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10 - 삶의 기술을 되찾는 공부

조회 수 3787 추천 수 0 2004.07.19 11:38:00
남의 집살이를 하고 돌아다닐 때는
딴엔 긴장하느라 그럭저럭 견딜만 했지만
긴 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 무릎은 이미 아주 심각하게 상해있었습니다.
대여섯 해도 더 되지 싶은 병력을 가진 이 녀석을
약없이 치료를 해오던 참이었지요.
걷기조차 힘들어지자 한의원이라도 갈까 해서
지금 상태를 점검해보러 양방 병원을 찾았습니다.
MRI를 찍으라데요
요새는 웬만하면 그것부터 찍으라고 해요.
연골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수확은 있었지만
오래 전 X-레이를 통해 얻은 결과랑 별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MRI라는 것이 미세한 많은 질병을 찾아내기는 하겠지만
그 기술이 병원에서 으레 거쳐야 하는 절차가 되면서(값은 또 좀 비싼가요)
정작 의사들이 질병을 유추하는 실력은 잃게 만들지 않았나 싶데요.
보다 기계에 의존하면서
그들의 감각이 보다 무디어지지 않았겠나 짐작됩디다.
흐릿한 사진 한 장으로 그 속내까지도 다 읽어내던 기술은
이제 별반 쓸모없는 일이 되고 말았겠지요.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자기나 제 식구들의 건강문제를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았던 것 말입니다.
민간요법이라는 영역이 그것의 큰 부분 아니던가요.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사람이 나고 죽는 일까지
그 엄청난 경험의 세계가 그만 병원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가 익히 알아왔고 자주적이었던 한 세계를
고스란히 잃어버리고만 것입니다.
이제 더는 태어나는 아이를 받아낼 줄도 모르고
식구 하나가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죽음의 귀한 과정에서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기술 같은 것은
병원 담 밖에서는 거의 남아있지를 않습니다.

아이가 하나 배가 아프다고 찾아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은 건 아냐?
해림이랑 싸웠니?
혹 마음이 언잖아 배가 불편해진 건 아닌가 먼저 헤아려봅니다.
그게 아니다 싶으면
흐린 윗물도 아래로 흐르며 맑아지는 시냇물처럼
우리 몸도 스스로 나아지는 힘이 있을 거다.
좀 기다려보자 합니다.
그래도 나아지지않으면
우리 몸이 자연에서 왔듯
그 몸을 낫게 하는 것도 그 안에 있을 게다.
굳이 설명이 오래인 것은
약을 신봉하다시피 하는 요새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야 두부로 매실로 효소로 만든 약들을 들이댑니다.
더러 침을 놓기도 하구요.
정 안되겠는 때에야
비로소 파는 약을 먹이거나 병원을 가지요.
물론 피 줄줄 흐르는 상처를 그렇게 미련하게 대하진 않다마다요.

스스로 삶을 관리할 줄 알았던 힘을
정녕 되찾고 싶습니다

(2003.11.11.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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