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쿠스> 휴간에 부쳐
- ‘사회과학과 철학 사이’(김경동)를 읽고 -



1.

지난 초여름 40여 일간 시카고에 머물렀다. 해발 500미터의 산마을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게다 늦게 대학생활을 또 시작해서 부산하다가 일상을 떠나 있으니 여유가 좀 생겼더랬다. 잊거나 잊히거나 놓쳤던 일들을 챙기는 가운데 언제부터 미루고 있던 격월간지 <안티쿠스(antiquus)>(‘고대’라는 뜻의 라틴어)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간간이 얻어 읽던 그 인문학 잡지는 고혹적인 글로 감동의 물결을 만들어 오던 터이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한참 뒤에도 책이 오지 않았다. 착오가 있겠다 하고 산골살이에 잘 챙기지도 못하고 사는 인터넷을 뒤져 누리집을 찾아갔더니, 내부사정으로 당분간 휴간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이런, 여러 가지 저간의 사정이 있겠으나 경제적 문제가 컸겠다. 3000의 정기구독자가 있으면 발행하는 일이 무사히 돌아간다는데, 2006년 발간 이듬해 정기구독으로 2000부가 나간다 들었다. 내가 미처 신청하지 않아 그 좋은 잡지가 더 이상 나오질 못하기라도 하는 양 마음 아렸다. 그래, 정기독자 3000명이 없어서 의식을 고양시키는 품격 있는 인문교양지가 휴간에 들었다? 인문학이 죽었다는 말이야 이 땅에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렇더래도 이 지경이라니...

2.

대학에서 인문학부의 자리가 줄고 있다. 입학 성적이 최하위라 해도 무리한 표현이 아니다. 철학은 죽었고 인문학은 힘을 잃었다. 사회에서 ‘기능’적인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도 그렇지만 인문학도 결국 비판적 역할을 하는 건데 그런 효용은 이 시대 썩 가치로운 작업이 아니란다.
그런데 유용함이 떨어졌다고 의미가 없는가? 쓸모가 없다는 것이 정녕 무의미함을 뜻하는가? 무엇이 쓸모이고 무엇이 쓸모 없음인가? 그렇다면 문학은? 아, 그건 지친 심신에 위로라도 하니 유용함의 범주에 넣어야겠네.
반성적 기제가 없으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가. 그저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가려운 데를 위해 무덤을 향해 돌진하여 비벼대는 멧돼지랑 무엇이 다르겠는가. 사유가 인간을 더욱 인간이게 하지 않던가 말이다.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 그 역사를 통해 오늘을 해석하고자 함이고 내일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길 아니던가. ‘돌아봄’은 우리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온난화로 녹아가는 빙하의 마지막 덩어리일지도 모른다(하기야 지구가 물에 잠긴다는 데에야 무슨 반성이 소용이 있겠냐만...).

3.

‘인간 이성은 절대적인가’, 철학의 참 고전적 질문이다.
‘이성(理性)’은 민중국어사전에 따르면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또 ‘실천적 원리에 따라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능력. 자율적·도덕적 의지의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 이성 때문에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최근에 벌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모르고 있다. 근래라고 하지만 그 시작은 수년이다. 작년에는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바퀴벌레 파리 모기 같은 흔히 우리가 벌레라고 부르는 곤충들을 대해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기도 했다. 헌데 그 정보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에 기초한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파리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표적인 사실은 그들이 대단히 지저분하며 콜레라 같은 유행성질병을 옮긴다는 것인데 주류사회를 형성하는 데서 나온 자료가 아닌 다른 자료(아프리카, 혹은 백인 사회 안에서도 그들-물론 벌레-과 영성을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진)들에 의하면 ‘진실’로 그들은 대단한 긍정성을 가지고 있었고 알려진 부정적요소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는 것들이었다. 결코 놀랄 일도 아니다. 바퀴벌레가 나쁜 게 가장 좋은 건 바퀴벌레약을 생산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형성하는 거대자본일 수도 있다는 거다. 이권이 개입되면 착한 놈도 나쁜 놈이 되고 죽일 놈도 살릴 놈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학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진실 때문에 벌레라든지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런 과장되고 심지어는 터무니없기까지 한 타존재(그들이라고 꼭 벌레로만 불리겠는가, 그들 역시 우리의 저편에 있다는 의미에서 타존재로 불려도 옳지 않겠는가)에 대한 적대감은 낮은 자에 대한 우월감과 동일한 것이 아닐는지...
정녕 우리는 우월한가. 우리의 생각은 절대적인가. 우리가 이 너른 우주를 얼마나 알 수 있으며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설혹 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진실일까. 의사라는 전문가들조차 인간 몸의 신비를 또 얼마나 알겠는가 말이다.
인간의 이성? 결코, 절대로, 절대적일 수 없다!

4.

사회학이라면 사회관계의 여러 현상 및 사회 조직의 원리·법칙·역사 따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사회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 연구방법 측면에서 보면 실증주의는 기존의 이론 방법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 과정이 진리를 밝히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현상의 관계를 밝히는데 인간의 성찰적 능력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한 것으로 진리에 접근하는데 분명 한계를 가진다.
실증주의라는 게 자연과학적방법에서 온 것이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접근하는 건데 사회현상은 연구자의 주관, 의지 이런 것들이 연구과정에 굉장히 많이 개입하는 학문 영역이다. 연구자와 연구대상 사이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회학연구의 이런 특성을 살리는 것이 필요한데 결국 인문학이 갖는 성찰적 접근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하기야 몇 마디로 정리할 뚜렷한 해결책이 어디 있겠냐만.

5.

김경동의 ‘사회과학과 철학 사이’에 기대자면 “교육의 참된 구실은 어떤 지식의 내용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앎의 과정을 훈련시키는 일이요, 그렇게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삶의 마당에서 끊임없이 내려야하는 판단과 결정에 현명하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키우는 일”이다. 그러한 교육의 요체가 바로 성찰이며, 성찰은 철학하는 일의 본성이란다. 그런데 이 철학이란 어려운 게 결코 아니며 우리 삶 아주 가까이에 있고 친근한 경험들이지 않은가.
역시 그의 글을 빌면 “성찰할 줄 모르는 사회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없고, 질문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으면 마땅한 대답이 나올 길이 없으며” 질의응답이 없는 사회는 소통이 없고, 그렇게 소통이 끊긴 세상은 죽은 세상에 다름 아니다.
일상에서 철학하기, 그것으로 존재의(‘인간의’이라고 표현하지 않겠다. 마치 인간 존재가 다른 존재에 견주어 더 위대하다는 말이 담긴 듯 느껴지므로) 존엄을 지키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고 하며 스스로 철학하는 이가 되고자 한다.

(2007. 9.17.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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