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사냥을 떠나자 >

옥 영 경


“다 이 마을 애들 아니지?”
“여기 사는데요.”
“이 산골에 애들이 이렇게 많아?”
계곡에 놀러 온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릴 법도 하지요.
은결이네 마을에는 아이가 열둘입니다.
산골이고 들이고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애들이 없어
학교가 하나 둘 문을 닫는다는데,
깊은 산골에 있는 은결이네 마을 온 아이들이
죄다 마을길을 몰려다니고 있노라면 어쩌다 지나는 이가 놀랄 밖에요.
도시에서 사는 것이 더는 행복할 수 없겠다 생각한 이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꼬리를 물고 들어온 것이 벌써 몇 해입니다.
여기도 학교는 있지요.
그렇지만 폐교된 지 10년도 더 넘어 죄 잡초만 무성하지요.
열둘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습니다.
멀어서이기도 하지만 배움이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돌아가며 배움 안내를 해주는데
일곱 살에서 열두 살 사이의 이곳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같이 몰려다니며 세상을 배우고 일을 익히며 지냅니다.
그래도 사람 노릇 하는 데는 크게 어렵지 않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여 책을 읽던 참입니다.
아이들은 봤던 책을 보고 또 봅니다.
“야!”
은결이가 엎드려서 책을 보다 모두를 부릅니다.
곰 사냥을 떠나는 한 식구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입니다.
다들 아는 얘기지요.
“뭐?”
“우리도 곰 사냥을 떠나자!”
일은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은결이네들은 무기부터 만들기로 합니다.
마침 지난 가을 감과 호두를 따 내리던 대나무들이 있지요.
톱도 꺼내고 낫도 꺼냅니다.
죽창도 만들고 활도 만들고 돌도끼도 만들고...
“우리는 곰을 유인할 수 있는 토끼를 그릴게, 진짜처럼.”
여자아이들은 그림에 매달리더니 토끼 그림을 막대에다 붙였습니다.
“곰은 뭘 좋아하지?”
“꿀!”
“맞아, ‘곰돌이 푸’에서...”
“그래, 그래, 꿀! 그럼 우리 이 사탕으로 유인해서...”
혜린이가 아껴먹던 사탕을 선뜻 꺼내놓습니다.
“곰을 잡으면...”
저마다 잡은 곰으로 뭘 할까 계획이 한창입니다.
“곰탕!”
옛 노래에서처럼 부모님도 봉양하고 마을 어르신들 잔치도 하고
찾아오는 이들도 대접하고...
령이는 가죽을 팔아 폐교된 학교를 사서 우리학교도 만들자 하고
나현이는 다음에 이사 올 아이들을 위해서 저장을 하자 합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곰한테 채여서, 데굴데굴 글러 내려가서, 오래 고생했단다.”
“진짜?”
“그 곰이 말야...”
채규가 외할아버지한테 들었다는 얘기를 전합니다.
“무서워.”
“나 안 갈래.”
아이구, 이게 아닌데...
젤 큰형아 도형이는 이 사냥이 무산될까 걱정입니다.
“야, 야, 환경오염 같은 걸로 요새 사람 몸이 안 건강하잖아. 곰도 그럴 걸.”
곰도 힘이 많이 약해졌을 거다, 그걸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연습을 하고 가야겠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상자를 하나 세로로 세워 놓고 그 위에 공을 두었습니다.
“이게 곰 머리다!”
둘러섰던 모두가 우, 하고 소리 지르며 달겨들자
승진이가 재빨리 새총을 쏘고 한결이는 옆면에서 나무도끼를 들고 뎀빕니다.
읍내 나가시던 성길이 아저씨가 거드십니다.
“내가 곰을 잡아본 적은 없었지만 잡는 걸 본 적은 여러 번 있다.”
곰보다 작아 보이면 안 되니까 곰이 나타난 순간 모두 뭉쳐서 크게 보여야 한다,
행동지침 몇 가지가 떨어지고
모두 총연습도 해봤지요.
연습의 마지막 장면은 죽창에다 곰을 매달아 메고 오는 것.
그래서 죽창 끝을
상자(이곳 밭에서 쓰는 노란 플라스틱 상자) 손잡이에 끼워
은결이랑 령이가 나서서 메고 돌아서는데,
막내 다온이가 뒤에서 꾸무적댑니다.
잠바 안주머니에 작은 돌을 꽉 채우고 있지 뭐예요.
오늘 나타나는 곰, 죽었습니다!

드디어, 산으로 갔지요.
마을 회관에서 늘 보이는 ‘먼 산’을 오르기로 합니다.
마을 앞 밭도 지나고 작은 내도 건너 다시 언덕배기 밭들을 지나 이어지는 산,
날마다 보면서도 쉬 갈일 없던 산입니다.
회관에 붙여둔 마을 지도로도 익히고 또 익히고
마을 할아버지들한테도 여러 번 여쭈었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설레임이 두려움보다 앞섭니다.
손전등과 나침반도 챙기지요, 길을 잃거나 날이 저물면 쓰자 합니다.
무엇을 만날지 누가 아려나요.
토끼는 앞다리가 짧으니 내리막에서 약하므로 아래로 몰아 잡자 합니다.
노루를 만나면 잡는 게 불법이니 모른 체 하자지요.
멧돼지를 만나면 사나우니까 얼른 피하자 합니다.
곰을 만나면 잘 잡는 거지요.
활 패들이 쏘고 죽창 패들이 때려잡고
마지막 패들이 꼬아놓은 새끼로 엮어오자 합니다.
너무 큰 곰을 만나면?
우리 수가 적어 불리하니 엎드려 죽은 척 하며
살아서 돌아오자 합니다.

오르던 산자락은 도저히 타고 갈 수가 없다는 앞쪽의 전갈입니다.
산판(나무를 베어내는 일)을 한 자국 땜에 그나마 길이 쉬운
마을에서 훤하게 보이던 곳으로 길을 잡습니다.
그런데 젤 큰 형아인 도형이가,
2년 전의 교통사고로 다리를 저는 도형이가,
자꾸 미끄러지며 울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이 산오름이 쉽잖을 것만 같습니다.
오르는 길 세 지점에서 먼저 오른 이들이 막대기를 뻗쳐 나머지들을 올립니다.
은결이와 승진,
늘 싸우는 그들이 손을 잡아주면서 서로를 돋우고 있습니다.
산허리를 도니 저어기 마을이 빠진 자국 없이 죄 내려다보입니다.
“야-호!”
“잡식아!”
“망치야!”
마을 개란 개 이름은 다 부릅니다.
“쫄랑아!”
거동이도 부르고 장순이도 부르고 저미도 까미도 부르고
집을 지키고 있을 할머니들도 부릅니다.
그만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산허리 끼고 다시 길은 사라지고 절벽 같은 가파른 등성입니다.
저어기 산마루 보이는데...
기어올라야지요, 길을 만들며 오릅니다.
균형 잡기가 어려운 도형이가 또한 힘이 듭니다.
“곰발자국이다!”
“멧돼지 발자국!”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사기를 북돋았지요.
나현은 뒷사람을 위해 가시 뻗친 가지들을 제쳐주고
채규는 먼저 올라 활 끈 부분으로 다음 사람을 잡아 오르게 하고
혜린이는 끝까지 곰의 공격을 막을 방패를 사수하며 기를 쓰고
성빈이가 다온이를 도와주려고 보면
다온이는 벌써 다음 손을 뻗치며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령이는 툴툴거리며도 일단 가고 보자 하고
은결이랑 승진이는 먼저 올랐다고 막대기로 사람들의 마지막 오름을 돕고
도형이는 맨끝에서 기진맥진하면서도
기태 덕현 지윤이의 도움을 받으며 가자 가자 합니다.
산등성이긴 하나 가파르기도 가팔랐지요.

배부터 채우자 합니다, 어느새 두 시간이나 산을 탔더라구요.
낙엽 두터워 눕기도 좋고 햇살도 도톰하였지요.
미끄럼의 무용담을 나누며 주먹밥을 먹습니다.
“어, 털이다.”
“토끼털이야.”
“곰이 잡아먹은 토끼 흔적이다!”
먹던 자리를 얼른 수습해서 짐을 꾸립니다.
산을 더 오르다 수상쩍어 보이는 곳에서
나무갑옷을 앞뒤로 한 기태,
방패를 한 손에 다른 손에 나무창을 든 덕현,
활을 들고 입을 앙다문 은결,
세 전사가 한 바위 너머 있는 굴에 정탐을 갑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섰고 전사들은 무기를 쑤셔 넣어 봅니다.
“아무래도 토끼구멍인 것 같애.”
이제 다른 이들이 정찰병으로 앞서서 갑니다.
서로가 뵈지 않으면 무더기들끼리 소리를 지르네요.
“어이!”
저 굽이에서 다른 패가 잘 있다 소리를 받습니다, 심마니들처럼.
“어이!”
그때, 멀리서 들리는 낯선 소리!
긴장합니다.
눈이 동그래서들 침묵하며 얘기를 나눕니다.
소리는 잠잠해지고...
“진짜 곰 소리였지?”
서로 서로 제가 들었던 소리에 대한 추측으로 신이 납니다.
그렇지만 겨울 짧은 해는 어느덧 서산입니다.
날이 금새 더 차가워졌습니다.
“이 산이 아닌 갑다.”
그리고 원망의 소리들...
이 산이 아니라니 저 산으로 가자,
왔던 산이나 샅샅이 훑자,
이제 그만 돌아가자,
에라 힘들어 죽겠는데 무덤가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
“여기는 추우니까 이렇게 하면 돼. 민박집을 찾아서 민박하고 가.”
아이들이 은결이를 쥐어박을 참입니다.
곰 잡으러 온 사람들이 돈이 어딨냐,
왔던 길을 돌아 산을 다시 넘어갈까.
아니면 큰 길로 나가 걸어갈까,
가는 길에 차를 잘 얻어 타고 가면 안 될까,
돌아가자 결정은 났는데 왔던 길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제 곰 따위는 다 잊었습니다.
집을 돌아갈 수 있기나 할까...
모두 서쪽으로, 그리고 서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갑니다.
사람 발길 끊긴 지 오래,
능선조차 길이라기엔 어림없습니다.
능선마저 끊어지고 잘 아는 물한계곡 쪽 길을 탈 수 있겠다 싶은 지점에서
아이들은 서쪽 아래로 방향을 틉니다.
낙엽 수북한 비탈길을 버팅기며 걷다 넘어지던 아이들에서부터
미끄럼을 타기 시작합니다.
아예 다들 눕다시피 갑니다, 스키장이 이리 재미가 있을까요.
이제 길은 온통 눈이 덮여있습니다.
아니 길이라니요, 길은 어데도 없고 나무 사이사이로 길을 만들며 나아갑니다.
“아이구 내 고추!”
앞서 미끄러지던 기태입니다.
다리 벌리고 미끄러져 내려오다 그루터기에 받친 게지요.
이제 눈썰매를 타기 시작하니 속도도 더 붙고 재미도 더합니다.
아무도 걷는 이가 없습니다, 걸어서 될 일이 아니지요.
“이야!”
이 깊은 곳에다 누구 뫼를 쓴 것일까요.
널찍한 무덤자리가 한바탕 눈싸움하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소리 소리 지르며 눈을 던지고
바로 다음 무덤 자리에서 노래 한바탕에 남아있던 귤도 먹고
말잇기 놀이를 하며 숨을 돌립니다.
이렇게 무덤이 있다면 길도 있을 법한데
가파르기만한 비탈만 보이고 아직 길은 어데도 없습니다.
그래도 가야지요.
눈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낙엽 이불입니다.
가파르기는 여전히 스키장이어서 미끄럼을 또 탔지요.
물이 아래로 흐르니
골의 끝은 마을일 테지요.
비가 지납니다.
물한계곡을 타는 길에 어느새 아이들은 비를 맞고 패잔병처럼 섰습니다.
덮쳐오는 추위에 걸음은 더 빨라집니다.
마침내,
다시 눈 덮인 밭이 나타나고 논이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그토록 힘들었던 도형이가 노래를 부릅니다.
“아무도 오지 않은 깊은 산속에...”
“인간승리!”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다리가 불편한 도형이의 무사한 하산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밥 먹을 때를 빼고도 다섯 시간 산을 탔던 모두의 노고를 위해 손뼉!
길을 따라 대해리를 향했지요.
얼어붙은 계곡이 부릅니다.
그냥 가기 섭섭하여 얼음장으로 갑니다.
더러 빠지기도 했겠지요.
갈 길은 아직 멀고, 이제 어이 돌아갈까,
몇 패로 미리 나누어 흘목까지 가는 차를 얻어 타고 대해리로 들어가자 하고
되는대로 걸어봅니다.
다행이 머잖아 모두가 다 오를 수 있는 트럭을 만났지요.
그리고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마지막 2킬로미터를 마저 걷습니다.
“대해리다!”

곰사냥의 재미는 다녀온 다음의 영웅담이라지요.
저 허풍쟁이들...
“다시는 곰 잡으러 가지 않을 테야!”
그림책은 그렇게 끝났던가요.
그러나 이들은 벌써 다음 곰사냥을 위해 날이 풀리길 기다립니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