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걸어옵니다.

엄마와 아빠가 담겼고, 내일도 모레도 안은 아이들이 저기 걸어옵니다.

온 우주가 물꼬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반갑습니다, 2019 여름 계절자유학교 우리 아이들!

스무 다섯의(한 아이는 입원 중이지만 회복되는 대로 합류합니다. 부디!) 아이들과

스물의 어른(새끼일꾼과 밥바라지 포함)이 함께합니다.


선풍기(가마솥방과 교무실, 고래방 천장에 있기는 하나)도 에어컨도 귀한 이곳입니다.

그래도 아름드리 둘러친 나무들 있고 물 흐르는 계곡 있으니

도시 더위와는 질감이 다른 더위입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겨울이 춥듯이. 자연스러운 거지요.

이 더위가, 이 불편함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지는 않습니다.


뜨거운 한낮에 마당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습니다.

그게 아이들입니다.

적응을 잘 하냐구요?

이것들은(당연히 아이들을 말하지요) 사람이 아닙니다.

동물입니다. 귀신같이 분위기를 압니다.

자신들이 따뜻하게 받아들여지는 곳이란 걸 아는 게지요.

금세, 오래 이곳에서 같이 살아온 식구들만 같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이 우리를 가르칩니다.

글집 표지를 그리던 아이들이

실패한 그림을 다른 무언가로 전환시키고,

다 못 그렸지만 그 상황을 제 입으로 말하고,

앞을 망쳤지만 뒷장에 그리고,

어떻게 해도 당당한 아이들입니다.

잘 그리거나 못 그리거나 그립니다, 그냥.

무한한 긍정, 그게 또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들어오면서 트럭과 아주 가볍게 닿았습니다.

어르신들 말씀에 액땜한다는 말이 있지요.

다행하고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놀래지도 않았고, 물론 다치지도 않았습니다.

늘 하늘에 고마울 일 많은 물꼬입니다.

우리는 괜찮은데 트럭에 탄 사람도 괜찮은가 걱정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서해바다를 지나 거인폭포에 이르는 물꼬 수영장으로 아이들이 가는 길,

마을의 큰형님느티나무를 지나 호두나무 밭을 지나

백두산 어디메 쯤의 깊은 숲길 같은 호젓한 풀 섶을 가르고 계곡에 이르지요.

이 더위에 몸이 오싹할 선선함이라니!

물꼬가 가진 게 많습니다. 저 하늘, 저 산, 저 들,...

들일 데 없어 둘러친 것들이 모다 아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합니다.


저녁, 아이들이 노래집을 들고 노래를 부릅니다.

물꼬만 아는 노래를 배우기도 합니다.

손말(수어)을 함께 익히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노래를 좋아합니다.

어디 악기가 있어야만 부르는 노래라던가요.

어쩌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그 소리를 들을라치면

아, 여기가 정토고 천국이고 극락이다 싶습니다.


무궁화호를 타고 온 아이들이

무궁화꽃이 핀 물꼬 마당으로 들어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놀았습니다.

전화기도 없이 놀이기구도 없이 이렇게 재미날 수 있냐고 야단입니다.

여기서는 그렇게 온몸으로 놉니다.

잘도 노는 아이들입니다.

아암, 그래야지요.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말하고 놀이를 통해 배우고 놀이를 통해 몸도 키우고

놀이를 통하여 관계맺는 법도 익힙니다.

“내일도 대동놀이 해요?”

아이들이 이구동성 물었습니다.


밤,

여자방 남자방 잠자리에서 샘들이 책 읽어주는 소리가

복도를 넘어옵니다.

낭랑합니다. 따뜻합니다.

원시적인 곳이나 샘들의 손발로 그 불편을 메우며 계자를 꾸립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사람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서로 마주하는 눈과 온기 아닐지요.


아이들이 잠든 밤 가마솥방에서는

오늘을 갈무리하고 내일의 움직임을 가늠하는 샘들이 늦도록 앉아있습니다.

밥바라지 1호기 2호기(예비인력 3호도 있음)는

역대 가장 정성스럽고 맛난 밥을 내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돈으로 사람 손을 사본 적 없는 물꼬 밥바라지입니다.

기꺼이 자신을 쓰겠다는 이들이 모인 이곳입니다.

그런 기운이 모인 곳일진대 어떻게 아이들이 아니 좋을 수가 있겠는지요.


164 계자에는 이곳에 모인 어른들만이 아이들을 건사하는 게 아닙니다.

품앗이샘들이 들여온 먹을거리들 뿐 아니라

마을 이웃이 복숭아를 실어왔고,

멀리서 부모님들이 보내온 먹을거리들이 택배로 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큽니다.

부모 아니어도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손들이 있다는 이 엄청난 환대가

또한 우리 아이들을 살찌울 테지요.

더하여 물꼬에는 정녕 큰 '빽'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

아이들을 섬기는 일에 무엇이 두렵겠는지요.


잘 있겠습니다.

잘 지내시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였습니다...


- 아이들과 보낼 날들에 대한 벅참으로 쉬 잠들 수 없는 밤,

  자유학교 물꼬 절


* 다음 소식은 천천히, 퍽 천천히 드릴 듯합니다. 

  아이들과 어슬렁거리고 뒹구는 데 공을 더 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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