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계자, 5월 29일 해날 짱짱한 날

조회 수 1385 추천 수 0 2005.06.03 15:51:00

103 계자, 5월 29일 해날 짱짱한 날

"또 춤 추고 싶다."
호준입니다.
간밤에 가르쳐준 춤 하나를 몸으로 기억하며
해 건질려고 들어선 고래방에서 젤 앞줄에 서서 흔들흔들합니다.
어른들이 일손을 조금이라도 더 보탤까 하고
서넛을 빼고는 모두 포도밭에 오른 다음이었지요.
"토끼몰이 한 판 할까?"
안 잡은 건지 못 잡은 건지 풀어 키우게 된 물꼬의 검은 토끼가
집밖을 나가 신씨 할아버지네 콩잎을 죄 뜯어먹었다는 전갈이
엊저녁에 왔더랍니다.
그 토끼 오늘 아침운동 삼아
좇아다녀 보자고들 우르르 나갔겠지요.
저 잡을 줄 아는지 당체 뵈질 않아 학교 둘레 온 데를 들쑤셔봅니다.
장대 하나를 들고 앞장을 선 건 진만입니다.
결국 뛰어만 다니다 징소리에 아침 밥상 앞으로 갔댔지요.

아이들이 먼지풀풀 날리며 저들 놀던 자리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가방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혜수는 양말이 두 개나 뚫렸다고 엄마한테 혼날까 걱정이 태산이지만
놀이터풍경 시장풍경에 둘 다 좇아나갔던 연극놀이가 자꾸 생각난답니다.
쉬는 시간이 적은 다른 학교와 달리 많이 놀 수 있어서 좋았다는 혜린이는
제(자기)가 만든 노란 베갯잇이 큰 보물이네요.
어제의 수제비가 스스로 해서 지금도 군침이 돈다는 호준이,
강아지 번개랑 유달리 친했던, 마당춤극이 인상 깊었다던 인경이,
고래방에서 본 동화의 감동을 누구보다 진하게 느끼던 용빈이,
연극교실도 보글보글방도 봄이 가는 숲도 죄다 재미가 있더라는 권윤이,
진돗개 장순이를 누구보다 아끼던 동희는
말할 때마다 꼭 벌떡벌떡 일어나 예를 갖추며 말해서
우리도 덩달아 일어서게 만들었지요.
열이 나는 것도 아랑곳않고 대나무봉으로 잘도 싸우던 석인이,
연극놀이가 인상 깊었고 마당춤극을 잘 관람했다는 지용이는
아니 똑같이 아들 키우는데 누구집 애는 저리 번듯하냐고 입에 올리게 하는
초록물이 그만 들어버린 것 같은 아이였지요.
같이 있는 이에게 기쁨을 전하는, 자꾸만 자꾸만 계자 오고 싶다는 의로,
전보다 친구 사귀는 게 확실히 편해진 종화,
자꾸 쳐다보게 만들던 귀여운 정현이,
반죽도 저처럼 수다스럽게 하던 종훈이,
봄이 가는 숲을 잘 즐겼던 주연이,
뭐니뭐니 해도 올챙이 잡고 물장구 친 게 최고라는 범진이,
자기가 다니는 학교보다 백배 천배 만배는 좋다는 전현빈,
멋진 '사나이'가 되고 싶은 우혁이와 문규,
화장실 냄새가 고약했지만 그렇다고 큰 불편은 아니었다는 지현,
자전거타고 공찬 게 젤로 좋았다는 건우,
아, 유진이도 그랬습니다, 나뭇가지로 노는 것도 시냇가 물놀이도 좋았다 했지요,
건강한 하고잡이 지수,
먹는 것도 뭐나 잘 먹고 말도 야문데다 행동도 점잖았던,
아니 누가 일곱 살을 이리 키워놓은 건지 싶은,
자꾸만 눈이 가서 모두가 사랑했던 지원이도 있었습니다.
수제비할 때 다 힘을 안합쳐서 불만이라던 수줍은 귀남이,
밥 먹는 것도 다 재밌다던 상현,
물장난이 신났던 우재,
라면이 먹고 싶다던 찬영,
손말을 젤루 열심히 따라하던 이는 휘연이였지요.
"젤 재밌는 거요?"
"물꼬 온 거요."
정근입니다.
여름에 올 계획에 바쁜 승찬이,
이제 가서 아쉽고 또 아쉬운 현진이,
강강술래를 즐기던 이수현,
열이 좀 있어서 쳐다보면 눈이 퀭해 자꾸 안쓰러운데도 저는 마냥 신이 나던 근우,
문지기놀이하며 문을 들어서는 이에게 등짝을 열심히 후려치던 윤슬,
목소리 높아도 그만큼의 몫을 해주던 김수현,
그저 좋아 말로는 어마어마하게 표현할 수 있어도 글로는 안되겠다는 우성빈과 현빈,
물꼬가 자전거가 있어 다행이라는 영준이,
보글보글에서 겉꿀떡(꿀이 밖으로 삐져나왔다는 말?)을 만들었다 귀뜸해주는 석우,
그는 토끼몰이에서 토끼를 놓친게 못내 아쉽다 했지요.
심드렁하면서도, 지겹다고까지 하면서도, 슬슬 흥을 내던 진석이는
동화도 아주 잘봤답니다.
마친보람을 하러 복도에 주욱 한줄로 서서
하나씩 하나씩 글집에 도장을 찍을 녘
못다 나눈 얘기들을 건네는데,
진만이는 기어이 두 녀석을 울려놓고
윤슬이랑도 티격거립니다.
"집안싸움은 집에 가서 합시다!"
아이를 하나씩 보내면 다른 한 편에서,
청이형님이랑 현주샘이 예쁘게 만들었던 이번 계자의 이름표를
상도샘 선진샘 용주샘들은 글집에 붙여주었지요.
"영준이가 없네."
또 어느 구석에서 바쁘겠지요.
"버스 못타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까지 합세해 슬쩌기 놓는 엄포에 주눅도 잠시
가마솥방에 차린 물꼬표 김치김밥을 먹으러 신나게 달려가는 영준입니다.
도장이 버스 티켓이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은 어린 녀석들은
제 가방 지금 짐칸에 들었는데 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립니다.
모자를 늘 달고 사는 상혁이 야물게 다시 오마 인사하고
호준이며들이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하고 또 하는 사이
버스는 미끄러지듯 학교를 빠져나가네요.

그렇게 아이들이 돌아갔습니다.
잠시 멍히 앉았다가
남겨놓은 그림을 뒤적입니다.
참 따뜻하게 그려놓은 건 지용이의 그림입니다.
휘연이는 숲의 느낌을 자글자글하게 옮겨놓았고
우혁이는 산의 큰 윤곽을 잘 잡아놓았습니다.
전현빈은 아이들이 하나씩 돌을 던진
저수지가 그려놓은 물결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지현이는 가지 하나를 자세히도 들여다보았고,
의로는 연필로도 마치 수묵화를 그린 듯한데
머리 위로 앉는 햇살을 잘 그린 시도 함께 실었습니다.
아이들이 던진 돌에 솟아오른 물방울들을 살아있게 만든 건 김수현이고,
지수는 놀고 있는 제(자기)모습을 담았네요.
문규는 새도 봤나 봐요,
정근이는 저수지의 물조절기도 유심히 보았나 봅니다.
종훈이는 꼭 그의 표정 같은 그림입니다.
승찬이는 저수지를 구역별로 구분하여 살펴놓았고,
석인이는 나뭇가지 하나 세밀화로 옮겨놓았고,
혜수는 저수지가의 엉겅퀴가 인상적이었던 듯하네요.
이수현은 개망초를,
용빈이는 저수지의 물돌이를,
상혁이는 저수지 물 빛깔을,
인경이는 길섶 산딸기까지 옮겨놨습니다.
지원이 그림엔 저(자기)를 꼭 닮은 아이 하나 신이 나서 뛰고 있습니다.
동희는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잠자리를 보았나보네요.
권윤이는 옆 친구들과 오래 하늘바라기 한 모양이고,
석우는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은 저수지 풍경입니다.
다른 한 장에 띠 잎인 듯한 풀잎도 살아있는 것처럼 담았습니다.
호준이는 저수지를 둘러싼 수다스런 숲 정경을 그렸고,
우현빈은 아이들과 산길을 오르고 있네요.
주연이 곁엔 나비가 날았나봅니다
현진이 그림엔 예서 절친했던 이들이 등장하고,
정현이는 그의 얼굴마냥 아기자기한 것들로 가득찬 저수지를,
잎들을 유심히 보았다 싶은 혜린이 도화지엔 식물 둘이 섰습니다.
그리고 이름이 없는 그림들 몇 장은
유진이 거거나 우성빈 윤슬 종화 우재 상현 근우,
아니면 찬영 범진 영준 혜린이 진만이 진석이 것쯤 될 테지요,
보이지 않는 그림은 스케치북째 던져놓은 녀석들의 것이겠고.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계자를 같이 움직인 샘들의 여운도 오래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곳,
그래요 이곳이 주는 '위로'가 이곳을 찾게 하는 가장 큰 까닭 아니겠냐고들 했지요,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넘치는 초록에, 작아도 결코 묻히지 않는 꽃마리의 작은 웃음처럼
아이들이 그리 놀다갔지요.
불편한 곳에서 적잖이 힘들었을 아이들,
잘 지내주어 고맙지요,
그러도록 불편함을 메워준 어른들,
고맙고 또 고맙지요.
그리고,
여기는 이들로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고 살만해지는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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