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계자 갈무리글 / 김한미

조회 수 2518 추천 수 0 2020.02.25 08:35:35

 

<165번째 계절자유학교: 겨울 안에 든 봄날> 갈무리글

 


품앗이 김한미

 

물꼬에 다녀온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물꼬에서 몸 담고 있는 67일간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물꼬 밖의 세상에서도 좋은 변화들을 지니고 살아가고자 노력했던 지난 일주일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자신이 가진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라고 물으면 어김없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제 자신에게서 그러한 모습들은 찾을 수 없게 되고, 그런 모습들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스스로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짓던 잣대를 조금 내려놓고, 나름의 치유를 하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를 잘 알고 물꼬에 대한 애정이 있는 친구의 제안으로 물꼬에 가게 되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두렵고 떨렸지만,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막상 물꼬에 도착하고 나니 할머니집 같은 익숙한 분위기, 학교라는 장소가 가지는 포근하고 생기 있는 느낌, 무엇보다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이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텅 빈 공간의 이곳저곳을 청소했습니다. 기존의 공간이 제 본모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고, 그 과정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청소를 좋아합니다. 더욱이 뒷정리와 관련하여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이라는 옥샘의 말은 마법과도 같게 느껴졌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마법 주문같이 느껴져서, 호그와트 마법학교 마냥 물꼬를 신비로운 곳으로 여기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고, 마침내 아이들이 학교 안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무엇이 그리 급한지 와다다다 뛰어가며 나무 바닥이 울리는 소리, 샘들이 소문을 널리 퍼트리는 소리, 때가 되어 밥 종이 울리는 소리.. 비어보였던 공간이 많은 소리들로 채워지는 모습들은 마법을 부린 것 같았습니다. 문득, 내가 학교라는 장소를 아무 이유 없이 좋아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 할 일에 쫓겨 정신 없이 가마솥방으로 향하다가 말이죠. 새삼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이 소중했던 것이구나, 스스로의 두려움에 그 모든 사실을 잊고 살았구나 하며 벅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정신없이 또 다음 일정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군요!

 

함께 하는 샘들 중에서 대안학교에 재학 중인 현진샘이 있었습니다. 현진샘이 꿈을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물꼬로 이끌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특했습니다. 아직 어리기만 한데,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라뇨. 나이에 상관없이 각자 저마다의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새삼스레 깨닫기도 했습니다.

 

제도권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며 본 모습들은, 학교에서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생 실습 당시,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그저 겉모습만 튈 뿐, 학업에 대한 의욕이 없어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우연히 특별활동 시간에 이 학생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활짝 웃으며 생기있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그 때,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이 모든 학생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학교와 교사가 모든학생을 품을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꼬에는 참으로 때묻지 않은 아이들과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샘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참 기쁜 일입니다. 아이들만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부분의 어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어린아이들은 알고 있다.”

- 키스 해링

 

 

좋아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말입니다. 저 말처럼 아이들의 가능성은 정말이지 무한합니다. 하지만 계자 내내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불안한지 아이들에게 제한을 두는 자신을 보며 반성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른의 시선인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한을 하는 것에 있어서 기준을 찾는 것은 어려운 숙제입니다.

 

보글보글이 있었던 날, 칼 사용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 아이들로 하여금 충분한 경험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녁 하루재기 시간에 옥샘께 여쭈어 보았지요.

 

칼은, 어른이 써도 위험한 물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샘들이 칼의 활용에 대해 직접 시범을 보이는 것이지요.”

 

아주 명쾌한 해답이었습니다. 칼로 장난을 치거나, 부주의하게 다룬다면 단호하게 제지하여야 하고,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지켜보면 되는 것. 무엇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한걸까요. 나아가, 평소에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한 나머지 나를 잃어가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생활 전반을 함께하고 관찰하면서 제도권 학교에서는 알지 못할 아이들의 특성과 교우관계까지도 눈여겨 볼 수 있었습니다. 해건지기를 수행하며 달골에 오를 적에 하음이와 정인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습니다. 정인이, 조잘조잘 잘도 떠들어대는군요. 반면 하음이는 그저 듣습니다. 그들의 대화 방식이 그런가 싶으면서도, 하음이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더군요. 하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천천히 자신의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릴 줄 알던 의젓한 모습을 보인 거였죠. 아이들은 참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 다릅니다. 그 여러 면모를 발견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지요.

 

두 번의 교생 실습 때도 그렇고, 역시나 물꼬에 와서도 그렇고. 저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여러 아이들과 화려한 입담으로 대화를 풀어나가지 못합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면 된다는 굳건하게 생각했던 교사관이 허물어졌던 첫 번째 실습이었지요. 결국 두 번째의 실습 때는 스스로 아이들과 일정한 선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관계에는 일정한 선이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위안했습니다. 그게 선이었는지, 벽이었는지 생각하려 하지도 않고 말이죠.

 

그래도 끊임없이 학생들을 만나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예비 상담교사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등 스스로를 담금질 했습니다. 교사로서의 나는, 서툴어도 학생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예전에 생각했던 교사관을 세워나갔지요. 또한 세상에 다양한 학생들이 있듯이, 교사도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물꼬에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자연스레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온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쉬운 기억들도 있습니다. 전이 시간에 피아노를 쳐달라고 오던 지율이에게 샘 할 일이 많다며 거절한 것, 마지막 날 단추를 이용한 장난감을 만들어 달라던 하준이에게 시간이 남으면 해준다고 해놓고, 어물쩡 넘어간 것. 그리고 물꼬가 처음이라, 아이들을 바라볼 때 가능성의 눈으로 충분히 지켜봐주지 못한 것까지.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묻어두고 다음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저는 아침 잠이 많습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긴장한 채로 눈을 번쩍 뜰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물꼬에서, 아이들에게서, 함께하는 샘들에게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체력적으로 힘들고 스스로의 부족한 면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하던 감정을 모두 행복으로 귀결시킬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 이 이야기도 꼭 하고 싶습니다. 평소 엄마와 불화가 잦았고,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회피하며 시간이 약이겠거니,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습니다. 물꼬에서는 괜히 엄마가 생각이 나더군요. 산행을 가는 날 아침에 김밥을 싸면서 문득, 어머니가 참 좋다 노래를 부르면서 문득. 무엇보다 영동역에서 인서를 꼬옥 껴안아주는 인서 어머니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물꼬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니요. 물론 물꼬가 유일무이한 치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길다면 길었던 아픔의 방점을 찍을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사는 수많은 나를 긍정하게 되었고, 과거의 밝은 나를 온전히 찾지는 못했어도, 비온 뒤 맑음과도 같은 새로운 밝은 나를 찾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물꼬가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던 현택샘의 말이 떠오르네요.

 

갈무리글을 다 적고 나니 처음 경험한 품앗이는 그저 배움만 얻어가고 충분히 나누지 못한 것 같아 또 아쉬워집니다. 모두들 함께 해준 샘들과 아이들, 물꼬 덕분이겠지요. 저를 또 살아갈 수 있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165계자 마지막 날에서의 옥샘의 말씀을 떠올리며 갈무리글을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모두들 자신 안에 품고 있는 열정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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