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접던 학 >

옥 영 경


눈 속 깊이에서도 꽃맹아리 움짝거렸나 봐요. 저만치에는 ‘이기고 돌아오는 봄’을 품은 겨울이 있죠. 세상이 온통 들썩거리고 뒤집히는 혹독한 겨울, 그런 계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라나요.
엄마 아빤 그러셨어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언 땅에도 작은 물결들이 이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태어났다구요. 소망이 차고 넘치면 이루어진대요. 겨울 땅이 가졌던 소망처럼 우리도 엄마 아빠의 소망이었대요.
우리 어릴 땐 비가 많이 내려 둥지가 물에 잠기기도 했대요. 한 번은 글쎄 까마귀가 쳐들어와 우리를 쪼으려구도 했다나요.
“날마다 서너 번은 꼭 너희들을 품었다. 그러지 않을 땐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서 먹이를 구해왔지."
스무 번도 더 들은 얘기를 엄마 아빤 꼭 처음인 것처럼 또 하셨습니다.
“그래, 그래. 가끔 부리로 너희들을 돌려놓곤 했지. 어느 날 말이다, 아마 한 달하고도 닷새가 지났나, 알에 작은 구멍을 뚫길래 이틀을 꼬박 지새며 지켜봤다. 너희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하더구나. 온 몸이 젖어서 삐이 삐이 삐이 삐이 울어대더라구. 찔레꽃 필 무렵이었단다."
“그랬지... 여보, 기쁨에 겨워 동네방네 알리느라 얼마나 울었댔소!”
“그래요, 그래요. 우리 새끼 학이 태어났어요, 하고 둘이 신이 났었지요.”
보구 또 봐도 우리가 자란 게 신기한가 봐요.
세상 모든 것이 나고 자라고 하는 걸 우리라고 다르지도 않을 텐데, 그래도 기특했던가 봅니다. 어쩜 그리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던지요, 우린 그제 있었던 일도 곧잘 까먹는데...
우린 붕어나 미꾸라질 잘 먹었대요. 잠자리의 애벌레두요. 태어나서 며칠 뒤부터 먹이 잡는 걸 가르쳐 주시긴 했지만, 많이도 가르쳤지만, 잘 못하더래요. 그래서 석 달 열흘은 두 분이 고생 깨나 하셨대요.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먹게 된 것이 그 즈음이었대나요.

옆 집 돌이랑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멀리 가지 말아라.”
우리 살던 고 옆 웅덩이 있잖아요, 물이끼 삐룩삐룩 물결 따라 울렁이는데, 그 탓인지 깊이 모를 만큼 새까맣더라구요. 옆으론 고마리 줄기 우거졌구요, 그 아래 물가엔 미나리 다부룩다부룩 솟아 있었지요.
“야, 우리 저어기 더 큰 웅덩이로 가 보자.”
거긴 미꾸라지가 뱀장어만 했어요. 정말이예요. 정말이라구요.
신이 났어요. 물을 첨벙이며 미꾸라지 한 마리씩 한 입으로 쪼면, 세상에 이만큼 재미난 일이 더 있을까 싶었지요. 엄마 생각도 났어요.
잡아다 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따 만큼 큰 걸 보면 아실 걸요, 우리가 그 큰 웅덩이까지 갔다는 걸.
늦도록 놀았습니다.
“찾았잖니...”
“돌이가요, 다리를 뼜어요. 업구 왔어요.”
“이만해서 다행이구나.”
엄마가 돌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온 밤, 크게 나무라지 않고 꼭 안아주는 엄마 품에서 다시 는 그리 먼 곳까지 가 걱정 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요.

그런 일도 있었어요. 뒷집 개구리 사건요, 우린 아직 어려 개구리를 잡진 못할 때였잖아요. 철이랑 놀다가 그만 봐 버렸습니다. 그 집 울타리 밑에 있더라구요. 걔네 엄마가 막 물어다 둔 거였어요.
막 먹고 있을 때 아빠가 봤지 뭐예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줬어요. 제가 너무 귀엽대요.”
그런데요, 알고 계셨대요! 다 알고 계셨던 겁니다.
“왜 모른 척하셨어요?”
“굳이 꾸짖지 않아도 때가 되면 그러지 않으리란 걸 믿었다.”

헤엄을 치기만 하던 우린 뒤뚱거리며 걷게도 되었습니다.
“잘하는구나.”
옆집 돌이랑 뒷집 철이가 더 잘 걸었잖아요.
“많이 했다. 내일은 더 나을 게다.”
엄마랑 아빠가 그리 말해주지 않았다면 무척 속상했을 텐데...
“속이 상해도 걔가 더 많이 상할 거요.”
엄마랑 아빠랑 나누는 얘길 들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어요. 걸을려구 걸을려구 해도 잘 안됐거든요.
생각나세요, 뒤에 하셨던 말씀요?
“네 할머니가, 알아주는 것도 부모가 가져야 할 덕이라더구나.”
걷게도 되고 그러다 날쌔게 뛰어도 다니고 아, 그러다 우린 날개를 퍼덕이게 됐죠. 아 아, 마침내 우린 마음껏 날 수 있었습니다. 털갈이를 끝낸 뒤였어요.

노오란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요, 샛노란 가을이었지요. 내 삶에 작은 울림이 온 바로 그 가을! 까치밥으로 감나무에 한 개는 꼭 걸려있다는 감 얘긴 들었지만 우리를 위해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미처 몰랐어요.
들에 간 날이었습니다. 다 베어 넘어진 옥수수대 쌓인 곳도 있고 엉기성기 올려둔 짚더미도 있었지요. 한 철이 훑어간 자리엔 그루터기들이 남아있었습니다. 먹을 것들 깔려있었지요. 벌레 먹은 옥수수도 남아 있었고, 벼 이삭들도 제법 있었구요, 여튼 잘 모르는 열매들까지 많이도 있었습니다.
“엄마, 실컷 농사지어서 이게 뭐야? 다 흘려 놓았네, 그지?”
“그렇지 않단다. 사람들은 추석에도 차례를 지내고 나면 나물이며 고깃덩이며 밥이며도 자그맣게 담아 꼭 돌담 위에 걸쳐둔단다. 그러면 오고가는 쥐들이랑 짐승들이 한 입씩 먹고 가고...”
“으응? 사람들이 들짐승도 다 걱정해?”
“그러엄. 흰 눈 내린 겨울에도 말이다,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바가지를 들고 산기슭으로 간단다. 산짐승들이 겨울 내내 먹을거리 없겠다 싶어 곡식 낟알을 뿌려주고 가는 게지.”
“그럼 여기 있는 것들도 흘린 게 아니라 남겨준 거야?”
“이 들에 남아있는 것들도 다 그런 거지. 우리들을 위해 남겨둔 거란다.”
사람!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남이 남겨준 것들을 먹는 우리 같은 학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위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높은 산에서부터 눈이 덮히기 시작했습니다. 아빤 우리가 고향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했지요. 맨 앞에 아빠가 날았습니다. 그 뒤로 엄마가 날고 우린 또 그 뒤를 이어 날아가다 논 가까이 다른 이웃들과 함께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찬서리에 놀다 잠을 깨면 날개를 다듬어 퍼덕였지요. 햇살이 퍼지면 먹이가 있을만한 곳을 향해 우르르 날아갔지만 얼어붙은 땅은 야박하기만 했습니다. 어쩌다 밀알 옥수수알들이 보이는 때가 있기도 했어요. 많지 않아서 우린 곧잘 다투었습니다. 서로 소리를 질러 겁을 주기도 했고 발로 차고 부리로 쪼기도 했습니다.

우리 삶은 이런 걸까요, 사람들은 넉넉하게 다른 세계를 위해서도 눈을 돌리는데 우린, 우린 고작 겨우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잠자리와 먹이터를 오가며 우린 그저 살았습니다. 겨우 살았지요. 정말 겨우 살기만 했습니다.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어요. 종이로 사람을 천 개 접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나요.
종이사람 천 개, 종이사람 천 개!
더러들 종이를 구해다 접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 그렇게들 접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지요.
구백 서른다섯, 구백 서른여섯, ...
나도 접었습니다. 먹는 것을 조금만 덜 생각하면 시간은 얼마든지 벌 수 있었지요.

버들강아지가 피기 시작했어요. 개나리도 입을 내밀기 시작했구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나무들 사이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젠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
아직도 해는 짧아 찬 기운 스물스물 날개 사이로 기어드는데, 제 앞가림도 못해 고단한 우리들에게 하신 아빠 말씀이셨어요. 그게 세상의 질서라구요. 세상에!
울며 울며 떼를 썼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아빠도 엄마도 없이 살 수가 있겠어요? 아무리 이 세계 오랜 법이어도 그렇지요,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는 걸요.
“삶은 자기 무게로 버팅기며 사는 거란다.”
엄마도 우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쫓겨났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강가에서 사람을 접었습니다. 이 세계가 싫었어요. 시시하기 짝이 없는 생활, 작은 먹이 때문에 서로 쪼고 할퀴고 차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도 모르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구백 아흔 하나, 구백 아흔 둘, 구백 아흔 셋,...
구백 아흔 아홉 개.
구백 아흔 아홉 개!
한 개는 날이 새고 나면 접을 려구요, 어느 것 한 갠들 그렇지 않았을 랴만 더한 정성으로 세수 정갈히 하고 접고 싶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종이 한 장 들고 강물 가까이 앉았습니다.
물 밑이 다 보였어요. 거기 참종개들이 부산한 아침을 맞고 있었습니다. 꼬리지느러미의 등 쪽에 검고 작은 반점이 있는 배가 흰 그들은 꽤나 수선을 피우고 있었지요. 어디서나 저렇게들 바둥바둥 사는 것인지...
햇살이 몸에 와서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봄이예요, 정말 이제 바람 세어도 맵지는 않네요.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어차피 난 하나를 기어코 접을 테고, 그러면 사람이 되겠지요. 이제 다시는 학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숲도 거닐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낙엽 사이를 헤집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작은 벌레들이 삶으로 바쁘고,
나무 위 눈에 뵈기도 쉽지 않아 이름도 못 얻은
한 마리 산 새 부리에도 근근히 살아가는 삶이 있었습니다.
2월 가운뎃 쯤이던가, 하얀 눈 위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몸을 아래 위로 움직이며 뛰어오르던 학춤 한 판 생각나던데요, 길어 길어 천년이 언제 올라나 싶지만 또 그리 길 건 무엔가, 이 삶의 버거움이 우릴 깊게 하는구나, 왈칵 울음 치솟대요.
아! 사람이 된다 한들 눈물나는 삶이 아닐 려구요,
쥐고 있던 종이 한 장
속절없는 꽃잎처럼
강바람에 묻혀 보냈습니다.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