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깨달음 - 옥영경

조회 수 7082 추천 수 0 2003.02.08 18:22:00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헬레나노르베리-호지)

옥 영 경(물꼬 터장)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너무나 강력해졌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자신을 비교해 볼 타자가 없는 서구문화. 이런 단일문화의 확산은 한 문화가 파괴될 때마다 수세기 동안 누적된 지식이 말살되고, 다양한 인종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낌에 따라 거의 불가피하게 갈등과 사회붕괴가 뒤따른다.
…나는 라다크에서 낭비도 오염도 없는 사회, 범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공동체는 건강하고 튼튼하며, 십대 소년이 극히 자연스럽게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유순하고 다정스럽게 대하는 사회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긴급히 지속가능한 균형(도시와 농촌, 남성과 여성, 문화와 자연 사이의 균형)을 향해 방향을 돌려야 한다. 라다크는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상호관련된 힘들을 우리가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의 나아갈 길을 보여줄 수 있다."


; 헬레나노르베리- 호지

1.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문화가 주도하는 일직선적인 진보관과 그에 기초한 과학기술문명의 패권적 지배 밑에서 세계전역의 토착문화들이 소멸을 강요당해왔고, 이 때문에 오늘날 인류사회의 장래가 극히 불투명하게 되었다. 소위 문화적 침식이라는 현대사의 핵심적 재난.
서구식 산업문화의 압력밑에서 세계적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생태적으로 건전한 생활방식을 발전시켜온 온갖 다양한 토착적 지혜와 기술이 무시되고, 산업문화라는 근원적으로 지속이 불가능한 생활방식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인류사회 전체의 대재앙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
서구식 산업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이 특권적인 소수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대다수의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매커니즘이라는 것은 현대사가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고, 필자는 이런 현대 산업사회의 토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좀더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삶의 방식의 실현에 필요한 원칙을 모색하는데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를 내보이고 있다. 탈중심화와 적정기술이라는 구체적 아이디어로 제시되는 `반개발'이 사회발전의 대안이라는 것. 건전한 사회발전에 대한 모색이 권력의 비집중화와 지역의 구체적인 조건과 필요에 기초를 둔 적정기술의 개발로 표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 라다크의 전통
라다크에서는 잘살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이는데도 그들이 잘살고 있다는 온갖 표시를 만난다. 모든 것이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다.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검약을 알고 있고 그러한 재순환은 거의 완전한 독립을 뜻해서 이미 `지속가능성' `에콜로지'가 무의미하다. 사람과 사람이 의지하는 땅과 짐승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이들은 갖고 있다. 이 속에서 특정전문가가 아닌 자기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기술을 배울 뿐이다.
이들에겐 일과 잔치가 하나이고 한 가족만이 아니라 온갖 감각있는 존재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기도가 올려진다.
“내일 한낮에 만나러 올게. 저녁 전에"
이들은 부드러운 속도로 일을 하고 놀라운 만큼 많은 여가를 누린다.
이 사람들에게 최우선적인 문제는 공존이다. 돈을 좀 버는 것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갈등보다 평화가 더 낫다는 걸 안다. 서로에게 배려할 줄 알며 극단적인 관용을 갖는다. 이러한 인간적인 규모는 특정한 생활속의 구체적인 욕구에 기초를 둔 자발적인 결정과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법제도보다 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사람들이 풀뿌리의 차원에서 자신들끼리의 토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곳 사람들이 갖는 만족감은 자신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 데서 온다. 자신이 훨씬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이며, 다른사람들과 또 자신의 주위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들은 많은 경험(기쁨과 슬픔)을 공유해 왔다. 그들은 삶의 중요한 전환기가 되는 의식들에서 서로를 지지해주며, 함께 일해 왔다. 그래서 이들에게 삶은 기쁨이다.
라다크에서는 집과 토지소유의 이름으로 신분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명백히 땅과의 깊고 지속적인 관련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곳 아이들은 주고 받는 관계의 사슬 전체 속의 한 부분으로 자란다. 자기자신이 자라나면서 다른 아이들에 대해 책임을 맡는 일은 아이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틀림없다. 반면 늙은 사람들은 생기있고 모든 일에 관여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젊은 사람들과의 계속적인 접촉이다.
불교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문제는 무엇에 중점을 두는가 하는 것. 우리의 감각이 인지하는 세계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라는 것. 서구언어와 비교해도 상대성에 더 큰 강조를 두는 것 같다. 그 언어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전후맥락을 더 중시 하도록 만든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다, 있다'는 특정한 상황에 따라서, 특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주제에 대한 상대적인 친밀도에 따라서 스무 가지나 되는 변형을 가지고 있다.
“대가족과 친밀한 작은 공동체야말로 성숙하고 균형잡힌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보다 나은 기초가 된다고 믿는다. 건강한 사회란 각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지의 그물을 제공하면서,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을 권장하는 사회이다."


3. 변화(1974-)
물질문화에 대해서 관광이 끼치는 영향은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이다.
불과 20여년 전까지 라다크의 땅에서 얻은 것으로 생활할 때는 그들은 스스로의 주인이었다.
거의 모든 기술과 재료는 재생가능하고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대세계의 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는 시간을 절약하는 것들이지만, 새로운 삶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삶의 속도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국제적인 현금경제의 일부로서 멀리 있는 세력들에 의해 통제되는 체제에(기본적 욕구충족을 위해서도) 더욱 의존적으로 되었다.
그들은 라다크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달러의 가치가 변하면 그것은 결국 인도의 루피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라다크 사람들이 이제는 국제 경제를 관리하는 사람들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라마승과 기술자의 세계관의 차이는 전통사회의 현대를 가름한다. 옛 믿음은 생명의 하나됨이나 연기법을 강조하는 반면 새로운 과학적인 견해는 생명의 분리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창조물들의 바깥에 떨어져 서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연이 작용하는 방법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저 물질을 점점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어 그 여러가지 조각들을 따로 조사해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라마승으로부터 기술자로의 이동은 살아있는 모든 것과의 정(情)적이며 자비로운 관계를 권장하는 윤리적인 가치로부터 아무런 윤리가 없는 가치중립의 `객관성'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나타낸다.
서구식 방법의 학습은 아이들을 서구화된 도시환경속에서 좁은 전문가가 되도록 훈련시키면서 그들의 문화와 자연으로부터 떼어 놓았다. 그들은 관계, 과정, 변화에 대하여 배우고, 그들 주위의 자연세계의 변화하는 관계의 복잡한 그물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나 지금, 구체적인 생태계나 문화와는 동떨어진 종류의 지식만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므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합성된 것이고 살아있는 맥락에서 유리된 것이다. 서구의 교육체계는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들의 환경에서 나오는 자원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 현대적 교육은 글을 읽고 수를 깨친 사람의 비율을 높인 것 같은 명백한 이점을 가져왔다. 그것은 또 라다크 사람들에게 바깥세상에 대한 좀더 많은 지식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 교육은 라다크 사람들을 서로서로에게서, 그리고 땅으로부터 유리시켰고, 그들을 세계 경제라는 사다리의 제일 아래칸에 자리잡게 했다.
라다크에서 개발은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치 사람들을 중심으로 무자비하게 끌어당기는 소용돌이 같은 작용을 했다. 새로운 도로망에 대한 거대한 투자는 점점 더 먼 곳으로부터의 생산품에 의존하는 것을 조장한다. 인간의 배설물도 이제는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쓰이지 않고 그 대신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어디서나, 하부구조(중앙집중화된 에너지 생산에서 서구식의 도시중심 교육에 이르기까지)는 본질적으로 똑같다. 그리고 그결과로 생겨나는 문제도 역시 똑같다.
이제 공동체는 분열되었다. 개발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그리하여 불가피하게 더 큰 경쟁을 초래하며, 사람들에게 그들이 흉내낼 수 없는 표준적인 서구의 모델을 따르라는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구촌'에서 떠받들어지는 이상적인 이미지에 도달하려는 것은 자신의 문화와 뿌리를 거부하는 것이며,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거기에 따른 소외는 분노와 원한을 불러일으키고, 오늘날 세계의 많은 폭력과 원리주의의 뒤에는 바로 그 소외가 있다.
산업화된 사회에서도 우리는 상투화된 대중매체의 이미지의 피해자가 되어 있지만, 현실과 서구적 이상과의 간격이 훨씬 더 넓은 제3세계에서는 필사적인 느낌이 그만큼 더 강하다.

4.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오래된 미래
현대적 상황에서 경제개발이 다양성을 증가시켰다고 믿기 쉽다. 효율적인 운송과 통신 덕분에 여러 문화권으로부터 많은 다양한 음식과 생산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문화적 경험을 용이하게 만든 체제 자체는 그러한 다양한 문화를 말살시키고 세계전역에 걸쳐 지역문화의 차이를 제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링곤베리와 파인애플 쥬스는 코카콜라로 대체되고, 모직의복과 면 사리는 청바지로, 야크와 고지대의 소들은 저어지 암소로 대체되고 있다. 다양성이란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열 가지 종류의 청바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차이를 되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불필요한 무역을 줄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것이다. 바로 지금도 우리 납세자들의 돈이 수송을 위한 하부구조를 확장하고, 무역을 위한 무역을 증진시키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대륙 전체에 걸쳐 우유에서 사과와 가구에 이르기까지, 그 목적지에서 쉽사리 만들 수 있는 온갖 물품을 수송하고 있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지역경제를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일이다. 수송을 위한 보조금의 감축과 제거를 통하여 우리는 결정적으로 쓰레기와 오염을 줄이고, 농민의 지위를 높이고, 공동체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전통사회에 실제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고, 또 개발 덕분에 실제로 개선이 이루어졌음에도 사람들이 땅과, 서로서로와, 자기자신에 대하여 갖는 중요한 관계를 살펴볼 때, 상황은 다르게 보인다. 자연에 기초를 둔 전통적인 사회가 여러가지 결함과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더 지속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과 주위 환경과의 대화의 결과이다. 그 끊임없는 대화는 2002년이 넘는 동안 시행 착오를 거치면서 그 문화가 계속 변화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균형잡히고 건전한 사회로 가는 길을 발견하려면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를 탈중심화하고 지식을 향한 우리의 접근방식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필자는 라다크에서 인간적인 규모의 구조들이 땅과의 긴밀한 유대를 키우고, 활발하고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키우며, 다른 한편으로 튼튼하고 생명력있는 공동체, 건강한 가족,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의 보다 큰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를 보았다. 이러한 구조들은 개인의 안녕에 필요한, 그리고 역설적으로 자유의 느낌에 필요한 안전성을 제공한다.
탈중심화 과정은 사회경제체제 전체의 연속된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정적인 실체의 해체에 관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방향전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중심화는 우리가 이룩해야 하는 가장 필요한 구조적 변화이지만 그것은 그에 상응하는 세계관의 변화에 동반되어야 한다.
서구의 단일문화는 엄청난 순응주의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해 긴밀하게 짜여진 라다크의 인간관계들은 억압적이기보다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으로 보이고, 나에게 자유에 대한 개념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아마도 자기회의가 전혀 없다는 것, 깊은 안정감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내면적 안정감이 관용을 낳고, 저마다 차이가 있는 타인들을 받아들이게 한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발밑의 땅과 주위의 공동체에 의존하고 있을 때 우리는 상호의존성을 일상사로 경험한다. 그러한 상호관련성에 대한 깊은 경험적인 이해(자신을 생명의 연속체의 한부분으로 느끼는것)는 현대사회의 분석적이고 단편화된, 그리고 이론적인 사고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더욱 심화된 전문화를 향해 가는 주류문화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서 우리는 비전문지식인(관련성을 알아보고 각기 다른 분야를 연결짓는 사람)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희망적인, 추세의 하나는 보다 여성적인 가치관과 사고 방식에 대한 존경심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사고패턴에 대한 연구는 여성적인 관점이 감정의 면에서나 추상적 사고의 면에서나 관계와 연관성을 더 중시한다는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산업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보다 나은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문화들을 모방하기 시작하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호스피스 일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명상에 이르기까지 댜양한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들과 가장 현대적인 문화 사이에 놀라운 유사성이 나타나고 있다. 라다크의 마을사람들이 항상 해왔던 것처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부엌을 가정의 중심으로 삼고, 자연적으로 기른 음식을 통째로 먹으며, 건강문제에는 오래된 자연 치료법을 이용하고 있다.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것이라든지 육체적인 일에 대한 새로운 평가, 의복과 건축에서의 천연 재료의 이용 같은 보다 섬세한 면에서도 변화의 방향은 명백히 드러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지구 사이에 본래부터 존재해 온 오래된 유대관계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더 가깝게 부합하는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하는 시도에서 가장 커다란 진전은 육아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인간은 누구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아이들은 자신을 증명해보일 필요가 없고 자기나름으로 존재할 권리를 애써 쟁취해야 할 필요가 없는 가족체계 안에서만 참으로 잘 자랄 수 있다. 전 세계를 통해 심리학에서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농사일에서 가정의 부엌에 이르기까지 삶의 온갖 영역에서 모든 생명의 상호 연관성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깨달음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흔히 `새로운'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있지만, 라다크가 보여준 것처럼 그러한 추세는 중요한 의미에서 아주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실상 수천년 동안 존재해 왔던 가치 - 자연질서 속에서의 우리의 위치, 우리 서로서로의, 그리고 우리와 지구 사이의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알아보게 하는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5.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1998. 3. 25. 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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