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3 - 우리 새끼들의 밥상

조회 수 3649 추천 수 0 2004.07.19 09:20:00
옥 영 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지난 10년은 저희 학교로서 정말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젊은 날이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마난 돈 없고 뒷배 없는 어린 사람들이 새로운 학교와 공동체에 대한 열정만으로 버티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요. 비로소, 이젠 쉬 사라지진 않겠구나, 더 솔직한 표현은, 이젠 쉽게 망하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저희 선생들은 한다 합니다.
그 무리한 일정 편에도 아는 사람들한테는 전설이라 할 만치 '하다' 먹거리는 꽤나 화제였습니다.
"애새끼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또한 애새끼 먹거리는 엄마 손으로 하는 칼질을 거쳐야 한다."
칼바람 이는 한겨울 밤에 엄마 앞에 매달려 아무래도 춥겠다고 동료들이 하나씩 꺼내주는 바지며 윗도리들을 덧입히고 덧입히고 산골짝 학교까지 오르던 마을길 2킬로미터, 꾸역꾸역 천 기저귀를 쓴다고 바리바리 싼 짐은 어찌 그리도 컸던지(그땐 서울과 영동을 오갔지만 지금은 영동으로 학교가 합해졌지요)... 그 아이, 이제 오는 6월이면 네 돌이 됩니다.(지금은 네 돌이 지났죠 - 편집자 주)
'하다'는 '거버'로 시작하는, 파는 이유식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 삶에 우선시 해야할 다른 존귀한 것들에 대해 오래 많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그것은 장기적인 목적과 의도를 가진 일이기도 했지요. 식습관이 인간의 습관 가운데 가장 끈질긴 습관이라고 하니까(이민한 이들이 모국어는 잊어도 모국의 식습관은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더군요) 이유식부터 어린 날 먹는 것들이 아이가 지닐 평생의 먹을거리 습관을 만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갈아 먹이던 초기 이유식을 지나며 빵죽, 생선죽, 된장죽, 치즈죽, 야채죽, 온갖 잡다한 죽을 거쳐 국수에 화이트소스를 얹은, 동서양의 맛을 합하여 내놓는 시기가 지나자 이젠 학교에서 아이들 간식거리를 만들 때 같이 준비하면 될 만치 자랐지요. 한천으로 만든 영양갱, 과일 젤리, 찹쌀 가루들로 도넛, 우메기, 개성약과, 튀밥과 곡물로 만들던 강정들로 간식은 이어졌습니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일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음식점에라도 가면 그 집 식당으로 들어가 (아시다시피 수많은 식당이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는 터라) 직접 야채죽을 끓이거나 된장을 끓여내거나…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세 돌) '하다'가 아는 과자 이름이라곤 에이스 하나였으며 "과자먹을래, 과일먹을래?" 하면 당연히 과일을 택하고…
"아휴..."
신문이나 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하다' 먹을 거리에 관심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도 정작 해먹인 목록같은 걸 보고는 고개를 그만 절래절래 흔듭니다. 바쁜 세상, 더구나 일하는 엄마라면 가능하지 않다는 거지요. 그러나 하려고 엄두만 낸다면 그리 별나게 준비하거나 별스런 공을 들여야 하거나 그리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일이 몰라서 못하고 안 해봐서 못하고 지레 번거로울 것 같아서 못하는 일이 되려 많듯이 이 또한 그러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성큼 자라나 버려 더 이상 이유식 먹일 때가 아니고 더는 따로 간식을 챙기지 않아도 될 때를 성큼 건너 엄마가 굳이 먹거리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단숨에 들이닥치고 말지요.
저희 학교에서 아이들 해 먹이는 음식 또한 학교 프로그램과 함께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해서 적지 않은 이들이 그것을 배우러 오기도 합니다.
저희는 따로 식당아주머니가 없습니다. 소사 일도 음식 만드는 일도 선생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아이들 또한 돌아가면서 함께 하지요.
고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 필요성을 느끼된 것이므로 가능하면 그것 대신 열렸다가 저절로 생명 주기를 마치는 과일과 견과, 씨앗류를 중심으로 먹습니다. 동물도 누군가의 부모일 테고 누군가의 자식일 것이므로 그것으로 국을 끓이고 게걸스레 먹는 게 흔쾌하지 않아서도 그렇고 그가 살해당하면서 뿜었을 독기 역시 우리는 먹고 싶지 않으니까요. 환경 생태적 관점에서도(오염물질, 운반비용...) 그것이 옳다고 알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삶을 간섭하고 그들의 죽음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거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학교 음식에는 맛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진한 비밀이 들어있습니다.
"...어머니는 철학과 인간 본연의 성품으로 요리했다. 일을 마치고 잔뜩 허기져서 돌아와 어머니를 쳐다보는 그 눈길을 염두에 두고 요리했다." <메인의 대들보>(로버트 트라이스트램 코핀/1944)
진정 내 새끼들의 에미 애비가 되어서 아이들을 걷어 먹입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외려 짐만 보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제자이고 후배인 주신이가 사 준 <소박한 밥상>(헬렌 니어링/디자인하우스/2001)을 요새 읽고 있습니다.
"음식은 소박할수록 좋고 날것일수록 좋으며 섞지 않을수록 좋다."
"좋은 요리라 함은 일상생활에서 소박한 음식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
"대충 말고 철저하게 살자, 부드럽게 말고 단단하게 먹자, 음식에서도 생활에서도 견고함을 추구하자!"
두고두고 새길 말들이 많습니다요.
엄격한 채식인이면서 아내를 구타하는 자보다는 육식을 하지만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낫다는 간디의 말이 아니더라도 먹는 법은 제대로 배웠으나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면 이런 고민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지요. 언제나 그렇듯 양쪽 다이면 좀 좋을까마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 당장 그들이 평생 지고 갈 몸둥아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평생 그들 삶의 건강을 좌지우지할 식습관을 만드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고민하며 해먹이는 우리 어른이 되기를, 나아가 그 먹거리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얻어지는 것이길 바라며 헬렌의 말을 되짚어 봅니다.
"매사에 철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세상에 가능한 한 최소의 피해를 끼치는 방법을 실천할 수는 있다."

(200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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