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눈밝힘 7 - 살색을 아시나요

조회 수 4085 추천 수 0 2004.07.19 11:31:00
옥 영 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지금 제 곁에는 24색 크레파스가 있습니다.
저희 집 '하다'를 위해 학교 동료들이 보내온 것이지요.
각 색깔마다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껍질이 벗겨져 이름이 달아나 버린 것도 있지만 거개는 남아있네요.
연두색, 분홍색, 갈색, 다홍색, 풀색,….
그 가운데 하나 "살색"이 있습니다. 아시지요, 사람 얼굴에 우리가 늘 칠하던 그 색깔?
살색이 우리, 그러니까 한국인의 얼굴에 맞는 색이라면 백인사회에서는 흰색을 살색이라 하나요? 또 그렇다면 흑인사회에서는 검정색을 혹 살색이라 부를까요? 확인해본 적이 없어서 사실이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것을 둘러싸고 한국에서 벌어졌던 작은 사건 하나를 얘기하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온 미숙련 공장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3D(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업종이라고 하는)를 그들이 떠맡아 주고 있지요. 97년에 23만명이 넘는다고 했으니까 지금은 많아졌으면 많아졌지 적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그들 때문에 상품의 가격 또한 낮게 유지될 수가 있는 거지요.
그런데, 과거 우리가 큰 나라들에게 받은 수모를 이제는 한국에서 일하는 그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이들이 그들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갖는 무시와 멸시는 아직도 골이 깊습니다.
이 제 3세계 노동자들이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거리 시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살색과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살색, 그것이 사람들에게 이미 편견을 만든다는 거지요. 그 살색을 지니지 않은 다른 나라, 특히 까만 피부의 사람들을 천대하는 편견의 뿌리에 크레파스의 '살색'이라는 이름이 크게 자리를 잡는다는 겁니다. 그 시위가 어디 '살색'을 없애자고만 한 얘기였겠는지요.
그런 생각해보셨나요? 우리가 살색을 살색이라고 부르고 살색이라 인식하면서 살색을 스케치북에 칠하고 있을 때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남겨놓은, 흔히 트기라 불리던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엄마, 무서워?"
아이가 흑인을 보고 엄마 품에 안기며 소리치는 게 드문 일이 아닌 나라 한국.
나와 다른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국인의 뿌리깊은 '편견'의 예가 어디 살색뿐이겠는지요.
서울 강남의 한 지역에 난데없이 학교 건물을 짓는 일에 대규모 반대 시위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가 장애인 학교라는 까닭이었지요. 학교가 들어서면 우리 아이들 교육에도 지장이 많다, 땅값이 내려간다, 미관상으로도 안 좋다.
언젠가 이 기사를 읽고 아이들과 연극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극본도 공동창작을 했는데, 그것에 대한 많은 토론은 우리 아이들을 참 많이도 성장시켰지요. 말하자면 장애인에 대한 이해 같은 거요. 우리랑 좀 다른 이에 대한 이해 말입니다. 우리도 저 문을 나서다가 교통사고 나지 말라는 법 있냐, 오히려 그 학교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면 우리는 교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 다른 이를 도우고픈 마음을 배울 거다,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이들이 그 주위로 이사할 수도 있을 텐데 왜 땅이 죽어가겠냐, 장애인과 어울리며 우리 아이들 삶의 지평이 넓혀져 가는 걸 보여주던 그 연극은 한 신문사와 잡지에서 크게 다루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못할 때가 어디 한 두 번인지요.
호주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작은 이들을 위한 모임이 있었습니다. 한국인과 호주인이 스트라스필드 광장에서 연대 모임을 가진 자리에, 함께 하지는 못했네요. 한국에서는 지난해 말 이 소식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루기도 했다 들었습니다.
손이 안 좋아서 손을 못쓰게 되면 장애인이 되지요. 다리를 못쓰게 되어도 그렇구요. 몸 어느 구석이 온전하지 못하면 장애인입니다. 그렇다면 눈이 멀쩡하지 않은 안경 쓴 이들은 왜 장애인이 아닌가요? 그건 너무나 많은 이들이기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소아마비가 이 지구에 창궐해서 몸 어디가 잘못된 이들이 다수가 되는 세상이 올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장애인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게 되나요?
물론 호주는 그런 의미에서 꽤 괜찮은 나라라 생각 들더이다. 이곳에서의 장애인 복지는 정말 내놓을만한 자산이더군요. 다른 문제에서 다른 식의 편견이 또 없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저희 학교에서는 외국어 영역처럼 수화를 언어의 한 영역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가를, 그들의 동요를 수화로 부르지요. 그것을 통해 '나와 다른 이'에 대한 자세를 배우는 셈인데 가끔 그 앞에서 그만 느꺼워져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들 말합니다.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고도 합니다. 나와 좀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도 그런 사람으로 키우는데 한 몫일 수 있겠습니다. 언제 아이들과 아래 동화들을 읽어보는 것 또한 도움이지 싶네요.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히말라야)
<아주 특별한 우리 형>(대교)
<악어클럽>(창작과 비평사)
<왜 나만 미워해>(보리)
<휠체어를 탄 친구>(보리)

제목이 혹 틀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동화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다 풍성하고 충만한 사람으로 키워주리라 믿습니다.

참, 살색을 살색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요?

(2002.4.15)

※ 편집자 주 - 이 글은 세계 공동체와 자유학교를 둘러보러 2002년 연수를 가신 옥영경 교장 선생님이 호주에서 이민, 유학생, 교민을 위한 전문주간지 NEWS & Magazine 34호 '교육칼럼'에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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