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6.물날. 맑음. 낮 2시부터 5시,

‘2013 인문정신문화 포럼-인문학운동의 현재와 미래’가 있었습니다;

문화역서울 284(옛 서울역사) 2층 다목적 그릴.

한국국학진흥원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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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인문정신문화 포럼 - 인문학 운동의 현재와 미래 >

 

 

물 뚝뚝 떨어지는 걸레를 어찌 할까요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몇 대륙에 퍼져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의 미국 한 곳에 달포를 넘게 머무르고 있었을 때, 300여 명 공동체 식구들이 같이 밥을 먹던 날마다의 밥상은 아주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명합니다. 청소년기의 자식들이 부모들과 또 이웃 어른들과 함께 둘러앉아 고전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는데, 고전이란 게 아비도 읽었고 할아버지도 읽고 저들도 읽는 것이라 세대를 넘나들기에도, 또 타국인과 같이 대화하기에도 벽이 없는 화제거리로 그만이었지요. 밥상,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그 밥상 앞에서 일상적인 화제거리가 그랬다는 것이 꽤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일상 안에서 탄탄하게 쌓아올리는 인문학 교양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인문학을 거론하는 자리 앞에 있으면 또 떠오르는 짙은 풍경 하나 있습니다. 제법 긴 시간을 여러 나라에서 보낸 날들이 있는데, 독일과 스웨덴의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블루칼라들일지라도 갖고 있는 ‘품격’이라고 말하면 느낌을 전하기가 좀 쉬우려나요. 식당에서 거리에서 부대끼는 ‘아무’이더라도 그들과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아보면 그들의 지적수준에 대단히 놀랍니다. 단순히 ‘안다’가 아니라 교양(문화에 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을 말하는 그 교양)을 겸비한 앎. 어떤 사회이기에 이런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걸까요.

 

인문학 위기라는 시대, 인문학의 위기가 어찌 단순히 인문학의 문제이기만 하겠는지요. 좀 낡은 이야기이겠지만 돈의 화신이 우글거리는 시대, 가치타락의 시대가 문제인 게지요. 그런데 그것을 성찰하는 것이 바로 또 인문학 아니던가요.

그런데, 인문학이 꼭 니체를 말하고 데리다를 말해야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이 대학을 나온 것은 어쩌면 다행할지도 모릅니다. 제도교육이 삶의 방편을 습득시키는데 힘을 쏟을 때 바깥의 인문학은 학적인 인문학을 넘어 부단히 삶의 의미를 찾아 삶을 고양시키고 있었던 거지요.

 

한국형 클레멘트 코스인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만나고 정신적 삶을 고양하는 계기가 되어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수단으로까지 작용한 기록(최준영의 ‘거리의 인문학의 의미와 성과, 그리고 과제’)은 인문학적 성찰을 통한 자활과 자립의 의지를 북돋으려는 목적을 이뤄낸 감동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리의 인문학의 최대 수혜자가 인문학 그 자신이거나 강의에 참여한 인문학자들이라는 비판을 동행하고 있지요. 나아가 인문학열풍이 인문학 본연의 비판적 힘을 무장해제 시키는 건 아닌가(수유너머) 하는 반성은 양적팽창이 질적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반추케 했습니다. 하여 철학 없는 실천이 빚어낸 우리 시대의 슬픈 초상(오창은)이 된 거리의 인문학을 ‘실천 없는 철학’이 방기했던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와 취지를 되새기자는 제언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문해교육의 성과가(여기까지는 그간 검정고시계가 수행해왔던 못 배운 자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으나) 마을을 만나고 저물어가는 농촌공동체에 활력으로 작용하고 한 발 더 나가 다른 공간까지 자극하고 확장하는 것에 이르는 ‘칠곡의 마을! 인문학을 만나다’(지선영)는 산골마을에서 무너져가는 변방의 삶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살아가는 이에게는 반전의 영화처럼 마음을 울렸습니다. 인문학이 제도를 업고 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어주었지요.

 

‘인문학 이후의 인문학’(임태훈)에 대한 이야기는 전상진 선생님과 신득렬 선생님께 넘깁니다. 현장에 있는 저로서는 좀 먼 이야기이기도 하겠기에.

다만... 브라질의 교육용 지역 화폐 ‘사베(saber)’제도는 퍽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베를 모으는 시간을 통해 ‘유기적지식인’(그람시)으로 성장하고, 앎을 나누고 전하는 시간을 실천했을 때 이를 합리적으로 보상해주는 사회 시스템의 중요성도 체득한다는 이야기는 교육현장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울림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인문학이 무엇이더이까. 스스로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방향성을 갖는 일 아니던가요. 결국 사람답게 살아가자고 하는 짓거리일 것입니다. 인문학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길러 우리 삶이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찾아 그리 걸어가는 것 아니겠는지요.

교육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에서 뭘 구현할 것인가 성찰하고 통찰하고, 그래서 넘들 따라가느라 조바심 내며 자신과 아이들을 들들 볶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보는 것 또한 인문학이 주는 힘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인문학의 양적팽창이 한국 사회가 가진 지적허영과 닿아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런 의심이 듭니다. 그것이 흔히 진보계가 가졌던 학출들의 리그라는 비판의 연장은 아닌지, 뭘 좀 알았다는 것이 행여 자기만족이나 가시로 드러나 외려 또 삶의 현장으로부터 벽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뭘 좀 알았다는 것이 삶을 흔들어주는 작용으로보다 머리만 키우는 또 다른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또한 아닐지요?

 

자유학교 물꼬에서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일 못지않게 몸을 써서 하는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과 예술과 명상을 통한 통합공부쯤으로 요약해볼까요.

물꼬에 합류하는 선생들의 대부분은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했거나 그 이상의 학력자들입니다. 그것도 고교에서 아주 공부를 잘했던 일류대생들이 제법 많은 수치를 차지하는데, 재미난 것은 거기서 마주치는 우리들의 일상 풍경이 가관(처음에 말입니다)이란 겁니다. 바느질이고 재봉질이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물 질질 흐는 걸레를 들고 방을 닦겠다고 들어서거나, 나이 스물 댓에 이르도록 쪽파를 다듬어본 적이 없거나 양파 껍질을 벗겨본 적이 없어 당황할 때 우리 교육의 맨살을 보게 되는 거지요.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간, 인문학적 지식이 엄청나게 수장된 한 친구만의 예가 아닙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물꼬 현장에 이른 것은 고마운 일이지요. 그래도 가치로운 곳에 힘을 보태겠다 나선 것이니까요.

 

이영희 선생의 고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제목의 명제는 결국 삶의 균형을 또한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인문학에서도 마찬가지. 이 사회가 그래도 여전히 건강함을 유지하는 큰 줄기에는 조선사회 인문학적 깊이가 이뤄냈던 긍정적 성과가 있지 않았겠냐는 진단이 있는데, 그 한편에선 물적토대 혹은 삶의 일상을 견지해준 건강한 노동이 있었다 생각합니다. 학과 노동, 그 두 날개가, 두 바퀴가, 결국 그 사회를 끌어왔던 거지요.

인문학 운동도 죽어가는 것을 살려낸다는 미명 아래 허영으로 치우지지 않게 균형을 전제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이런 건 어떨까요? 인문학캠프에서 아침저녁 수행(명상)하고 낮에 일하고 밤에 인문학 공부를 하는 거지요. 그리하여 그 과정이 우리 삶을 견실하게 이끄는 훌륭한 디딤돌 하나 되는...

 

(2013.10.10.)

 

 

옥영경

 

자유학교 물꼬 교장.

국문학과 신학과 교육학을 기웃거리다가 초등특수교육과 유아교육을 공부하다.

스물두 살에 시작한 ‘공동체 실험’과 ‘새로운 학교 운동’을 그 배의 나이가 한참을 넘도록 계속했고, 지금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뚜벅뚜벅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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