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흗날.

도둑비가 다녀간 간밤, 샘들이 수행을 하고 나오니 말짱해진 하늘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달골까지 산책을 나선 아이들은 달골 명상정원 아침뜨樂을 걷고 왔습니다.

날벌레가 맴돌며 귀찮게 하긴 했으나

아침을 여는 산이 주는 기운을 담뿍 받는 것에야 그리 방해랄 것도 없는.

뜨자마자 기세가 보통이 아닌 더위일 것을

오르고 내리기 좋으라고 햇살이 저리 헐렁합니다.

한데모임을 끝내고 밤마실도 나갔지요.

걸을 일이 많은 축복을 누리는 이곳입니다.

날이 아주 맑진 않아 대해리 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을 다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예까지 와서 실망스럽지 말라고 애써서 보인 별들이었습니다.

산마을 너른 곳에 드러누워 별을 보노라면,

침묵 속에 사람 말고도 산마을 채운 소리를 듣노라면,

마음 절로 따뜻해지고 신비롭습니다.

아이들 왔다고 더 절묘한 날씨였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은 물에 들겠는 더위입니다, 도시에 견주면 별 것도 아닐 테지만.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습니다.

거인폭포를 암벽등반가마냥 기어오르고 미끄러져 내리는 물꼬 수영장,

뭔가 얻으려면 모험과 도전이 필요합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했나요.

온몸으로 배우는 현장이었군요.

위험과 즐거움은 그 간당간당한 경계에 같이 있습니다.

위험으로 넘어가기라도 할까 멀리서 구급상자를 들고 보초병처럼 서 있는 샘도 보이는군요.


연극놀이도 하지요.

짧은 시간의 준비에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과정’에 방점이 있는 활동입니다.

협업을 위해 어떻게 소통하고 그 속에 나도 즐겁고 너도 즐거운 지점을 찾아갑니다.

연극이 종합예술이라는 의미에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관계를 배우는가를 포함하고 있는 것임을 새삼 발견합니다.


닷샛날.

‘아침 10시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물마시기 등 건강에 유의하’라는

응급경보 문자가 들어옵니다.

그때 우리들은 산에 들어가고 있었지요.

‘오후 17:00 영동군 산사태 주의보 발령.

기후정보를 확인해주시고 입산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경보문자가 다시 들어왔을 때, 우리는 산을 나오고 있었습니다.


버스 시간에 맞춰 서둘러 움직여야 하는 산오름이 있는 아침인데도

한 아이의 생일잔치도 있었네요.

피아노와 비올라의 반주에 모두 ‘물꼬에서 부르는 생일 노래’를 불러주었고,

초를 사이에 두고 모시송편과 콩백설기 위로

나리꽃과 배롱꽃이 핀 떡 쟁반이 나왔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마지막 정상을 빼고) 숲 그늘이 깊은 민주지산(1,242m)은

그래서 여름산행에 더할나위없이 그만인 곳입니다.

1998년 4월 1일 갑자기 내린 봄눈에 특전사 여섯도 삼켰던 산은

그래서 늘 더 단단히 준비하게 합니다.

대해 골짝 들머리까지 2km를 걸어 내려가

산 아랫마을 물한리로 들어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10여 분 달려가 부려진 아이들은

산 안내판 앞에서 어느 길로 어떻게 오를지부터 의논했지요.

지점마다 파묻어놓은 사탕이,

또 골이 깊어 스민 이야기도 많은 골짝에서

안내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함이

다음 걸음을 가게도 합니다.


물꼬에서 배운 노래들을 산이 떠나가라 부르며 오르고들 있었습니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입을 멈추지 않는, 기운도 좋은 아이들입니다.

어느결에 닿은 정상.

세상에! 꼭대기에 이르기 100미터 전 흐려있던 하늘이 걸음을 따라 열리더니

우리가 주변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음을 실감케

발아래 젖은 계곡과 멀리 개미 같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른 자만이 만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런 것도 기적이라 하겠습니다.

비가 쏟아진다고 물꼬에 남은 이들이 걱정하며 산으로 문자를 보냈더랬는데,

정상 표지석까지 밟고 우린 말짱하게 산을 내려오고 있었지요.

산을 올랐던 다른 어른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이 어린 아이들이 이리 높은 산에 있냐며 감탄들 하였지요.

아이들 어깨가 한껏 올랐갔다마다요.


산을 다 내려와서 쏟아진 소나기,

아, 그때 산 아래 있는 절이 보였습니다.

거기 스며들어 몸을 닦고, 꿀차를 마십니다.

떠나는 버스를 포기하고

물꼬 샘들 차 세 대가 모두를 실어날랐습니다.

특별하게 시작했던 164 계자이더니 마지막까지 그러합니다.

아이들은 운도 좋지요, 버스를 탔더라면 다시 2km를 걸어서 들어왔을 것을

학교 마당까지 차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내내 노래 부르던 팥빙수가 기다리고 있었지요.


우리는 왜 산으로 갔을까요,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학교에서도 하고픈 것,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많은 데 말이지요.

더위를 피해, 건강을 위해, 협력과 협동을 배우려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라고, ...

자랑스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몸이 불편해 남은 아이 셋은 그들대로 쉬고 그림도 그리고 놀며 보낸)

아이들이라고 어려운 일이 없을까요, 

그런 일을 만나거들랑 우리가 오늘 거뜬히 넘은 산처럼 그리 너끈히 넘자,

혼자는 쉽지 않지만 어깨 겯는다면 뭐가 어려울까,

그리 같이 가자, 우리, 함께,

그렇게 돌아본 산오름이었지요.

산오름은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훌륭한 교육과정입니다.


샘 하나가 바삐 일터로 돌아가야 했는데,

가시면서까지 산오름에 운동화를 준비 못한 아이의 신발이며

구급약이며 걷어온 아이들 빨래며를 챙겨 놓고 나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야 보이는 것들,

안 돼 있지 않으면 몰랐던 일, 누군가는 뒤에서 하고 있었겠구나‘(한 교사의 날적이 가운데서)

깨닫는 시간이었지요.

사람이 사람으로 사람에게 주는 감동이 있습니다.

이번계자의 샘들이 어느 때보다 그러하였습니다.

해외여행으로도 더 바쁠 이 시대 젊은이들이

이 거친 환경에 와서 기꺼이 마음을 내 아이들을 건사하고 있습니다.

전화기를 밀쳐두고, TV도 없이,

우리를 현란하게 하고 마치 그 모든 것이 필요한 양 착각하게 하는 광고를 떠나

정녕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따져보고,

사람을 보고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를 만들려고,

사람살이를 톺아보려고,

물꼬에 모인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나눠주고 싶은 게지요.


눈 떠서부터 감을 때까지 온전히 여기서 사는 하루는 그래서 길고,

언제 날이 다 갔는가 싶게 계자는 짧습니다.

강강술래를 하고 나오자

부엌에서는 감자를 살짝 쪄내고, 마당에서는 땅이 젖었는데도 모닥불이 타올랐습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내는 샘들입니다.

여덟 살 정인이가 겨울에 다시 오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했고,

아홉 살 지율이가 그랬네요, 자라서 밥바라지 보조를 하겠다고 말입니다.

넘치는 사랑은 둘째 치고

손이 많은 가는 요리들도 거침없이 나왔던 밥상을 받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들 존재만으로 흠뻑 젖는 시간,

샘들에게는 아이 적의 우리의 신성성을 되찾는 시간,

계자가 그러합니다.


엿샛날 아침,

아이들이 이불을 털고 청소를 하고 있군요.

집에 가는 것이 기쁩니다.

물꼬를 떠나는 것이 아쉬울 게 없습니다, 뭐 당연히 다시 올 거라고들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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