한 건 뭐야?"
썰고 무쳤다나요.
세상에 젤 맛있다는 잡채라는데, 다른 요리패들도 자신들이 만든 것에 다르지 않은 생각일 걸요.
글쎄, 일곱으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하나둘 불더니
어느새 떡볶기패는 열 하나가 됐다데요.
우성빈 현빈 김수현 의로 혜린 종화는
같은 방을 쓰는 호떡이고 부침개고 넘치는 말로 정신이 없는데
암소리 안하고 우아하게들 경단을 빚고 있었지요.
충분히 끓여내지 않아 설익었는데도
경훈샘이 곁에서 맛나게 먹어주어 어깨힘이 좀 들어갔다 합니다.
호떡집엔 말할 것 없이 불 났겠지요.
그나마 불려 들어간 지민샘 승렬샘의 도움으로 여유가 생겼다며
목소리가 좀 낮아진 현주샘이었지요.

길고 긴 하루네요.
열린교실이 바로 이어집니다.
오늘밤 베고 잘 거라고 노란 베갯잇을
윤슬 김수현 이수현 혜수 혜린 우혁이 한땀두땀 꿰맵니다.
김수현은 한 밤에도 게다 수를 놓겠다고 천을 놓지 않았다지요.
고래방 앞에서 교무실 앞에서, 그리고 사택 앞 꽃밭까지 진출해
꽃잎 풀잎을 뜯는 의로 종화 용빈이는 엽서를 만들겠답니다.
눈여겨 보기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끼 손가락 손톱만한 파란꽃(꽃마리)을
용빈이가 알려주어 기뻤다는 나윤샘과
한지까지 섞어가며 차분하게도 다듬습디다.
의로는 열심히 샘들께 엽서도 썼지요.
토마토에 양파에 카레까지 꺼내와
종훈 주연 지수 석인 현진 인경 영준 휘연이는 옷감 물들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석인이는 제(자기) 흰 티셔츠에 물을 들였는데,
펼쳐보이기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환호성을 질러주었던지요.
근우 지원 상현 문규 지원 귀남이는 밖에 나가 있네요.
이면지에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과 식물, 사물을 그려 가위질을 합니다.
귀남이는 부끄럼이 많아 자기가 만든 것을 땅속에 묻기도 하였다지요.
요걸트 빈병으로 비행기도 로켓도 집도 만들어 보며
다시 쓰는 것에 대해 상도샘이랑 얘기 많이 했다 합니다.
좀 어렵겠다 싶은 점자는 2학년부터 신청할 수 있었지요.
지용이와 지현이 들어갔습니다.
지용이는 많은 질문과 함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더니
제(자기) 이름과 모둠 아이들, 샘들, 가족 이름 주욱 써보고,
지현이는 자신의 것보다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애쓰더래요.
종이에 점자를 찍다가 코팅지에 할 땐 힘깨나 들었다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잘도 하더랍니다.
계자 때 물꼬 와서 또 볼 수 있는 걸로 만들자며
진만 정근 석우 성빈 진석 건우는 우편함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편함 지붕 위에다 하고픈 말들도 적었네요.
저녁 한데모임에서 펼쳐보이기 할 때 그걸 보겠다고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나갔지요.
뭐든 하겠다고 '다좋다'에 들어간 동희 권윤 우재 승찬 유진 찬영이는
시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도랑에선 올챙이도 좇아다녔다 합니다.
다 싫은 아이들은 예제 기웃거리거나 낮잠을 한숨자거나 책방에서
혹은 가마솥방을 들락거리고 더러는 산과 들과 숲으로 내달렸다지요.
뭘 해도 즐거운 배움입니다.

한데모임에서 낮에 서로 보낸 시간을 펼쳐 보인 뒤,
고래방으로 건너가서 물꼬가 준비한 동화 한 편을 스크린 위에 올려 보았지요.
출간된 책이 아니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동화책을 읽은 셈입니다.
중간에 음악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정말 끽 소리 안하고 몰입해서 보데요
(아, 그림을 그려준 서양화가 김태규님 고맙습니다).
강강술래에 춤 한 판으로 온 몸을 털고
밤별 내리는 큰 마당에 불 피우고 둘러앉았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짧으나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나누었지요.
"물꼬에 와 있는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하이고, 성빈입니다.
"샘들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집안임에 틀림없지요, 성빈이 동생 현빈입니다, 헷갈려도 별탈 없겠는 쌍둥이지요.
마지막에 현빈이 채근합니다.
"옥샘도 한 말씀 하시죠?"
자지러지게 한바탕 웃고,
늘처럼 감자싸움으로 산골 밤고요를 헤집었지요.

그리고, 어른 모임.
대학생이 되면 품앗이로 물꼬의 도움꾼이 되겠다던 약속을 지켜낸
승렬샘 광석샘 지민샘 웅희샘과
공동체 식구 못잖은 역할을 해내는 승현샘, 나윤샘, 선진셈, 용주샘,
이곳 십년차가 다 돼가는 품앗이고 논두렁인, 좋은 기운을 나눠주는 유상샘,
큰 품앗이 성실꾼 태석샘과 온 힘을 다해주는 현주샘,
첫 걸음이나 적지않은 힘을 나눠주었던 상도샘,
어른들 몫보다 더 많이 해냈던 청이형님,
물꼬의 밥알식구이면서 돌아가며 가마솥방을 채운 안은희샘과 조은희샘,...
"첨에 아이들만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이들 교육이 주지만 이 생활이 중요하니, 이 삶이 중요하니까..."
직접 나설 때, 일을 찾아서 할 때 느낌이 온다는 승현샘입니다.
경훈샘이 이어달리시네요.
장정 다섯이 연탄을 올리며 10분도 안걸렸다고,
사람의 힘, 젊은 사람의 힘에 놀랐다데요.
"물꼬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썼다면 일이 제대로 됐을까,
역시 자기 마음을 내서 일하고..."
품앗이 샘들 보며 대단하다고, 존경한다고 고백했지요.
밖에서 애들 만나면 등짝 때려가며 "자세 봐라, 자세", 랬을 거라는 현주샘,
이곳에서 아이들 세수를 시켜주며 진한 감동이 일더랍니다.
유상샘은 물꼬 오면 자신이 작아진 느낌에 대해 전합니다.
"일하며, 바깥에서, 수많은 고민들과 그런 것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
상도샘도 한마디 하네요.
"선생님, 하고 아이들이 찾아줄 때 고맙고 미안하고..."
자신이 교사로서 얼마나 부족한가를 생각했다 합니다.
새끼일꾼에서 처음 계자 품앗이로 온 웅희샘의 얘기도 깁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든 물꼬를 위한 일이든 도움이라기보다 결국 자신을 위한 거다,
살면서 배우는 지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자신이 겪은 경험과 배움, 물꼬에서만의 것이 있다네요.
"이불 개며, 귀찮잖아요, 집에서 도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주시거나
아침에 고대로 빠져나갔다가 밤에 그 이부자리 그대로 쏘옥 들어가고..."
이곳에서 챙기는 일상들에 대해 한 생각을 덧붙입니다.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갖가지 까닭으로 사람들이 오지요,
좋은 교사로 서는데, 좋은 사람으로 서는데, 내 아이를 위해서...
우리는 그 의도를 불손하다거나 잘못되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확장하는 것, 우주적으로,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지요.
그리고, 물꼬는 압니다,
이 시간을 이곳에 묻기 위해
자신의 생활 어떤 부분을 버려야 하고 공을 들여서 와야 한다는 걸.
사흘이 우리 생에 그리 긴 날도, 슨 대단한 것이 쏟아질리도 없겠지만
아이들이 그러하듯 우리 어른들도 이곳이 삶의 어떤 계기로 작용하리란 걸,
우리 생을 보다 풍성하게 하는데 한 걸음이 되리란 걸 믿습니다.

아이들 이야기 하나.
선진샘이랑 청이형님이랑 한땀두땀 하는데
김수현이 바느질도 잘하고 빨리 하더라고
그러고는 점자며 들쑤시고 다녀 선진샘도 따라나설려 했다지요.
"수현아, 나도 같이 가자."
그때 우리의 윤슬 선수가 한마디 던지더랍니다.
"저 샘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요."
바느질이 그렇지요, 실 끼는 것 봐줘야지, 실매듭 도와야지,
바늘길 살펴줘야지, 다 하고 다시 매듭 묶는 것 챙겨야지...

그리고 어른 이야기 하나.
오늘 손님이 한 분 다녀가셨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지요.
더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물꼬 교사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우아하게 가르치는 일만 하고 싶어하시지요.
대안학교 교사, 매력있는 일이니까.
그러나 삶터랑 같이 하고 있는 이런 곳의 교사란 게
칠판 앞에서만 서 있는 게 아니라
이런 공간을 꾸리기 위한 일상적인 일도 함께 해야 하는 걸요.
소사일과 교사일이 구분된 게 아니라 통합되어 있으니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농사일도 하고...
그래서 왔던 이들은 그만 발길을 돌리지요.
이런 곳이 지켜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다해야하는 것에 대해
자신 없거나, 옳다고 보지 않거나, 뭐 그런 게지요.
한마디 더!
선생님이면 애들 앞에서나 선생님이지,
우리 삶에도 선생이랍디까.
선생으로 치자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들의 선생님이지요, 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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