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꺼비는 왜 두꺼비가 되었던 걸까 >

옥 영 경


무지개 연못은 사연도 많습니다.
일곱 번 쓰러져도 여덟 번 일어나 피리를 불어 웃음꽃을 피우던 개구리도 바로 그 연못에서 살았지요. 그 왜 연못의 독재자 투투와 맞서 싸운 민주투사 개구리 왕눈이 말입니다, 아롬인가요, 그를 사랑하던.
레오 리오니라는 작가가 쓴 동화도 바로 그 무지개 연못이 배경이었습니다. 역사는 흘러흘러 그 연못에 돌이 철이 순이 세 개구리가 날마다 “내꺼야, 내꺼야!” 하고 싸우는 유명한 그 얘기요. 엄청난 폭우로 생명의 위기를 함께 넘긴 뒤 이들은 “우리 꺼야!” 하고 진한 연대감으로 사이좋게 살게 됐더랬지요.
잘은 모르지만 엄마 말을 지독하게 안 듣던 녀석들도 그 연못에 살았던 개구리 아닐까 싶습니다. 연못에 장사지내달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만을 지킨 어리석음으로 비만 오면 제 에미 무덤이 떠내려갈까 우는 그 개구리들요. 무지개 연못에도 비만 오면 구슬피 우는 녀석들 있다 하였으니...
어쨌든 바로 그 무지개 연못 이야기 가운데 알려지지 않은 하나가 있었답니다. 공룡이 살았던 시절도 낱낱이 밝혀지는 세상이니까 묻혀있던 이야기 하나쯤 드러난 게 그리 대수로울 거야 없겠지만 나름대로 쏠쏠히 흥미가 있더라니까요.

이바구 때바가 강때바구,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무지개 연못에는 여전히 개구리들이 밥 먹고 노래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하고 새끼들이 태어나고... 올챙이들은 둥근 입으로 물풀을 먹으며 자라났습니다. 너나없이 한달하고도 반이 지나면 몸통 아랫부분의 양쪽에 생긴 작은 혹이 점점 커져 뒷다리가 되고, 다시 어느 날에 살갗을 뚫고 오른 쪽 앞다리가 나오고, 그 다음날에는 왼쪽 겨드랑이에 있는 아가미 구멍에서 왼쪽 앞다리가 나오고... 그리고 때가 되면, 어미개구리가 될 무렵 물 속에 벗어두었던 허물을 찾아들고 세상 추억 다 싸 짊어져 저 세상으로 설컹 넘어가고, 다시 알들은 올챙이가 되고 개구리가 되고...

그 해, 무척 풍성해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던 무지개 연못은 다들 뭐 재미난 일 어디 없을까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있었습니다. 양쪽 볼을 부풀어 오르게 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턱 밑을 부풀려 친구를 부르기도 하고 그것도 심심하면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뒷다리를 오므려서 물갈퀴를 벌려 누가 더 힘차게 물을 차는지 내기도 했습니다. 힘찰수록 몸을 똑바로 펴서 물을 가르고 나아가는데 더 빠를 수 있으니까요.
하루는 개구리들이 두 다리를 벌리고 둥둥 떠다니며 햇살이 몸에 닿아 더 고와지는 연못 위를 능청능청 즐기고 있었습니다. 난데없이 큰 소리가 나서 죄다 몰려갔지요.
“그러게 살 좀 빼라고 했잖아.”
철수가 연잎 징검다리를 건널 때 거기 앉았던 영희가 물 속으로 떨어진 모양입니다. 영희는 화가 단단히 났고(그게 어디 한 두 차례 있었던 일이어야 말이지요) 철수는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다른 개구리들도 저마다 떠들었지요.
“아유, 정말, 저 살 좀 봐.”
꼭 나쁜 마음으로만 한 소리들이 아니긴 했으나 철수는 슬픔이 패였습니다.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니건만.
전들 왜 다이어트 안 해 봤겠어요. 살을 빼는 풀을 찾아 먹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굶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친구들은 낮에 구멍이나 풀숲에 있기를 더 좋아했고 밤이면 마실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철수는 떠들썩한 밤에도 여전히 풀숲에서 우두커니 앉아 풀잎들을 헤치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무수한 별들이 거기 있었지요. 다 제각각 빛나고 있었습니다. 큰 것도, 작은 것도.
“저긴 뚱뚱하다고 이리 외톨이가 되진 않을 거야.”

어느 날 연못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버지를 닮기도 했고 어머니를 닮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닮은 자기 얼굴인데 왜 이토록 찡그리고 있나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내가 왜 날 부끄러워해야 하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단지 뚱뚱하다는 까닭으로 이리 서글퍼하는 것에 슬금슬금 화가 났습니다.
철수는 주위 개구리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철수 가까이에도 뚱뚱한 친구들이 있었고 저마다 다이어트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뚱뚱함이 서럽지 않은 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 걸까?”
철수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우리 부모가 이러라고 날 낳진 않았어!”

달빛 넘치던 밤, 철수는 몇 뚱뚱한 친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럼 어쩌자구?”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다른 삶을 꿈꾸었습니다. 밤은 새벽으로 가고 있었지요. 마실을 다니던 개구리들이 하나둘 집으로 들 때에도 그들은 지칠 줄 모르고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정말 무슨 수를 내도 내야겠다고 결심했더랬나 봅니다.
“우리 말야, 차라리 개구리이기를 포기하자.”
“무슨 소리야?”
왜 굳이 개구리라는 이름 아래 살아야 하냐고 그들은 되물었습니다.
“우리가 살이 좀 두꺼우니까 두꺼비 어때?”
아, 그렇게 그들은 두꺼비가 되었습니다.
“아예 무지개 연못을 떠날까?”
“떠날 게 뭐 있어?”
“그래, 우리가 연못세상을 바꾸면 되지.”
그들은 편을 모았습니다. 꼭 두꺼비로 불릴 뚱뚱한 개구리가 아니어도 뚱뚱함이 도덕적 기준까지 되는 무지개 연못의 생각을 바꾸려는데 동의하는 이들도 꽤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그 해는 신바람이 났습니다. 더는 날씬해야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그냥 자기이기만 하면 됐으니까요.
그 해, 그 패들은 무지개 연못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들의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이 결코 쉬울 수 없듯이 이들 역시 일 많고 탈 많았습니다. 그들이 싸울 것은 정작 생각이 다른 이들이 아니라 바로 같은 생각 아래 모인 이들 안에서 일어난 생각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때로 그들을 더 절망하게 했지요. 서로 왕이 되고 싶다고 싸우거나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싸우거나 더 맛난 걸 먹겠다고 싸우거나 같은 생각으로 모였다고는 하나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그건 곧 돌이킬 수 없는 싸움으로 커지고 그래서 더러 떠나기도 했습니다. 가끔이지만 새 식구가 들어오기도 하고.
그래도 그들은 노래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고 서로를 격려하고 또 북돋웠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그렇게 그들의 세계가 완성되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 소리가 얼마나 힘차던지 사람들 귀에까지 들렸지요.
“저것들이 왜 저래?”
어른들은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금새 그 노래를 알아챘지요. 애들은 모래성을 쌓으며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어찌되었든, 그렇다고 그 패들이 무지개 연못을 아주 떠난 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고향이니까요. 무엇보다 알만큼은 무지개 연못에서 낳고 싶었지요.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덮쳐 왔습니다. 서로 서로 가까운 곳에서 겨울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경칩을 넘으며 따뜻한 바람이 일고 봄비 땅을 적실 때 하나둘 구멍 속을 나왔지요. 낙엽 밑이나 얕은 구멍 속에서 낮에는 쉬었습니다.
“과악 곽...”
날이 어두워지자 수컷들이 암컷들을 부르고, 암컷은 수컷을 태웠습니다. 차례차례 짝을 이루어 산을 내려왔지요. 길고 긴 줄이 어슬렁어슬렁 뱀처럼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 산에서 길을 잃은 한 사내에게 그 줄이 발견되었습니다. 산을 내려온 사내는 사람들에게 그 신기한 광경을 전했지요.
“꼭 뚱글뚱글한 것들만 가더라니까.”
사람들은 오래 궁금해 했습니다. 왜 꼭 살찐 개구리들만 무리를 지어 같은 때에 같은 곳을 그리 찾아갈 수 있는지 말입니다.
깊은 밤 연못에 닿아 그들은 잔치를 벌였습니다. 물위로 올라왔다 물밑으로 내려갔다가 물장구를 치며 춤을 추고 노래 부르다 마침내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마리가 하룻밤 내내 알을 낳고 또 낳았지요.
알을 낳은 그들은 다시 산으로 되돌아가서 장마철이 될 때까지 달디 단 봄잠을 잤습니다.
햇살 두터운 유월, 땅으로 새끼들이 오르고 있을 녘 잠을 자던 어미들도 눈을 비비며 구멍을 나와 어린 녀석들을 이끌고 두꺼비들의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아직은, 파리와 모기와 잠자리 그리고 달팽이가 넘치는 땅이 아니었지만 행복하기에는 충분한 그 땅으로.
그렇게 수년이 흐르자 그 패거리들의 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다른 개구리들보다 물갈퀴가 작아지고 그런 만큼 헤엄도 서툴게 되었지요. 알을 낳을 때만 산에서 내려왔으니까요.
더는 누구도 그들을 뚱뚱한 개구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두꺼비!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