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옛날 옛날 한옛날에콩쥐랑 팥쥐랑 살았다.
우리가 알다시피콩쥐 엄마는 콩쥐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팥쥐 엄마가 팥쥐를 데리고
콩쥐네로 시집을 왔다.사람들은 말했다.
"쟤네 새엄마는 콩쥐를 못살게 군다네."
"아버지가 있을 땐 잘해주는 척 한대."
"쟤네 아버지도 새엄마 편만 든다던데."
새엄마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 그렇지만 새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콩쥐는 날로 야위어갔고팥쥐는 날로 살이 쪄 갔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세상일이라는 게 자기가 아는 것과 곁에서 아는 것이 다르기 마련이고, 소문으로 듣는 것 또한 다 다르기 일쑤니까.


그러니까...
팥쥐는 뭐나 잘 먹었다. 보리밥에 김치만 척척 걸쳐서도아구아구 먹어대고여름날엔
풋고추에 된장이면밥 두 그릇도 거뜬히 먹었다. 그렇지만 콩쥐는 그렇질 못했다. 입이 짧은 콩쥐는 먹는 게 영 시원찮은데다 날씬한 몸을 위해서 먹는 것도 가리는데...
다이어트란 걸 한 거다.
일하는 것도 그렇다. 첨에 새엄마는 내 속으로 낸 자식이든 남의 속으로 낸 자식이든 에미가 되었으면 다 내 자식으로 여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어린 팥쥐에게도 밭일이며 집안일이며를 죄다 같이 시켰는데 설거지라고 시키면 기어코 그릇을 하나 깨고 요강을 씻으러 보내서 깨뜨린 게 너댓번도 더 되고장독대 독들 걸레질을 시키면 성한 뚜껑이 몇 안되고 고구마를 캐라고 보내면서툰 호미질로 고구마를 죄다
쪼아놓고 빨래를 시키면 덜 빤 얼룩이 고대로 있고...
팥쥐는 안시킨만 못했다.
"내가 차라리 끌고 다녀야지."
엄마는 가난한 살림살이를 펴보겠다고 여러곳에 다니며 품앗이 일을 했는데다 큰
콩쥐에게 집안일이며 밭일을 더러 맡겼다.
낼모레 시집도 보내야하는데 암것도 모르고 배운 것 없이 가면 시집 어른들 눈밖에 나고 친정에서 뭘 배웠냐 손가락질이라도 당할까,일찍 잃은 지 에미를 대신해서잘 키워서 잘 가르쳐서 시집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아이, 속상해."
새엄마가 자기만 집에 남겨두고 부려먹는 것같아 콩쥐는 자꾸만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를 부르며 우는 콩쥐 소리는 담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 귀에 들어가곤 했다. 어느 여름날,일 나갔던 새엄마가 돌아와서 콩쥐가 해놓은 설거지를 보니 솥단지 가쪽에 묻은 넘친 밥물이 말라붙은 것이 고대로 있고 설거지 대야에도 가장자리에 찌꺼기가 묻어 있었다. 대야에 있던 그 그릇들만 닦아놓고 고등어조림 해먹은 냄비는 고대로 있고 달걀하나 부쳐먹은 후라이팬도 고대로 있었다. 부엌 예서 제서 쉰내가 나는데 딱 하라고만한 고 설거지만 해놓았다. 그렇지만 새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콩쥐야, 행주도 잘 빨아두었구나."
새엄마는 곤해서 좀 쉬고 싶었지만 부엌을 다 치워놓고 콩쥐를 불렀다.
"설거지는 그릇만 닦는 게 아니라 부엌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음식이며 먼지며 사람손을 기다리는 것들에 손이 닿는 일이란다."

부엌에 물이 스며든 비가 많이 내린 어느날이었다.
날은 개였지만 낡은 집이라 지붕 어디서 물이 고여있다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내 나갈테니 부뚜막에 물 좀 닦아두렴."
새엄마가 돌아왔더니 더러운 부뚜막은 다 고대로고 떨어진 물이 있던 고자리만 싹
닦여 있었다. 새엄마는 부뚜막을 다 치운 뒤 콩쥐를 불렀다.
"걸레를 손에 쥐면 그 자리말고도 눈을 넓게 떠 두루 필요한 자리를 찾아 닦는 거란다."
하루는 새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못하고 나갔다.
"어머, 누가 똥을 잘못 눠서 변기 가쪽이 똥칠이 됐네."
오줌 누러갔던 콩쥐가 그걸 보고 오랜만에 자기가 먼저 새엄마 시키기 전 할 일을 찾았다.
새엄마가 돌아왔다. 화장실도 다녀왔는데 새엄마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제가 화장실 청소해놨어요."
"미안하구나, 알아보지 못해서. 집안일이란 게 그렇단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 안나고.
애썼다, 아유, 우리 콩쥐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
엄마는 콩쥐에게 칭찬을 한 뒤 잠시 앉았다 또 화장실을 가서 살펴보았다. 변기만 딱 청소가 되어 있었다.
큰 비가 내린 날이었다.
일 나간 새엄마는 비설거지 못하고 나온 게 자꾸 걱정이었다.

'그래도 콩쥐가 있으니까...' 집에 돌아왔지만 뒷집에 놀러간 콩쥐는 아직 들어와 있지 않았다. 빨래는 비에 다 젖고 말리던 고추는 그만 물에 목욕중이었고 댓돌에 들이친 비로 그나마 여유가 있던 짚신들마저 다 젖어 있었다.
"콩쥐야, 콩쥐야!"
"엄마, 죄송해요."
콩쥐는 늘 그랬다.
"엄마, 미안해요."
콩쥐는 착했다. 그래서 엄마는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야단을 잘 못쳤다. 새엄마는 맨날 복장이 터졌다. 참다가 참다가새엄마가 콩쥐에게 어쩌다 한마디 하는 소리는 씩씩한 새엄마의 목소리탓에 담을 넘어 이웃에 들렸다. 사람들은 또 새엄마 얘기를 했다.
팥쥐 엄마는 그래도 어머니인지라 속으로 냈거나 안냈거나 콩쥐를 팥쥐처럼 친딸로 여겼으나...
팥쥐 엄마는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엄마없이 키워진 콩쥐가 행여 그것으로 잣대지어질까봐. 세월은 흘러 팥쥐도 시집을 가고콩쥐도 시집을 가고 팥쥐도 아이를 낳고콩쥐도 아이를 낳고 그리고 늙어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시집을 가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그 어머니 마음을 헤아린 콩쥐가 퍼뜨린 이야기다.

(198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