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4 - 코코야, 돌아와 줘

조회 수 3632 추천 수 0 2004.07.19 09:25:00
옥 영 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오페라 하우스, 타롱가 동물원, 현대미술관, 수족관, 달링 하버, ….
호주에 와서 아이랑 무리없이 갈만한 곳들을 돌고 나니 조금 더 멀리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한 날 둘만 하던 여행을 벗어나 여행사에서 하는 스타톤 비치 조개잡이를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안내자가 낸 문제를 알아 맞춰서 코알라 인형 하나를 받았더랬지요.
"잠이 안온대."
일기를 쓰다가도 괜히 안고 나와 옆에 앉혀두고
"코코야, 옛날 이야기 해줄까?"
얼르고 달래며 코코를 키우던 저희집 '하다'는 저 밥 먹다가도 멕이러 가고, 때론 형아 말을 안 듣는다며 속상해도 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이른 나들이를 할 참인데 짐 된다고 코코를 못 챙기게 했다가 결국 징징대는 소리를 듣기 싫어 데리고 나오라 했습니다.
시간을 맞추느라 택시를 탔는데, 내릴 때도 서둘렀지요.
"엄마, 코코?"
"니 짐 니가 챙겨야지."
"택시…."
두고 내린 것에 실망하는 아이 손목을 잡아끌며 제 일을 보러갔습니다. 앉아있는 내내 아이는 코코 어떡하냐고 물었지만 전들 무슨 수가 있나요?
돌아올 땐 어떤 분이 차를 태워주셨습니다.
"우리 큰 애도 몇 년동안 끼고 살던 인형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가 공항에서 인형을 잃어버려 오랫동안 낙심했다는 얘기를 듣던 '하다'는 그 분의 심정적 지지에 이제 눈물바람이 되었습니다.
"엄마, 내일 코코랑 같은 거 있나 알아보자."
"하나 사 주셔야겠네요."
"그런 거 비싸잖아요."
"얼마나 비싸다구… 당장 하나 사 주세요."
하지만 저는 사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지요.
"산다고 해서 걔가 코코가 되니?"
엄마가 여간해서 뭘 사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 '하다'는 이번에도 사는 걸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자 기어코 펑펑 울어댔습니다.
"코코야, 돌아와 줘."

인형같은 거, 이곳에서 정말 비쌉디다. 어디 인형만 그런가요? 나와서 사는 살림 어느 것인들 맘 편히 사게 되나요. 그렇다고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인형 하나 못 사줄 건 또 뭔가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산다'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어떤 문제의 해결방식이 '사는' 거라는 거죠. 사면 됩니다. 하기야 몸의 한 부분에 이상이 생겨도 장기까지 살 수 있는 판에, 사랑까지도 살 수 있는 판에 그까짓 인형 하나 사는 게 뭐 대술까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상품, 광고로 이어지는 상업자본주의에 익숙해지는 삶에 대한 작은 거부를 통해 인간의 자주성을 잃고 싶지 않은 거죠. 상업문명으로부터 보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겁니다.
천년의 단위가 바뀌던 지난 1999년 말 전 세계가 아주 난리였던 거 생각나시는지요? 그 왜 Y2K인지 하는 걸로 한국에서는 수퍼마켓에서 생활용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전기며 요새 컴퓨터 안 쓰는 데가 어디 있나요. 그러니 컴퓨터 오류작동으로 이어질 사태에 대비하느라고…. 다행히도 별 문제없이 새 천년 1월 1일은 밝았지요. 그 사건은 우리의 삶이 기계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 한 예였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본주의라고 하는 상업문명에 반해서 대안 경제니 대안 문화니 대안 학교니 하는 말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동체라는 것도 대표적인 반상업주의문화겠지요.
하지만 이 세상을 '내'가 그다지 크게 바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은 바꿀 수(프랭크 타운센드 F.Townshend 의 에서) 있잖겠어요? 나아가 연대의 물결이 가져오는 힘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지요.
읍내 장날 산골짝에 있는 저희 학교에서 며칠만에 아이들은 나들이를 합니다.
"선생님, 우리도 학교에서 이거 만들어요."
그렇게 해서 감나무 그늘 아래 차를 마시는 긴 의자가 생겼고, 살구나무 아래 큰 평상이 만들어졌으며, 여러 놀이기구도 만들어졌습니다.
"선생님, 우리도 붕어빵 한 번 해 먹어요."
어느 겨울은 실패한 붕어빵으로 온종일 끼니를 대신했지만 파는 것들을 우리 손으로 익혀보는 시간에 얼마나 느꺼웠는지….
호주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던 하다,
"엄마, 저 기차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빙글빙글 도는 장난감 기차 광고를 본 것입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저희 학교의 가치관 아래서 자라는 아이들이 기계 상업 문명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는 보다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될 것을 믿습니다.

여담 하나.
"엄마, 코코가 내가 보고 싶어서 돌아왔나 봐."
그 날 코코는 집 현관에서 '하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니가 빠뜨리고 간 거 아냐?"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줄 알고 돌아온 거야."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기적들을 우리가 못느끼며 사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요.

(200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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