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공동체와 교육에 대하여 - 이병철

공동체 조회 수 5325 추천 수 0 2003.02.08 18:20:00
이병철(전국귀농운동본부장)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생존조건은 갈수록 열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재앙들로 미루어볼 때,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일찌기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해도 결코 지나친 생각이 아니리라 싶다. 최근 지구 온난화 문제와 함께 이른바 엘리뇨, 라니냐 현상 등의 기상 재난으로 인해 우리는 100년만의, 또는 기상 관측이래 처음이라는 재앙이 이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생존에 있어서 본질적인 위협은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와 그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실업문제 등의 경제적 고통이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했던 이 나라에서 올 봄의 예에서 보듯 한 계절이 사라져 버린 기상이변 등 환경생태 조건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특히 식량위기는 환경재난과 함께 이미 인류의 생존에 가장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또한 지금까지 우리를지탱해 왔던 물질문명, 도시문명의 위기와 한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파괴 약탈하고 자원을 소모 고갈시켜온 물질중심의 산업문명 양식과 쓰고 버리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바닥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은 환경 생태계의 위기와 식량위기라는 대재앙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를 동시에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생태공동체와 교육에 대한 논의는 우리 자신의 삶과 우리의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대안 모색이자 새로운 문화와 그 문명을 열어가기 위한 시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의 모태이자 그 근원인 자연에 거슬리는 문명과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재앙은 우리 모두가 자연의 부분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모태인 자연을,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멘트 아스팔트 위에서는 결코 생명이 싹 틀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인위를 통한 무한 성장의 환상 속에서 끝없는 욕망의 재생산을 위한 물질적풍요와 편리와 감각적 쾌락에 탐닉해 온 그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반드시 그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어길 수 없는 자연의 법도인 까닭이다. 생태공동체란 이러한 우주 대자연의 이치를 자각하고 이웃과 더불어, 땅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며 이 속에서 자연과 조화되면서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곧 생태공동체적 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류가 밝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선 결코 자연을 경쟁적인 관계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친화적이고 협동적인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연의 방식을 보다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인류가 자연을 따르기 위해선 자연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반자연적인 산업문명의 폐해가 지금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일찌기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따라 배우며 사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 빅터 샤우버거의 지적처럼 생태위기의 시대에서 자연을, 흙을 의지처로 삼는 삶의 지혜를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일이 재난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지속적이고 건강한 삶과 그 문명을 실현하는 전제임은 갈수록 더욱 분명해 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자연 앞에서 겸허했던 선조들의 예지와 대지의 사람들인 인디언식의 삶의 지혜, 그 생활양식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로운 대지를 기반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대지의 질서를 어기는 자는 대지 위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 경구의 절실함 때문이다. 결국 인간 상호간의 연대와 협동 없이는, 그리고 나아가 자연의 이치와 원리에 따르는 겸손된 삶으로의 전환 없이는 당면한 대 재앙에서 살아 남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결코 자립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를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생태적인 공동체 그 자체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삶과 그 미래를 위한 교육의 현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이 삶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삶이란 끊임없이 스스로를 창조해 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모든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이란 무엇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배우는 그 속에서 스스로 변화되며 새롭게 이루어져 가는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의 대안교육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생각해볼 점이 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 속에서 대안교육의 논의가 단순히 현재의 제도교육의 한계와 문제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 마련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바른 교육인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전제되어야 하며 동시에 전 생태계, 생명계의 위기와 인류문명의 전환기에 있어서 올바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이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참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며 우리의 삶을 생기차고 풍요롭게 하는 길인가를 먼저 묻고 이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다시 말하면 대안교육의 목표 이전에 참교육의 이념과 내용을 분명히 정립하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런 다음에 그 목표와 내용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아내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대안교육을 위한 논의와 모색이 제도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인류문명의 전환기에 있어서 교육의 본질을 재정립하고 그 중심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그것은 우선, 교육이란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삶의 과정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라는 점이다. 곧 배움 자체가 삶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또한 교육은 삶의 경험이다라는 점이다. 배운다는 것은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삶의 본질이란 곧 경험하기인 것으로 따라서 집중적인 교육이란 집중적인 삶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커감으로써 온전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교육의 내용은 삶과 존재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과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연과 조화되기, 자연에 동참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감각과 소중함을 맛보고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업초등학교' 만들기 운동은 이런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이 생명을 키우는 농업을 통해서 살아있는 지혜와 심성을 키워갈 수 있는 초등학교를 전국에 만들어 가자는 운동이 그것이다. 모든 것이 효율성과 경쟁력으로만 평가되는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멀어져 가는 생명에 대한 감성을 일깨우며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를 느끼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 본래의 모습을 익히는 공부를 생명을 기르고 돌보는 농업의 체험을 통해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이 학교에서는 일반적인 수업 외에 쌀농사와 채소농사를 짓고 닭 등 가축을 길러 먹거리를 학교 안에서 자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산이나 강으로 다니며 산나물, 나무열매 등을 채집하면서 집짓기, 옷 만들어 입기 등 자립적인 생존을 위한 기술과 야외에서의 창작활동 등을 통해서 서로 협동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원리와 방법을 몸으로 익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보면 생태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배우고 익히는데 있어서는 자연이 가장 훌륭한 학교이고 교사인 것처럼 자연의 원리에 따르면서 인간과 자연이 조화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인 농업이 가장 훌륭한 교과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농업초등학교는 그것이 생태공동체-생태적 농업을 바탕으로 한 마을 공동체와 함께 할 때만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곧 학교를 마을밖에 따로 떼어놓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안에 두는 마을학교가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속에서 끊임없이 교육이 행해지고 일과 놀이와 삶과 예술이 통일적으로 조화되는, 그 자체가 진정한 삶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형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 마을의 예에서 보듯이 남과 비교해서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인간, 누가 시키거나 또는 금지하기 때문에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인간, 산다는 것이 경쟁이 아니라 함께 함으로써 같이 산다는 것을 깨닫고 생명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이것을 실현하도록 하는 교육, 곧 일할 줄 알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인간과 세상에 쓸모 있는 건강한 사람을 길려내는 교육 그것은 생태적인 마을 공동체를 통해서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요즘 들어 사회적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귀농운동을 통한 생태마을 만들기와 대한학교의 결합은 이 같은 생태공동체와 교육을 위한 좋은 본보기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연어가 수 만리를 떠났다가 다시 그가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 올 수 있는 것은 그 곳의 물 맛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태어나서 자랄 때 우리의 모태인 자연을, 흙의 맛을, 그 냄새를 익히는 것 그것이 자연과 더불어,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요, 힘이다. 생태교육이란 바로 그 물맛을 익히는 것이며 생명의 신비를 맛보게 하고 그 감성을 일깨워 주는 것이어야 한다. 생명의 감성을 일깨우기, 자연과 만나 하나되는 체험은 생태교육의 핵심이다. 이를 위한 한 예를 생각해 본다.

-저기 나무를 본다[바라보기/마주하기: 관심과 주의 보내기]
-나무야, 안녕. 만나서 반갑다. [인사하기/말걸기: 존재 인정하기, 대등한 관계 맺기]
-나무를 만져보기, 안아보기. [느끼기/깊게 느끼기: 나와 같은 살아 있는 존재임을
느끼기]
-나무와 함께 놀기, 사귀기. [어울리기/친구되기: 터놓기,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기]
-나무로 되기, 나는 나무다. [하나되기/한 생명되기: 우리 모두 한 생명, 근원의 다양한 표현임을 체험하기]
생태공동체에서의 교육이란 나무와 내가 둘이 아님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나날의 삶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체험이다. 이제 분명한 것은 자연과 조화되는 삶의 공동체 없이는 참된 교육 또한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 아이들의 활기찬 내일을 희망한다면, 아이들의 참 행복을 위한 그런 교육을 진심으로 염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들이 두려움 없이 자연을, 흙을 의지처로삼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사는 지혜를 깨닫고 그런 삶을 사는 일이고,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럴 때 비로소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그런 삶 속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맛보고 느낄 때, 그래서 천지 대자연에 스스로를 의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 갈 때 자연이 주는 무한한 풍요와 활력과 기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며 상생 순환의 새로운 문명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우리가 창조해 가는 것이며 세계란 우리 삶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98. 11. 9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5 먹거리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조작식품 물꼬 2009-01-30 3949
34 먹거리 간장의 종류는 4가지로 분류... 물꼬 2009-01-30 4881
33 농사 풀과 나무를 발효시켜 '효소'와 '반찬'과 '닭모이' 만들기 물꼬 2009-01-24 6308
32 농사 채소 병충해 방지하는 10가지 무공해 재래농약 물꼬 2009-01-24 4952
31 배움 10살 전 아이에게 꼭 심어줘야 할 5가지 품성 물꼬 2008-12-12 3377
30 공동체 브루더호프 물꼬 2008-11-05 5903
29 농사 효소 만드는 법과 효능 물꼬 2008-10-28 4120
28 농사 갈무리채소 물꼬 2008-10-28 4412
27 농사 김광화님의 무경운농법 물꼬 2008-10-28 4914
26 월리엄 코퍼스웨이트의 < A handmade life > 물꼬 2008-10-19 4093
25 <안티쿠스> 휴간에 부쳐-사회과학과 철학 사이를 읽고 물꼬 2008-10-21 4189
24 사회과학과 철학 사이 - 김경동 물꼬 2008-09-28 4167
23 ...젊은 청춘들에게 바친다-박상필 물꼬 2008-09-28 4294
22 공동체 2003년 5, 6월 품앗이 달모임 갈무리 물꼬 2003-06-04 8383
21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 - 신상범 물꼬 2008-06-04 4576
20 탈학교 논쟁 - 류기락 물꼬 2003-02-08 7869
19 생명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깨달음 - 옥영경 물꼬 2003-02-08 7083
» 공동체 생태공동체와 교육에 대하여 - 이병철 물꼬 2003-02-08 5325
17 배움 또 하나의 저항방식 - 옥영경 옥영경 2003-02-08 5732
16 길눈밝힘 16 - 보름달 그이 물꼬 2008-09-11 372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