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재중

조회 수 3096 추천 수 0 2004.05.09 03:23:00

예, 평소에도 전화받기가 수월치 않지만
지금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펄펄 끓는 이 냄비가 식기를 기다리며
오는 숱한 메일에도 단 한통의 답장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5월 4일 밤의 방송 프로그램은
우리가 사는 질감의 천분 만분의 일도 그려내지 못했으며
그릴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힘없는 이 곳이 좀 알려져서 논두렁이 늘어나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 한 것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지요.
잠깐 비쳐진 그걸로 뭘 이해한다 말입니까.
교육이 그 만큼 끝간데까지 가서
희망을 찾던 이들에게 빛 한가닥되었을지도 모르잖아,
어떤 이는 그렇게 해석합디다만
글쎄요...
울리는 전화를 생각없이 한 통 받았더라지요.
5학년 아이를 전학시키고 싶다합니다.
뭘 믿구요?
정말 이런 학교를 지지한다면 논두렁(후원)으로 가입해달랬더니
아이만 보내면 얼마라도 낸답니다.
안타깝네요, 수천만원을 쥐고 오신다고 입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만 말씀드렸지요.
묻고 싶은 게 많다면
먼저 샅샅이 홈페이지를 뒤적여본 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을 때 전화를 줄 수 있지 않을지요.
그런 수고는 젖혀두고
당장 전화기를 붙들고 어찌 하자합니다.
그것도 이기입니다.
이 가난한 살림이 굴러가느라 낮이고 밤이고 밭에 들에 나가있는데
어찌 자신만 생각하십니까.
불쑥 찾아오는 이는 더하지요.
세상에, 이웃도 아니고 아는 이도 아닌데
넘의 집에 쓰윽 들어서십니다.
멀리서 왔다는 게 반겨야할 당연한 까닭이랍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공부중인데요,
그러면 되려 몹시 언잖아하십니다.
절박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어제까지 버젓이 탈없이 살지 않으셨습니까.
날이 한참 가고 달도 몇 번간 뒤에도
여전히 지금 가진 관심이 유효하다면
그땐 오십사하지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은 부재중'이랍니다.
죄송합니다!

* 덧붙임: 정녕 이 일이 가치롭고
그래서 물꼬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야 한다 여기신다면
저희 논두렁이 되어주심 얼마나 좋을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공지 [후원] 논두렁에 콩 심는 사람들 [13] 관리자 2009-06-27 32103
공지 긴 글 · 1 - 책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한울림, 2019) file 물꼬 2019-10-01 15594
공지 [긴 글] 책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도서출판 공명, 2020) file 물꼬 2020-06-01 13653
공지 [펌] 산 속 교사, 히말라야 산군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다 image 물꼬 2020-06-08 13144
공지 [8.12] 신간 <다시 학교를 읽다>(한울림, 2021) 물꼬 2021-07-31 12968
공지 2020학년도부터 활동한 사진은... 물꼬 2022-04-13 12688
공지 물꼬 머물기(물꼬 stay)’와 ‘집중수행’을 가릅니다 물꼬 2022-04-14 12793
공지 2022 세종도서(옛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 선정-<다시 학교를 읽다>(옥영경 / 한울림, 2021) 물꼬 2022-09-30 11641
공지 [12.27] 신간 《납작하지 않은 세상, 자유롭거나 불편하거나》 (한울림, 2022) 물꼬 2022-12-30 9881
공지 2024학년도 한해살이;학사일정 (2024.3 ~ 2025.2) 물꼬 2024-02-12 2107
162 [수정] 2020학년도 겨울 일정 물꼬 2020-11-09 1614
161 2020학년도 겨울 계자 밥바라지 자원봉사 file 물꼬 2020-12-01 1578
160 2020학년도 겨울 계자 자원봉사 file 물꼬 2020-12-01 2690
159 [12.26~27] 2020학년도 겨울 청소년 계자 file [1] 물꼬 2020-12-01 1693
158 [2021.1.17~22] 2020학년도 겨울 계자(167계자/초등) file 물꼬 2020-12-01 1922
157 [특보 2020-12-31] 단상(斷想) - 2020학년도 겨울 일정을 이어가며 물꼬 2020-12-31 1770
156 [특보 2021-01-03] 1월 10일까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합니다 물꼬 2021-01-11 1713
155 [특보 2021-01-11] 1월 14일 오후 전화 드리겠습니다 물꼬 2021-01-11 1913
154 [2.26~28] 2월 어른의 학교 물꼬 2021-02-03 1570
153 167계자 사진 물꼬 2021-02-08 1627
152 [2.15] 167계자 사후 통화 물꼬 2021-02-10 1546
151 [2021-02-22] 국악방송 문화시대 김경란입니다 : 월요초대석-옥영경 물꼬 2021-03-02 1602
150 [2.10] 명상정원 아침뜨樂(락)의 측백나무 133그루 ‘분양’ 완료 물꼬 2021-03-08 1688
149 2021학년도 한해살이(2021.3 ~ 2022.2) 물꼬 2021-03-08 4472
148 [4.12~18] 2021 이레 비움잔치(밥끊기; 단식수행) 물꼬 2021-03-08 1589
147 4월에는 물꼬 2021-03-22 1518
146 [4.11] 황실다례 시연 그리고 물꼬 2021-03-28 1524
145 [4.23~25] 4월 빈들모임 물꼬 2021-04-06 1571
144 5월에는 물꼬 2021-05-05 1384
143 [5.3~16] 범버꾸살이(들살이) 물꼬 2021-05-05 155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