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14 -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조회 수 5971 추천 수 0 2004.07.19 17:03:00
옥영경 (자유학교 물꼬 교장)

장마네요.
얼마나 많은 방에서 또 곰팡이들이 그림을 그려대고 있을지요.
없는 살림들이 겨울만 넘기면야 수월치 하다가도
어느 때고 가난한 어깨들 무겁기야 매한가지겠다 싶어
슬쩍 우울 스미는, 눅눅한 오후입니다.

누구나 삶에 대한 비밀(?) 몇 가지쯤은 알고 살듯이
저 또한 그러하지요.
사람살이를 보고 들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지니게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너무나 자연스레 삶에 스며 있어서 아지 못하다가
망치질 하다 튀어오른 못에 맞은 이마처럼
어느 날 그리 뒤통수를 탁하고 맞으며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과 그 비밀을 공유할 때가 더러 있지요.
사랑이 가진 힘에 대해 꺼낸 것이 그 첫 번째였지 싶습니다.
"제가 한 아이의 엄마지만
제가 채규를 도형이를 혜연이를 정근이를 령이를 사랑하면
류옥하다가 받을 사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는 거예요.
사랑이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이 커진다는 거지요."

며칠 전에 생이 가진 비밀 또 한 가지를 나누었지요.
"이 사탕 내가 다 먹으면 안돼?"
아이들에게 나눔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먹을 것이고 보면.
내가 가진 사탕 다섯 개를 옆 친구와 나누어야 할 때
단 하나만 준다 하더라도 제가 먹을 것이 줄어들게 되지요.
나눔은 참으로 좋은 것이란 데야 두 말이 필요 없긴 한데
그것이 자기가 가진 것을 잃어야 하는 것이라면,
나눔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얻어진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나눔을 실천하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지요.
"나는 이 공동체의 일부고 너도 그래.
나는 이 공동체이기도 한 거니까 너도 나의 일부야,
내가 너의 일부이듯이.
나는 이 우주의 일부고 너도 또한 그래.

나는 이 우주이기도 한 거니까 너도 나의 한 부분이야,
네가 내 한 부분이듯이.
나는 너야!"
내가 가진 사탕 다섯을 모두 다 다른 식구가 먹더라도,
이 우주의 다른 누가 먹더라도,
결국은 내가 먹은 셈이라는 겁니다.
한 녀석이 그 셈을 이해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어느 순간 모두 아하, 하더니
고개 끄덕이며 환해졌다지요.

그래요, 아이들은 늘 이미 알고 있거나
너무나 쉬 이해해버리고 맙니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란다,
때때로 어른들이란 그들이 알고 있는 걸 또박또박 짚어주거나
이건 그런 거란다,
가만가만 들려주기만 하면 되지요.

남이 가지려면 자신이 포기해야 하다니요.
네가 나이므로
다른 이가 갖는다 한들 내가 잃을 것이 무엇이겠나이까.

장마,
사이 사이 비치는 햇살처럼
그리 맑은 기쁨들 함께이소서.

(2004.7.7.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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