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쇠날 맑되 지치지 않는 바람

조회 수 1342 추천 수 0 2005.04.24 13:22:00

< 4월 22일 쇠날 맑되 지치지 않는 바람 >

"우리는 개교기념일 안 쉬어요?"
일반학교 경험이 많은 우리 정근 선수가 곤해서 물었던 어제였지요.
해서 오늘은 느지막히 아침들을 먹자 하였더이다.

흙날과 시간을 좀 바꾸었습니다.
커튼이 쳐진 어둔 방에 촛불 하나를 켜고
'그릇이란 무엇입니까?' 물었습니다.
찬찬히 발걸음을 옮기며 작은 호수도 나갔지요,
겨울이면 물꼬 전용 아이스링크가 되는.
"그대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깊이 깊이 자신에게로 침잠해봅니다.
그만 저수지 바닥이 다 뵈는 듯하더이다.

안하면 서운한 영어도 짧게 복습하고
오늘은 도예방에 특강이 있어 읍내 갔습니다.
주곡리 옹기공방의 여봉구샘이 마음을 내신 거지요.
고이 탈 리 없지요, 좁은 차.
령이와 채규의 심술이 시작되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꺼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려놓고 간다고
엄포도 놓습니다.
뭐, 애들 많으니 한 둘 빠져도 괜찮다고.
주곡리로 들어서는 길 쥐 내려 찡얼대는 채규를 업고
언덕을 오르는데 굴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일제시대나 6.25 때쯤 만들어졌을.
이제는 버섯을 키우는 곳으로 또 포도주를 저장하는 곳으로들 쓰지요.
어데서도 할말 많은 우리들입니다.
류옥하다는 가본 곳이라고 혼자 먼저 좇아가,
얼마나 잘난 체를 하는지...
흙가래도 빚어 올려 유약도 바르고 물레도 돌려들 보았습니다.
토끼랑도 놀고 황토방에서 간식도 먹고.
차를 움직여주시던 김영규님이 돌아오는 길 농을 하셨지요.
"저 앞에 검문해."
"괜찮아요, 우리가 머리 숙이께요."
"자주 집에서들 일어나는 일인가 보네..."
얼른 저도 장난말을 건네는데 김영규님 한술 더 뜨십니다.
"아냐, 요 앞의 검문은 차 세우고 머리수 세는 거야."
누구를 내리게 할 것인가,
이런, 하늘이가 지목되었습니다.
"안내리면 되지."
하늘에게는 왜 아이들이 빼고 싶어하는지 잘 헤아려보라 하고
아이들에겐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에 대해 한 소리 했지요.

돌아오니 류옥하다 외가에서 염소 네 마리가
못다 왔던 나무와 꽃들과 실려 남쪽에서 왔습니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있어요..."
어찌 길러갈까, 누가 돌볼까로 둘러서서 얘기가 길었더이다.

피아노 특강도 있는 날,
서울에서 김주연님 장효은님이 내려오셨습니다.
조무래기들, 특히 하늘이랑 채규가 하도 훈수를 두길래
그래서 좀 치는 줄, 아니 칠 줄은 아는 줄 알았다시네요.
앉혀놓으니 쌩판 모르는 녀석들이더라고.
"첨엔 놀랬어요."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 우르르 올려져 있어
가르치고 있는 녀석의 손을 찾아가며 해야 했다고.
령이는 엄청 방해해대더니
자기 할 땐 성질 박박 내더라지요, 남들이 못하게 한다고.
남자 아이들은 지 수준에 맞게 뭐라도 완성된 곡을 치고 싶어 하고
여자 아이들은 언니들이 치는 예쁜 곡을 치고 싶어 하더랍니다.
그런데 들었던 가락, 그거 무섭습디다.
아이들이 귀로 한 훈련들이 있어
악보는 못읽어도 금새 따라 하더라지요.

"무서운 얘기!"
아이들이 졸라댑니다,
지들끼리 저녁모임 잘 끝내고 일하는 제 코앞에 와서.
"학교 전설요."
그런데 그것만은 안하려구요,
우린 다른 학교랑 달리 학교가 집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을 듯해.
"자, 무서운 이야기 2탄!"
어린 날을 보낸 외가의 풍경은 얼마나 무궁한 보고인지요,
동화로 시로, 그리고 이런 옛이야기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제가 타고 오르내렸던 큰 감나무와
누구나 입에 올리던 동네에서 젤 잘났던 오리감나무가 나옵니다.
귀신도 안나오는데 아이들은 이불 아래 모여 오돌오돌합니다.
바람 불지요, 어둑하지요...
"쾅!"
"엄마야!"
급히 화장실을 달려갔다 오던 우리의 정근선수,
들어서며 문에 부딪혔는데 적절한 효과음이 돼 준 게지요.
어린 날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얼마나 소중한 생의 자양분이 되는지,
외가가 그리운 밤입니다.

참, 첫돌잔치 선물로 대구의 보라샘과 서울의 김은숙님이 사주신
청소기가 들어왔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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