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8 - 태교에 생각 많은 당신에게

조회 수 3761 추천 수 0 2004.07.19 11:33:00
친구, 참 다정한 이름입니다.
제게도 아주 절친한 친구 하나 있었지요.
"우리집 보물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저래요!"
7-8년 전 한국에 계셨다면 아이템플 텔레비전 광고 카피를 혹 기억하시는지요? 바로 그 카피를 쓴 친구랍니다.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친구가 먼 곳으로 가서 슬프지는 않지만 다만 아주 오래 쓸쓸하지요.
백혈병이 재발해서 병원에 간 그는 죽음 소식으로 제게 왔고, 물론 한 밤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다음날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 하나가 가고 하나가 오는구나... 그렇게 세상이 이어져 가고 있었던 겁니다.
한 생명, 누구에게나 그렇게 특별한 느낌으로, 각별한 사연으로 오는 거겠지요.
부모가 된다는 기쁨으로 우리는 부산을 떱니다. 부모가 잘해서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더라, 천재는 뱃속에서부터 남달랐다더라, 별별 얘기가 다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클래식을 많이 들으라던데, 얘기를 많이 해야 똑똑한 아이가 된다던데,.. 온갖 얘기에 다 귀가 얇아집니다. 태교에 관한 책은 또 어찌 그리도 많은지...
호주에 와서 만난 친구 가운데도 배부른 이가 있었지요.
"언니는 태교 어떻게 하셨어요?"
저희집 아이 '하다'가 또래들보다 말을 잘하는 편이고 보니 마치 영민한 듯 보이기도 해서 더러 사람들이 묻기도 하는 말입니다.
"태교? 글쎄, 하다를 가진 시기가 우리 학교로서도 워낙 일이 많은 때였기도 했고 별 아는 것도 없어서도 그랬을 텐데, 그냥 엄마가 열심히 사는 게 태교다 했지."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산달까지도 운동장 모닥불가에서 아이들과 강강술래를 하며 뛰어다녔으니까요.
"여기는 별로 태교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들을 안하더라구요."
이제 막 아이를 가진 또 한 친구는 뉴질랜드 사람과 결혼한 한국여성인데, 남편더러 뱃속 아이에게 얘기를 들려주라 했던 모양입니다.
"몇 주가 지나야 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그런 소리만 하고..."
태어날 아이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아주 색다른 태교를 통해 멋있게 성공하는 삶으로 이끈 예도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사 다 가져도 자식 농사 추수만큼은 뿌린대로 안되더란 말이 또 있지 않던지요.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우리들로서야 그저 세상에 이왕이면 이로운 존재 하나 내놓는 거, 그거면 큰 수확이 아닐지...
작년이던가 한국의 한 신문에서는 '아름다운 병원'을 가려내어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가운데 3대 아름다운 병원에 꼽힌 '은혜산부인과'는 마침 '하다'가 태어난 병원이기도 했지요.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아시다시피 한국의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분만하자마자 우유를 물리게 하잖아요) 병원을 찾아다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 일을 하면서도 굴하지않고 꼬박 일년을 젖먹일 수 있었던 건 그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던 영향이 컸을 테지요.
그 병원장님과 태교에 대해서 나눈 얘기는 지금도 아이를 키우는 제게, 또 아이들을 만나는 제게, 결코 적지않은 행동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태교는 부모의 사람됨이다!"
그래요, 우리가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오랜 세월 살아왔던 습성이 하루 아침에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는지요? 우리가 먹는 것, 바라보는 것, 생각하는 것이 고스란히 뱃속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든 전해지지 않겠는지요. 문제는 '그대로 다 전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더 올바르게 사는 것, 더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이 태교 아닐런지요. 아름다운 생각들, 아름다운 삶이 우리 아이들로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게 하지 않을지...
참, 그 때 그 병원장님이 들려주신 것 가운데 뉴스 보는 걸 멀리하라는(임신 중에) 얘기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허구한 날 사고 소식인데, 굳이 그 좋지 못한 것들을 꼭 챙겨서 볼 건 아니라는 말씀이셨지요. 새겨볼 만은 한 얘기겠습니다.
아이를 가진 당신, 건강하고 충만한 아이를 낳으시길 바랍니다.
(200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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