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시 다케지의 ‘박식한 것과 현명한 것’ 가운데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현명함’은 물론 많이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요.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단 한 가지를 알고 있는 인간을 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단 한 가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 인간을 현명하다고 생각했죠. 그 단 한 가지란,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을 빌리면 ‘선(善)’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은 오늘날 도덕적 의미에서 선이냐 악이냐 따질 때의 선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에요. 따라서 사실 이 말은 되도록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그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하는 수 없어요.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이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며, 인간은 그 선을 얻어야만 비로소 만족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따라서 인간은 그것이 ‘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선’이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은 인간의 행복, 즉 참된 만족과 관계 있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과 달라요.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것이 선이며 그것을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만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죠. 즉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 ‘선’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이에요. 소크라테스가 모든 인간은 무지하다고 말할 때, 이 ‘무지’는 이 선에 대한 무지를 가리켜요.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죠.
중요한 것은 소크라테스는 상식이 부족하거나 글을 읽을 줄 모르거나 신문을 읽을 때 정치면 기사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을 무지하다거나 무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학식이 있으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무학이며, 참된 지혜를 갖지 못했으면서 가진 척하는 사람(이른바 지식인이 그 본보기겠지요)을 무지하다고 보죠. 그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면, 소크라테스가 엄밀한 의미에서 ‘안다’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독사(daxa)’와 대립되는 말입니다. ‘독사’는 예를 들어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지 아닌지 따져보지 않고 남들이 아름답다고 하니까 덩달아 아름답다고 여기거나 그냥 자기 눈에 아름다워 보이니까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그 상태로는 진정으로 아름다움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이것은 지식이 부족해서 독사에 지배되고 있는 상태죠.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무식하며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봤어요. 그리고 하찮은 지식만 잔뜩 가졌으면서, 즉 박식할 뿐이면서 진정한 지식을 가진 양 우쭐대는 사람을 무지하다고 호되게 비난하죠.
특히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선에 관한 무지’에는 일종의 특별한 성질이 있어요. 비행기를 조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비행기를 조종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지만, ‘선’의 지식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에는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하고 거짓 지식, 즉 독사에 이르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참된 지식이 없는 사람은 결국 독사의 지배를 받아 행동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지도 않는, 따라서 그것을 손에 넣어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을 정신없이 좇게 되지요.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현명한 사람은 오직 하나, 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이 이르는 대로 행동하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은 이 말을 당신에게 영원히 천상의 말이라 했다, "이 말이 내 반생의 과오와 남아 있는 '내 인생'의 길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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