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나무 아래 우리 아버지 >

옥 영 경


나는 영동을 좋아합니다. ‘우리 영동’을 좋아합니다. ‘너거 영동’이라고 하면 안 어울리거든요.
나는 영동을 좋아합니다. 이 곳엔 사과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과나무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가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호한테서 들었을 겁니다. 청소를 하고 오느라 집에 늦게 왔는데도 아버지께서 벌써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제가 상을 받았거든요. 아버지는 상보다도 제가 쓴 글을 읽고 싶어 하셨습니다. 며칠 전 교내 백일장에서 나온 제목이 ‘아버지’란 걸 말씀드렸거든요.
오월입니다. 저는 이 오월이 너무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좋아하는 게 참 많습니다. 저 하늘, 저 바람, 저 산, 저 사과... 그리고 아버지. 오월이면 사과나무가 하이얀 꽃으로 뒤덮이거든요. 벚꽃하고도 비슷하고 찔레꽃하고도 닮았지만 또 다르답니다. 꿀맛이 나요.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얼마 전에 샤프를 하나 샀는데, 여러 종류 가운데서도 사과향 샤프를 샀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과나무 꽃향기하곤 비길 바가 못 되지만요.
사과밭엔 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우리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 아버진 사람들이 잘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힘이 있습니다. 늦서리가 오는 소리도 들으십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요, 그런 날 밤엔 꼭 밤새도록 모닥불을 피워 밭 공기를 덮여서 사과나무가 죽는 일을 막거든요. 또 우리 아버진 우리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잘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다”
사과가 푸를 때에 글자대로 딱지를 붙여 두고 얼마 뒤에 그걸 떼면 그 글자가 나옵니다. 푸르던 사과가 빠알갛게 물들기 전에 제 이름을 테이프로 써 두셨다가 사과가 물든 뒤 떼서 보여 주십니다.
그건 시험치기 전 날엔
“하다야, 잘 해!”
그런 뜻이구요, 학교에서 야단이라도 맞고 온 날엔
“하다야, 힘내!”
그런 뜻이구요,
“하다야, 사랑해!”
“하다야, 걱정 있니?”
“우리 하다, 잘 했다!”
뭐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자랑입니다. 아버지는 글 잘 쓰는 저를 사랑하십니다. 제가 거짓말로 꾸미거나 하지 않고 그냥 우리 이야기를 해서 그렇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다는 글을 잘 쓰는 모양이다.”
새로 담임이 되신 선생님은 한 사람씩 불러다 상담을 하셨는데, 저한테 그러셨습니다.
지난번에 저는 관찰기록장 대회에서도 상을 받았습니다. 머리뿔가위벌에 대해서 쓴 글입니다. 매미가 사과나무에 놓고 간 알을 관찰하려고 했더니 매미는 7년 동안이나 땅속에 있어야 해서 7년이 지난 뒤에 해야 된다고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우리 아버진 아는 것도 많으시지만 모르는 것도 많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만 잘 한 것도 아주 잘했다고 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반 병식이 아버지는 아는 것이 많은 아주 똑똑한 아버진데 일등하는 병식이한테 앞으로 서울 가서 공부할려면 더 잘해야 한다고, 지금 잘하는 건 잘하는 게 아니라고 한답니다. 그래서 저는 좀 모르는 아버지가 좋습니다.
순전히 아버지가 하시는 사과 농사 때문에 저는 머리뿔가위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집 처마 끝에 갈대를 묶어서 두었습니다. 그 갈대에 머리뿔가위벌이 살게 된 것입니다.
암벌이 꽃가루와 꿀을 가지고 사과를 상자 속에 쌓듯이 갈대 속에다 차곡차곡 쌓은 뒤에 알을 낳거든요. 그 알이 꼭 9일 만에 깨어났습니다. 갈대 하나를 갈라 보면서, 얘는 뭘 먹고 자라냐고 여쭈어봤더니 아버지는 그 옆에 쌓인 꽃가루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그 머리뿔가위벌이 어른벌레가 되는 것도 다 보았습니다. 산이 정말 색색가지로 물들 때였지요.
“아버지, 얘는 겨울을 어떻게 보내요?”
아버지는 갈대를 가리켰습니다. 갈대 속에서 겨울잠을 잔대요.
“그럼 언제 나와요?”
아버진 저 먼 곳을 보셨습니다.
“아, 봄이 올 때구나...”


1996. 5. 4. 토요일. 맑음.
사과나무에 꽃이 피었다. 그제도 어제도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확 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어미머리뿔가위벌이 날아다닌다. 아버지께서 사과 꽃이 필 때 어미머리뿔가위벌도 갈대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1996. 5. 31. 금요일. 맑음.
알았다! 이야, 알았다!
사과밭에는 나쁜 벌레들이 많아서 약을 많이 친다.
오늘은 아버지가 약을 치시는데 어미머리뿔가위벌이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안보인다. 죽었나보다 했다. 아버지는 우리 집을 위해서 사과를 잘 키워야 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슬펐다. 그래서 가만히 마루에 앉아만 있었더니, 아버지가 오셔서 쪽지를 적어주셨다.
“어미머리뿔가위벌은 꽃이 피어 있을 때만 난단다.”
그러고 보니, 비 한번 오고 난 뒤 후두둑 꽃들이 떨어진 뒤로 그 녀석들을 못 보았다. 정말 그렇다. 그렇게 살아서 알을 무사히 잘 낳는 모양이다.


사과는 참 잘 생겼습니다. 저는 사과만큼 잘생긴 것을 못 봤습니다. 낮엔 더워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면 사과는 빨갛게 물이 듭니다. 가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저만치 우리 사과가 보이면 가슴이 설렙니다. 거긴 꼭 아버지도 계시거든요.
병식이네 아버지는 농촌지도소 공무원인데 사과밭도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걔네는 사과가 하도 많아서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서 한꺼번에 다 사 갑니다. 그런데 걔네는 사과를 딸 때 미리 땁니다. 풋맛만 사라지고 나면 한꺼번에 다 따서 넓은 곳에 두고 물을 뿌립니다. 그렇게 며칠 있으면 빨갛게 돼요. 그러면 한꺼번에 다 보낼 수가 있대요. 사과는 물이 닿고 햇볕이 닿고 가을 바람이 닿으면 빨간 물이 드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학교를 갔다 오면서 내기를 하고는 합니다. 집에서 아침에 들고 온 사과를 쪼개어서 누구네 사과가 꿀이 많은가를 봅니다. 그렇게 해서 진 사람이 우리 가방을 전부 듭니다. 하지만 요샌 그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다니는 대해분교가 폐교가 되었거든요. 아이들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나라에서 학교를 계속 있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촌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는데 버스를 타고 다녀서 전에처럼 길게 같이 걷거나 하는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차를 타는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키가 커지기 때문에 멀리서부터 우리 사과밭이 보이거든요.
우리 집은 11월 달에 사과를 땁니다. 누나와 아버지랑 제가 힘을 다 보태도 참 힘이 듭니다. 동네 아저씨들이랑 서로 따 주기도 하지만 자기 집 일 때문에 마음으로 또 말로만 도와줄 수밖에 없을 때가 더 많답니다.
아버지는 일하는 것이 느립니다. 첫 눈이 너무 일찍 내렸을 때를 빼고는요. 그럴 땐 쌓인 눈 때문에 가지가 부러지지나 않나 또 얼어버리지나 않나 해서 서둘러 사과를 땁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일도 못하는 것 같고, 게다가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까 갑갑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버지가 왜 늦게 일을 하는지 다 이해합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와서 아버지한테 갔을 때입니다. 사과나무에 씨가 맺히고 꽃턱이 부풀어 오를 때였습니다. 아버지를 놀래키려고 가만가만 다가갔는데, 아무리 조용히 다가가도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다가 오히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데, 그 날 아버지는 돌처럼 서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바라보고 계신 곳을 보았더니, 그 꽃턱을 싸고 있는 부드러운 털을 보고 계셨습니다. 사과 꽃눈에서 꽃봉오리가 내밀 때도 그렇게 계신 것을 본 적도 있고, 사과 꽃봉오리가 초록색 꽃받침을 밀어내면서 진한 진달래색 같은 꽃잎을 보여줄 때도 그렇게 계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잃게 된 것은 어머니가 죽게 된 그 큰 일 때문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나무랑 얘기를 나누는데 말을 다 써 버리기 때문에 말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내가 자라서 아버지 일을 다 할 줄 알게 되면 아버지는 다시 말을 하실 수 있잖을 지요. 아홉 해만 있으면 저도 스무 살 어른이 되거든요.

나는 영동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사과밭을 너무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엔 사과나무 아래 우리 아버지가 늘 계시기 때문입니다.
(1997.1.31.0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