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에 한 요구(민들레 43호를 읽고)

조회 수 2673 추천 수 0 2006.03.02 16:47:00
배고픈 이가 먹어야 하듯
아픈 이가 치료를 받아야 하듯
아이들은 아무 조건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물꼬가 하는 나날의 교육에 배움값이 없는 까닭입니다.

어른은 자신의 선택과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 앞에서 교사입니다.
물꼬 공동체 식구는 모두가 교사이되
가르치는 값을 따로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한 집안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잡지 '민들레' 편집실에 드립니다!


눈 나리는 대해리는
이 세상의 소용돌이를 아득하게 만드는 재주도 지닌 듯합니다.
겨울산중은 자신을 안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기에 더없는 곳이라지요.

'민들레 43호'(2006년 1-2월호)를 읽었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연관된 글만 읽었다지요, 활자로부터 먼 생활이네요.
관계된 글이 실려도 보내주지는 않는 모양이데요.
이 산골에서 구하기 힘들까, 새로 학부모가 되는 분이 두고 가셨더이다.
이런 일에 휩쓸린 물꼬의 서투름과 모자람은 참으로 큰 숙제겠지요.
나아질 겝니다, 아이들을 보고 가니까요.


1. 이글을 쓰는 까닭

1989년 열린글나눔삶터를 시작으로 방과후공부를 하던 물꼬는
1994년 첫 계절학교를 다녀와 10년 뒤 바로 그런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 약속했고
10년 동안 계절학교와 방과후공부를 통해 새로운 학교를 연습했습니다.
마침내 2004년, 물꼬생태공동체의 지원을 받아 그 약속을 지켜냈으며
2006학년도 상설학교 3년차를 맞고 있지요.
2005학년도에 학교와 부모들 사이에 두 차례의 갈등을 겪은 결과
나간 부모들 가운데 몇의 대표가 민들레 43호에 물꼬 관련 글을 실었습니다.
민들레는 그 글 대신 민들레식의 질문서를 만들어 물꼬에 다급하게 보냈으나
물꼬는 대답을 않겠다 하였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어디 서로를 다 이해하며 살아갑디까.
도저히 소통이 안 되었으니 나갔을 겝니다.
살아가다 어데메쯤에서 만났을 때는 성장한 서로가 있겠지요.
그런데 민들레와 학부모 사이에 달포가 넘는 기간 동안 오고간 일을
물꼬는 민들레 43호를 통해서야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나아가 거짓된 부모 글을 지면에 올렸음은
민들레가 그 글의 공표에 대해 지지와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민들레에게 사실의 진위 여부도 모르면서 한 공간을 훼손한 책임을 물으려 합니다.
분명하게 다시 말씀드리지만,
물꼬는 이 글을 통해 나간 부모들하고 사이에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의도가 추호도 없으며
다만 애써서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작은 공간에 입힌,
민들레가 지닌 '대안권력횡포'를 따집니다.
이것이 물꼬같이 힘없는 곳에도 손발을 보태는 선한 이들에 대한 예의이며
물꼬같이 허물 많은 곳에 제 살림을 나누는 논두렁(후원회원)에 대해
물꼬가 그나마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길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 손발을 보태고 재정을 보탠,
그들이 느낄 실망과 분노를 생각하면 말이 다 무색해집니다.
물꼬 때문에 그들에게도 던져지는 돌일 것이니
물꼬가 막아서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평화는 과정 속에 있다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이 방식이 정말 옳은 길인가를 묻고 또 묻는 어려움이 남았다지요.


2. 물꼬는 왜 문제의 학부모 글(민들레 43호)에 공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가

물꼬는 이 글에서 민들레 43호에 실린 거짓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려다
역시 민들레의 질문서 조항에 대해 함구했던 것과 같은 까닭으로
그 학부모의 글에 대한 공개적 댓글은 피합니다.

1)
둘이 싸우고 있습니다.
화가 잔뜩 나 있지요.
그럴 때 쉼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간에 자신들을 맡긴 채 있어보는 게 해결이 되기도 합니다.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길이 없지만
때로 시간이 끼어들고 나면 서로가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도 생기고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도 되지요.
아주 나쁘게는 여전히 시간이 흘러도 으르렁거릴지 모르지만
대개는 웃으며 옛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어느 자리에서 다시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게 사람살일 것입니다.
민들레는
학교와 밥알간의 서로간의 진정한 소통과 화해를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화가 나서 막 달려 나간 이에게서 들은 얘기를 출발점으로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은 이들과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한동희님의 글로 볼 때
소통과 화해에 관심이 있다는 민들레의 말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민들레의 미성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김경옥님과의 전화통화에서 민들레가 그리 어리석은 집단은 아니라 하니,
그렇다면 민들레는 미성숙한 거란 말인 지요.
결과적으로 민들레는 지금 싸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민들레는 지금 말해라, 해라,
그것도 민들레의 지면을 통해 하라 했습니다.
그게 왜 한쪽으로 치우친 듯 보이는 '민들레여야' 하고
'지금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런 오만은 또 어딨답니까.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잡지의 편의와 편리, 목적을 위한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2)
민들레는 '소통'을 원했다고 했는데
민들레 43호를 위해 물꼬에 보낸 메일과 마감을 위한 독촉도 그렇거니와
'나간 밥알 대표'라는 한동희님의 글은 누가 읽더라도
물꼬와 나간 부모들간의 싸움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 소통의 자리가 민들레여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그간의 민들레가 물꼬하고의 관계에 신뢰를 주지 못한 것과 관계가 있겠지요
(아래 글에서 다시 언급합니다)
실린 글이 그 정도니 민들레와 나간 학부모들 사이에서
동틀 때까지 그칠 줄 몰랐던 그 밤, 그리고 글을 조율하기까지 오고 간 얘기는
얼마나 무성할 지요.
그러나 물꼬는 나간 학부모들과 이제 말을 섞지 않을 것입니다,
소통하려했으나 힘이 모자랐고,
또한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기에.
물꼬 홈페이지에 오르는, 나간 학부모들의 악성글들에 어떠한 반응을 하지 않은 것도,
민들레의 인터뷰 조항에 답글을 보내지 않은 것도 그 같은 까닭입니다.
그것이 한 때 아름다운 기억과 배움을 이곳에서 쌓았던 아이들에 대한
물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양철북을 치는 소년이 아닌 바에야
그 아이들도 자라 어른이 될 테고
훗날 저들 올곧게 키우겠다는 이름으로
골 깊은 감정싸움을 하는 어른들을 보고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꼬는 떠난 아이들이 언젠가 다니러 올 수 있는 길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너무나 행복했던 배움의 길이었기에.
그래서,
앞으로도 나간 부모들과 하는 직접적인 싸움은 없을 것입니다.

3)
물꼬는 이제 '나간 학부모'를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골이 깊어진 이들이 서로를 할퀴며 곤두박질치는 이 세상의 어두운 꼴새를
그간 너무 많이 보아온 탓이랍니다.
물꼬는 이 갈등의 날들에서 '시간'이야말로 해결이라 믿기에
다른 어떤 말도 계속적인 싸움거리가 될 수 밖에 없기에
공개적으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기다릴 것입니다, 선을 북돋우며.
초대 기독교 수도공동체의 규칙에서처럼
기다리는 중에 내가 변화되고
그러면 변화된 나로 인하여 형제가 변할 날도 올 것이라는,
기다림 속에 자라란다는 선처럼
물꼬는 정말 열심히 올곧게 사는 것으로
소통을 시도해 나갈 것입니다.


물꼬가 지금 문제의 밥알들(떠난 이들의 전부가 아니므로)에게 할 말이 없는
까닭이 이러합니다.


3. 민들레의 오만과 편견

민들레도 참 딱하십니다.
물꼬가 그렇게 비상식적으로 사는데 누가 여기 남아 일을 하고 있겠습니까.
누가 자원봉사를 하고 또 누가 후원회비를 낸단 말입니까.
민들레가 물꼬에 대한 부모들의 생각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바에야
그런 글을 그대로 실었을 리 만무합니다.
나간 학부모들의 말과 글에 대한 심정적인 확고한 지지가 있지 않고서야
그 글을 고스란히 물꼬의 확인도 없이 실었을 리가 없겠지요.
물꼬에 대한 민들레의 그 오만이 어디로부터 비롯됐을까요?
물꼬를 업수히 여겨서 그렇고
오해해서 그렇고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모르면서 그런 글을 싣게 된 그 배경,
대안교육 물결의 현장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착각이 아니라면
한 사람에 대해 한 단체에 대해 이따위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겝니다.
민들레가 지면에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한동희님의 글을 실었다는 것은
그 글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로 해석하기에 충분합니다.
덧붙여,
나간 부모들이라지만 누가 함께 하는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가장 가난한 가정이 어떻게 물꼬에 남을 수 있었을까요?
물꼬를 떠난 부모 가운데도 비록 몸이 떠났으나
외려 민들레 잡지를 읽고 물꼬에 지지의 소식을 전하고 있는 일도 있답니다.
물꼬는 그들을 어렵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까지 끌여 들여 물꼬를 정당화시키진 않겠습니다.
함께 고생했던 부모와 부모가 물꼬 때문에 틀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서서 물꼬를 지지하는 순간
나간 학부모들과 얼굴을 서로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2006년 초 민들레는 물꼬를 나간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민들레가 알던 사실과 사뭇 달라 고심 끝에 학부모들과 좌담을 갖고
저녁부터 이튿날 동틀 때까지 나간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지요.
부모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도 해보았지만
그 내용이 미흡하다고 부모들이 따로 글을 쓰겠다 했답니다.
민들레 편집실에 의하면 이게 한동희님의 글이 실리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데 민들레는 물꼬에
"물꼬 부모님 인터뷰는 거의 정리가 끝나가는 상태"(민들레 편집실의 글에서)에서야
비로소(2월 9일) 질문서를 보내왔습니다.
쉬는 주간으로 친지어른들을 돌아보고 있던 물꼬 식구들은
2월 10일, 메일을 보냈으며 간단하게 전화 인터뷰만 하면 된다는
민들레 조영은님의 전화를 받았고,
2월 12일 학교에 들어와서야 그 글을 읽었으며
다음 날인 2월 13일, 답메일을 보내게 되었지요.
(12일 저녁 민들레의 조영은님이 두 차례, 김경옥님이 두 차례나
마감해야 한다며 독촉전화를 해왔지요.)
그런데 물꼬는
그 문항이 이미 물꼬에 악의적인, 나간 부모에게 기울어졌다고 판단했고
(만약 다른 설문조사였다면 성실하게 썼겠지요.)
부모가 쓴 글도 아니고 자유학교 물꼬 여건과 맞지도 않는 문항이었으므로
또, 이미 나간 부모들과 서로 조율까지 끝낸 일에 대해 뒤늦게 구색을 갖춘다고 보였으며,
그리고 편집 마감 임박해서야 잡지를 위해 원고를 독촉하던 함부로 된 처사에 대해
무엇보다 부모들과 서로를 갉아먹는 진흙탕 같은 싸움이 될까 하여
문항에 대답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실 확인 차원에서 몇 가지 묻고자 한다."
했던 민들레가 물어온 것은 물꼬에 대한 이해랑 전혀 다른 방향의 글이었고
그 문항들이 말도 안 된다 여겼던 물꼬는 그래서 침묵 하겠다 하였더이다.
물고 뜯고 있으면 결국 우리 자신을 찢는 꼴이며
누구보다 언젠가 관련된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런지요.
민들레가 정녕 기울어지지 않은 시선으로 사실을 알고 싶었다면
한동희님이 쓴 글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해야 했을 것이며,
물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었다면
그렇게 애써서 한 좌담처럼 물꼬와도 얘기를 나눠야했을 것입니다.
그 문항만 하더라도 만약 물꼬를 알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면
물꼬는 민들레가 만드는 이 앞의 현황자료 설문처럼
충실하게 답변을 하였겠지요.
게다 민들레는
"이 글은 저희가 참고만 하고,
물꼬 부모님과 옥선생님 인터뷰 글을 다음호 민들레(1-2월호)에 함께"
(민들레 편집실 글에서)
싣는다고 해놓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물꼬는 그 문항에 대한 인터뷰가 내용의 전부인 줄 알았던 거지요.
심지어 민들레의 이런 행동은 뭔가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케 하며
그간 민들레가 물꼬를 대해왔던 저간의 일들과도 연관이 있겠습니다.

민들레 식구는 94년 12월의 '한겨레 21' 기사를 보고 물꼬를 처음 찾았으며
95년 세 번째 계자, 네 번째 계자,
그리고 96년 여덟 번째 계자에도 얼굴을 비춘 적이 있고,
97년 일본의 키노쿠니 사람들이 와서 했던 물꼬의 작은 행사를 통해
여러 대안학교 인맥들과도 연결고리를 만들었던 민들레로 기억하는데,
물꼬의 존재를 익히 알아왔음에도
줄기차게 살아가는 물꼬의 행적을 무슨 까닭에선지 애써 외면해왔습니다
(그 당시 몇이나 자유학교가 가능하다 하였습니까).
준비하다 도중하차하고 마는 숱한 대안학교의 전례들을 잘 알면서
십년의 소중한 꿈으로 학교 문을 열던 날 취재는 고사하고
축하 인사 한 마디를 해준 바가 없으며,
그런데도 마치 민들레는 물꼬를 잘 알고 있는 듯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저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물꼬가 다른 대안학교와 다른 산골공동체배움터의 의미를 알았다면
그런 문항을 보내지도 않았을 테지요.
다시 말하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고,
떠난 부모시각에 편중된 질문서였지요.
새로 출발하는 새로운 학교들에서조차
몇 신문사의 기자들이 굳이 물꼬를 취재하자고 연락을 하면
"다른 학교에 전화 하니까
그래도 물꼬가 오래 되었다고, 물꼬를 만나야 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말해왔다는데
정작 새로운 학교들을 위한 정보를 담는 잡지라면서
물꼬의 존재와 노력을 애써서 폄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례도 없었겠지요.

민들레 6호(1999년 11월-12월)에 대해 2000년 2월 22일 물꼬는
신상범 김경옥(민들레 편집실에 계신 김경옥님이랑 동명이인)의 이름으로
민들레에 사실과 다른 몇 가지를 지적하며
"글이 실리기 전에 지금 저희의 생각이나 변화에 대해 미리 확인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물꼬는 늘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희는 자유학교 물꼬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희망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오해 없
이 잘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요지의 항의 글을 보낸 적이 있지요.

또 민들레는 통권 30호(2003년 11-12월호)에서
초등 대안학교 현황(물꼬는 초중고가 다 있는 학교입니다)을 다루면서
편집실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각 주제별로 문항을 만들어 현재 운영중인 곳 13곳과 준비 중인 3곳,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2곳에 보내서 15곳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다. 내년에 문을 여는 자유학교 물꼬와 아직 외부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춘천의 하늘새싹자람터는 공개되어 있는 자료와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표 안에 간략하게 정리했다...."
민들레는 왜 물꼬가 물꼬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설문지를 주지 않았을까요?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던 물꼬는 늘 홈페이지 관리를 제 때 못해
홈페이지가 사는 일의 현장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었지요.
민들레의 대표에게 그 일로 항의 전화를 했을 때
"김경옥(민들레 편집실)씨,
물꼬에는 그 설문지 안 보냈나?"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던 대표님의 음성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민들레가 물꼬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글이 버젓이 지면에 실릴 수 있을 지요?
민들레는 물꼬에 결코 이번호의 '문제의 글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그리 실을 수 없었겠지요.
민들레는 문제의 민들레 43호에서 한동희님의 글 앞에 이리 쓰고 있습니다.
"고심 끝에 학부모님들 몇 분이 모여 좌담을 가졌습니다. 저녁부터 이튿날 동 틀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더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동희님의 글 다음에 이어지는 민들레 조영은님(물꼬에 보낸 메일)글에서는
이리 이어지지요.
"...그래서 더더욱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께는 전화로 이런저런 말씀을 들었고, 불쑥불쑥 궁금한 점이 올라오면 망설이지 않고 묻기도 했습니다... 부모님들에게 '내가 물꼬를 나가는 이유'라는 글을 10꼭지 받았습니다. 이 글은 저희가 참고만 하고, 물꼬부모님과 옥선생님 인터뷰 글을 다음 호에 민들레(1-2월호)에 함께 싣고 싶습니다."
그러는 동안 물꼬에는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
메일을 보냈다구요?
이미 기울어진 시선으로 형편없는 사람에게 대하듯 답글을 요구하는데,
기가 막힌 사람이 어떤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요?

다른 잡지라면 분노가 달랐을지 모르겠습니다.
더러 언론의 횡포를 보아오던 터이니까요.
그런데 새로운 학교의 올바름을 위해 귀 기울이고 노력한다는
그래서 스스로 대안교육전문잡지라고 표방하는 민들레에서
언론권력을 어찌 이리 휘두를 수 있는지 묻습니다.


4. 민들레에 대한 요구

민들레의 다음호에 사과의 글을 실어주십시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물꼬에 대한 거짓된 글을 실어 독자를 혼란케 하고
물꼬가 사람들의 선의의 노동을 착취하고 후원금을 갈취한 곳으로 오해케 했으며
누구보다 물꼬에 손발을 보태고 재정을 돕는 이들의 건강한 뜻을
비뚤게 만들었다는 내용을 담아서 말입니다.


5. 4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참으로 꼴이 우스울 일이지만
비제도에서 길이 없으면 제도(법)의 도움을 받아야지요.
물꼬는 힘이 약하여 어떤 권력과도 연줄이 없습니다.
고소장을 내는 일부터 손수 하여야겠지요.
물꼬를 지지하는 품앗이(자원봉사자)와 논두렁(후원회원) 가운데서 누군가
생업을 접고 그 일을 할 수도 없을 것이며,
설혹 변호사로 일하는 두엇의 선후배를 알고 있다 하여도
이렇게 낯 뜨거운 일에 차마 세울 수 없기에
물꼬 손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저희가 법정에 제출할 증거자료는 이런 것들이 되려나요.
- 열 가정 열 넷 아이라는 숫자의 진실에 대한 기록(입학원서를 통한)
- 부모 가운데 교무행정(수습교사도 아니었을 뿐더러)이 들어와
네 달(여섯 달이 아니라)을 머물고 떠난 편지
- 나간 학부모들이 들어오면서 약속했던 '후원'에 대한 글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었나 하는 통장기록
- 한 해 뒤의 학부모들이 생각했던 학교(문 연 날을 기념하는 첫돌잔치의 안내글)
- 무상교육에 대한 다른 이해(물꼬의 글과 한동희님의 글)
- '자유학교 물꼬'와 '물꼬생태공동체'에 관련된 모든 통장
- 논두렁들이 낸 후원통장내역
- 삼육초등의 학비와 물꼬의 해당 부모가 낸 돈(통장기록)
- 모든 재산이 교장샘 앞이라는 거짓에 대한 교장샘의 계좌와 재산 추적(경찰조사영역?)
- 이곳에서 부모들이 했던 말을 기록한 회의록
(아이들의 긍정적인 변모를 줄기차게 말해왔던)
- 아이들의 일들을 기록하고 공개했던 교사일지(홈페이지 '물꼬에선 요새')
- 필요할 때마다 했다는 대출에 대해
('단 한 차례 있었던 대출'이 어떤 경로를 통해 무엇을 위해 그러했나 하는 구체적 기록)
- 교사수급의 진실에 대한 자료(무보수와 산골살이? 올 사람이 없다!)
- 교장샘이 일을 할 수 없었던 병원기록(퇴행성초기의 무릎관절염)
- 물꼬의 홈페이지는 누가 관리 하는가
- 동무들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다투고 시비를 가리는 아이들이 아니었는데
교장샘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허위에 대한
물꼬를 상설 초창기에 다녀갔던 이들의 증언
- 학습에 대한 다른 이해(부모 욕구와 물꼬 배움터의 차이, 아미쉬공동체의 사례) 관련 글
- 민들레에서 온 메일(언제 왔는가?)과 통화기록(마감 전날에 받은 독촉전화)
- 문제의 부모들(나간 모두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이를 어디로 보냈는가
(공교육내의 대안학교라는 남한산초등, 사립 삼육초등, 대전 대안학교 푸른숲,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 홈스쿨링, ...)
- 물꼬 6년 아이와 2년 아이의 기록으로 본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욕구
- 물꼬에 남은 부모와 떠났으나 나간학부모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은 부모의 증언

이때의 물꼬는 민들레로부터 사과의 글을 넘어
민들레 43호에 대한 모든 회수,
그리고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도 함께 요구하겠습니다.


6. 마지막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달 여 이 서걱거렸던 시간들에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다 보여지는 한 존재를 제외하고는
떠난 밥알들과 나누었던 즐거운 날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물꼬와의 관계에서 1년 반, 혹은 6개월, 4개월, 2년을 보낸 존재들이니까요.
안에서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뒤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분명한 건 물꼬의 이 긴 글이 나간 부모들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나간 부모들이 있는 곳은 다른 현장이지
자유학교 물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런 거짓으로 물꼬를 공격하려 든다면
할 말이 더욱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민들레는 이 과정 안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던가,
아니라면 서로에게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했습니다.
살아가다보며 이해하는 지점도 생길 테고
어쩌다 어데선가 부딪히기도 할 테고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이어지겠지요.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다시는 보지 말자는 게 돼버립니다.
이러면 정녕 훗날 어찌 보겠는 지요.
떠나간 아이들이 이곳으로 올 길이 없어져버릴까
깊이 마음 아픕니다.
이래도저래도 민들레 43호 물꼬 관련글은
민들레가 말하는 소통을 위한 시도가 아니라
밥알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로 변질되는 길로 보이기에
물꼬는 그 길을 가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민들레의 행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요.
언론, 그 무서운 매체입니다,
그것도 대안교육전문잡지라는.
글쟁이도 아니고 배운 이는 더욱 아니어 참으로 어려웠던 글을 마무리하며
지난 2월 14일 물꼬 홈페이지 안에 올린 교장샘 글 하나를 덧붙여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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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14.불날 / 2005학년도에 있었던 일련의 갈등에 대해서

진창이지요, 요새, 물꼬 홈페이지 구석이.
12월에 나간 학부모가 잡지 민들레에다 전화를 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잡지는 달포동안 나간 다른 학부모들과도 나간 까닭을 모았다지요.
그 기사로 가난하다는 민들레가 책이 좀 더 팔릴 수 있으면 좋겠고
늘 이곳저곳 소식이 궁금한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면 좋을 일입니다.
그 잡지가 제대로 이런 공간들을 알리는 곳이 정말 맞다면
균형을 위해 물꼬도 잘 살펴보겠지요.

상설학교로 문을 열고 삼년차로 접어듭니다.
가난한 산골살이 말해 뭣 할려구요.
고생이 없지야 않았겠지요.
하지만 지난 두 해 아이들이랑 만든 정토가, 천국이, 우리를 살게 해주었습니다.
이걸 부정하신다면 서슴지 않고 나뿐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아이들과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끼리의 문제였던 거니까요.
아무렴 물꼬도 나아지겠지요.

우리 아이들 보기 부끄러울 일입니다.
"어른들이 왜들 저러시지?"
할 말이 없지요.
"그대는 왜 그러십니까? 무엇을 위해서?
이미 떠난 곳을 뭐 하러 미움을 안고 계속 돌아보고 또 돌아보시는지요?"
이제 좀 고만 했음 좋겠습니다, 민망합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분명 고생하신 부분들이 있고,
그토록 예뻤던 우리 아이들의 아비 어미였으며,
이 질퍽거리는 진창을 걷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강건케 해주었으므로.

이런 일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은 상황을 분명히 해준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물꼬의 지향과 학부모들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분명해지는 거지요.
"무상교육!
삶터와 배움터는 하나여야 한다!
부모와 학교의 아이들에 대한 안이해지지 않는 도움(헌신이랄 것까지 아니더라도)!
아이들을 어찌 키울 것인가 하는 냉정하고 솔직한 자신의 요구!
'스스로를 살려 섬기고 나누는 소박한 삶,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솟구쳐 오르는 나'라는 이념에 드러난 물꼬의 교육!"
2007학년도 입학대상은 더 철저하게 지역 중심으로 가겠지요.
같이 갈 수 없는 이들과 불필요한 공존은 이미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보는 명확한 계기이며
꼭 거쳐야할 시간이었겠지요, 어릴 때 앓았던 홍역처럼!
앓는 상황에서야 힘들겠지만 지나쳐갈 날이 오겠지요...
아무쪼록 떠난 부모님들이 찾아가신 좋은 길, 우리 아이들과 평화롭기를,
그리고 물꼬도 제 길을 잘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물꼬에 그늘이 되어주시는 논두렁분들과
기꺼이 손발이 되어주시는 품앗이분들께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한 물꼬의 서투름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훌륭한 보탬이 허투로 새지 않게 잘 살겠습니다,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며.
---------------------------


2006년 3월 1일 물날
자유학교 물꼬
맡은이: 교무행정 신상범

충북 영동군 상촌면 대해리 698 자유학교 물꼬 / 물꼬 생태공동체
043.743.4833 / 011.9921.8024
mulggo2004@hanmail.net
www.freeschool.or.kr



* 3월 9일 저녁 6시까지 물꼬 요구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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