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마로 가는 길 - 1>
-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고

옥 영 경


“저어기 온다!”
“와아!”
마을 들머리 고인 물에서 멱을 감던 우리는 신이 나서 달려갑니다. 우리 소란에 마을에 남아있던 여자들도 나옵니다. 할머니도 걸어오시네요.
어른들이 대상무역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처음 길을 떠난 형도 끼어 있지요. 악마가 산다는 사막 여행을 무사히 마친 형은 이제 성큼 어른이 되어서 더는 우리랑 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돌아온 영웅들이 낙타 위에서 사탕과 대추나무 열매를 던져줍니다. 무역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늘 주는 선물입니다. 한동안은 사막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듣느라 심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우리들을 위한 또 하나의 선물이지요.
나도 언젠가 악마가 대상들 길을 잃게 한다는 사막에 대해 해줄 이야기가 생길 것입니다. 그건 우리 마을 아이들 모두의 바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투아레그족이니까요. 대상 무역은 우리가 입고 있는 이 푸른 옷처럼 우리 부족의 상징입니다. 해가 갈수록 사막에 물에 귀해지면서 떠돌아다니던 삶을 버리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막을 지나는 여행을 하는 투아레그족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구할 수 없는 까닭도 있지만요.
여기는 사하라 사막 남쪽 끝 아이돌 산지입니다.
“옛날 좋았어. 그땐 낙타를 먹일 풀도 많았지.”
할머니는 옛 시절을 그리워하십니다.
“타르고야, 우리는 유목민이었다. 천년 이상 대상무역을 했어.”
아버지는 우리 부족이 유목민임을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 부족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농사를 거들고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 동생들을 돌보면서 날이 가고 달이 갑니다. 코란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아휴, 더워. 아저씨, 사하라는 온도가 몇 도일까요?”
“60도까지도 올라간다.”
“이야... 그럼 사하라는 얼마만한 거예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우리는 지도를 봅니다. 사하라는 아메리카의 미국만 합니다. 이 지도도 대상무역을 떠났던 아저씨가 얻어오셨지요.
별을 보고 길을 찾는 법도 배우고 있습니다.
“사막으로 여행을 시작하면 우리는 저 큰 별을 따라 간단다.”
그러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합니다. 참 밝은 별입니다.
“저 별이 사라지면요?”
“그 땐 저 쪽에 있는 저 별을 따라 가지.”
하늘에 무수한 별들도 다 이름이 있습니다. 그 별들은 아주 밝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 희미해서 아저씨가 여러 번 말씀하신 뒤에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은 늘 그렇게 우리 삶의 길을 만들어 주고 있지요. 해는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달은 한 달이 흐르는 것을, 사막 끝의 비는 한 해가 흘렀다는 것을...
“바람이라도 불고 구름이 별을 가리기도 하면 어쩌나요?”
“사막에는 또 다른 이정표들, 그러니까 길을 알려주는 것들이 있다.”
“모래 언덕 뿐인데요?”
“물론 사막 가운데서는 그렇지. 하지만 다른 곳들은 그렇지 않아. 특히 바위에 남겨진 벽화들이 우리 길눈이 되어 주지.”
그것은 드넓은 초원에 산 수천 년 전 사람들의 흔적이라 합니다.

“비다!”
모두들 밖으로 나옵니다. 정말 비가 쏟아집니다. 열한 달 동안 계속된 지독한 무더위가 드디어 기세를 꺾습니다. 땅은 ‘끙’하고 몸을 한 번 뒤채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참을 고인 물에서 멱을 감을 테고 풀들은 무성해질 것입니다. 당장 오늘밤엔 잔치를 벌이겠지요. 비가 내려서, 비가 찾아와서 정말 행복합니다.
비온 뒤엔 잔치가 많습니다. 혼례도 꼭 이맘 때 합니다. 우리 누나도 이번 참에 혼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진흙 같은 헤너를 바른 누나의 얼굴을 잔치가 있는 한 주 동안은 아무도 볼 수가 없습니다. 동생인 저도, 어머니 아버지도 물론. 그 동안 밤낮으로 잔치는 이어지고, 드디어 누나는 시집을 가고 새로운 삶을 살 테지요.
사실 저는 혼례 잔치하는 가운데쯤의 낙타달리기에 더 마음이 가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 참가하거든요.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아요. 드디어 저도 제 낙타 아론을 타고 달리는 겁니다.
제게는 사막에서 돌아와 사탕을 던져주는 일보다 더 큰 꿈이 있지요. 무역을 하고 돈을 많이 벌면 경주용 낙타를 사고 싶습니다. 트럭이 멋있어 보이지만 경주용 낙타에 견줄 게 아니거든요.

웃음이 얼굴에서 마구 떨어집니다. 하하하. 제 나이 아홉 살, 이제 저도 대상무리를 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 살은 돼야 하는데 아버지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제가 일찍 장사하는 법을 배워야 한대요.
친구들이 부러워합니다. 낙타달리기 대회에서 겨우 꼴찌를 면했을 때도 친구들은 대회를 나갔다는 것만으로 저를 부러워했는데...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기분이 어떠니?”
“솔직히 사막이 무서워요. 사막을 잘 모르니까요. 죽을까봐 걱정이 돼요. 그렇지만 아버지랑 아저씨들이 있으니까...”
이번 여행도 예전과 비슷한 길을 따라 티미아에서 빌마로 갑니다. 그곳에서 소금을 사서 남쪽 시장으로 가 내다 팔면 우리는 필요한 것들을 구해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2400킬로미터라고 하는데 그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이 안돼요, 여섯 달이 걸리는 건 알지만.
어른들이 여행 준비를 다 한다지만 저도 할 일이 많습니다. 아론도 잘 먹여야 하고 여행하는 동안 하지 못할 분량의 코란도 읽어야 하고 사막을 여행하는 기술도 배워야 하고 가끔 누나들이 부탁한 선물도 차곡차곡 적어야 하고...
보름달이 뜨고 밤새 그 빛 아래 사람들은 마지막 짐을 꾸립니다.
자, 가요. 떠납니다. 어른 열 다섯과 나, 그리고 낙타 150마리.
기도부터 하지요. 앞으로 여행하는 동안도 우리는 기도를 잊지 않을 것이며 남은 사람들도 우리를 위해 날마다 기도를 할 것입니다. 신은 오직 겸손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편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낙타들이 가지 않으려고 뻗댕깁니다. 첫길을 가는 낙타가 아니라 다녀본 녀석들이 그래요. 왜냐하면 그들은 사막을 아니까요. 어떤 일을 겪을지 아는 거지요. 아론도 멀리 도망을 칩니다. 어른들이 붙들었지요.
아론 코에다 담뱃가루를 넣습니다. 그러면 흥분이 가라앉아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데 석류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땡글땡글 잘 익고 있는지요. 알알이 박힌 석류 속 열매는 마치 옛 이야기 덩어리 같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우리 부족 이야기들. 우리들이 이제부터 겪을 이야기도 그렇게 석류 속에 들어가 앉을 날 있겠지요.

낮에는 쉬지 않고 걷습니다. 아침도 걸어가면서 먹습니다.
“타르고야, 빨리 음식 갖고 와.”
여기 저기 낙타 위에서 아저씨들이 불러댑니다. 저는 부지런히 죽과 염소치즈, 대추야자를 나르지요.
“차는 왜 빠졌니?”
“거기 서! 주전자 뚜껑 열고 설탕 넣어야지.”
아저씨들은 첫길인 저를 놀리느라고 더 한답니다.
“11시에 마시는 차가 최고라니까.”
뜨거운 재를 모래에 묻으며 잠시 앞일을 걱정합니다. 해낼 수 있을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걱정 말거라.”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앞에 정말 바위 벽화가 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소도 길렀나봅니다. 소그림이예요.
“기후가 오르고 건조해지면서 모래땅이 된 거지.”
사막은 점점 넓어졌고 사람들은 사막을 떠났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강 나일강 가로.

“하우사족이다!”
어른들이 낙타에서 내려와 막대를 듭니다. 하우사족은 오랜 세월 우리 부족과 경쟁하는 사이였습니다. 서로 견주고 겨루는 게 꼭 좋은 일로만 그런 건 아니었지요. 이번에는 장사를 나가는 우리를 막으러 왔는지도 모릅니다, 자기네가 장사로 벌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런데 이상하네요. 낙타 재갈들을 머리에 쓰고 있어요. 하우사족이 재갈을 쓰는 건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어쨌든 저도 낙타똥을 던지며 싸웁니다. 여기서 지면 부끄러워서 영영 마을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도 우리 여행이 실패하는 것이 되니 마을 살림도 올 한 해 궁색하기 이를 데 없겠지요.
제 자신이 명예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우리 부족을 위해서도 저는 열심히 싸웁니다.
하우사족 가운데 누군가 등 뒤로 와서 절 붙들었습니다. 발버둥을 쳤지요. 다른 사람도 와서 저를 끌고 가려합니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겁도 나고 화도 나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면서 하우사족 한 사람을 쳐다봤지요. 히부시 아저씨가 저기 있습니다. 그만 힘이 풀렸지요.
“뭐 하시는 거예요?”
“신참내기 신고식이지.”
모두 한마디씩 거듭니다.
“타르고, 너 정말 용감하더라.”
“넌 좋은 대상이 될 게다.”
저는 시험을 치렀던 겁니다.
“잘 싸우지 못하면 마을로 되돌려 보내려고 했지.”
그런데, 저는 예전에 누구에게도 이 시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이제 어른들 세계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