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다운 소나기였다. 열기를 확 꺾어준.

주말에 들어온 대처식구들이 나가는 편에

이 여름에 나온 푸성귀들로 반찬을 들려 보내다.

애호박도 볶고, 감자도 졸이고, 가지도 찌고, 오이도 무치고.

그리고 찌개와 마른 찬을 두어 가지 더해.

 

계자는 서른 셋 규모로 안내했다가 서른으로 고쳤더랬다.

어른들까지 하면 마흔.

이제 네 자리를 남겨두고 있다.

현재로 신청이 멈춘다 해도 모두 서른여섯.

밥해 먹고 지내기 맞춤하다.

새 얼굴도 반갑겠지만

오던 아이를 못 보고 건너뛰게 되면 아쉬움 크다.

나쁜 상황이 그 아이를 둘러싸지 않았기를 기도함.

 

달골 기숙사 옆 바위 축대 너머로 풀 무성한 데 쳐다보지 않았다.

외면한다고 풀이 더 자라지 않는 건 아니지.

칡넝쿨의 기세는 무서울 지경이다.

어제부터 그 공간 풀들을 치고 있다.

자두나무와 배나무를 기어올라 잡아먹으려했던.

축대 바로 위에 늘어선 회양목과 철쭉과 소나무와 불두화가

제 모습을 드러낸.

언제부터 들어와 창고동 현관에 쌓여있던 하얀 자갈(네 자루)

아침뜨락의 뽕나무 아래 옮겨다 두다.

난나와 티쭈가 섰는 자리에 깔아줄 참.

 

또 머리 맞대기.

폐교를 살려 학교로 써왔던 26년 역사의 끝에

학교터를 놓고 기숙사와 명상정원이 있는 달골을 캠퍼스화 하는가,

아니면 학교터를 계속 쓸 길을 찾는가를 거듭 논의해 왔다.

현재 구조와 같은 계자를 5년은 더 하련다 여러 해전부터 말해왔고,

그러자면 학교터도 5년은 더 쓸 수 있으면 좋으련.

학교터를 매입하는 건 어리석다.

그 비용을 어찌 마련한다 해도

건물은 여전히 낡았고 뭔가를 하는 데 돈은 여전히 필요할 테니까.

그런데도 계속 남는 학교터에 대한 미련은

26년 길을 들인 사람들(아이들 포함)의 소중한 시간을 저버리는 것만 같은

도의적 무거움이 아닌가 싶다.

 

안이 이리 무거울 때 밖에서는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주는 손들이 있다.

벗이 신상용품 하나를 챙겨주었더랬는데

대체로 물꼬에서 물건의 쓰임이 그렇듯 어찌나 요긴하게 쓰이는지.

그 하나만도 평생 쓰겠다 싶은데, 벗의 문자가 닿았다.

- 그것도 물건인데 닳겠지.

  내가 다음에 갖다 줄랬는데 거기선 늘 땀이 많으니...

  속옷 싼 거 한 개 값도 채 안 된다.

안다, 그것이 어디 돈의 문제이겠는가.

신경 쓰고 챙기고 보내고...

마음 찡했고, 그런 사랑이 또 사람을 살리지.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다.

메일을 하나 썼다.

학교 터 관련 건은 서서히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마룻바닥이 허물어진 곳도 두 곳이나 있는 현 상태로는 이 공간을 더 쓸 뜻을 접었다,

라고만 쓴다. 여우의 신포도?

손이 닿지 않아 먹지 못하고 돌아서던 여우. 저 포도는 너무 실 거야 라고 했던.

가장 좋은 그림은 지자체가 이곳을 매입하여 교육공간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그곳을 물꼬가 한 해 두 차례 계자 때만 빌려 쓰는 거?

아니면 같이 교육 주체가? 아니면 물꼬가 교육을 전담하는?

지자체는 다른 목적(경제원리)을 원하는데,

폐교활용처가 없는 것도 아니고(물꼬가 26년을 살뜰히 가꾸어왔고 아직 쓰고 있잖은가),

풀 한포기 뽑은 적 없는 교육청이 관리가 어렵다고 매각하겠다는 뜻도 명분이 부실하고,

지자체가 외부 사람들을 들여오기 위해

버젓이 관내에서 살고 있는 이를 쫓아낸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폐교 관련 기사를 비롯 충북에서 기사를 쓰는 기자 한 분께 의견을 묻는 글월이었다.

내일은, 오늘이네, 두 곳에 물꼬의 뜻을 전하는 글월을 쓰려 한다.

 

모든 일은 늘 그리 한꺼번에 오지.

이번 주말까지 올해 내는 책의 초고 수정본을 마감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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