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마로 가는 길 - 2 >

옥 영 경


사흘쨉니다. 눈에 보이는 건 모래 언덕뿐입니다.
“타르고야, 모래 언덕을 먼저 가면서 길을 찾아 보거라.”
발을 간질이는 모래는 참 느낌이 좋습니다. 언덕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몸을 눕히면 온 몸에 닿는 부드러움도 참말 좋습니다. 길게 뻗은 언덕이 저를 부릅니다. 앞으로 앞으로 뛰어갑니다.
어, 일행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달린 걸까요. 어디를 둘러봐도 없습니다.
겁이 더럭 났지요. 산에서도 그렇다지만 사막에서도 일행을 놓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발은 자꾸 빠지고 점점 힘이 들었습니다. 첫날, 모래 언덕에서 놀던 게 가장 재미나다던 말을 괜히 했다 싶습니다.
“타르고, 타르고!”
다행히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밤에 물기가 없는 낙타 똥으로 피운 모닥불 가에서 물론 아주 혼이 났지요. 어른들은 아주 기회를 단단히 잡은 것처럼 돌아가며 혼을 내킵니다.
“대상은 잃어버린 아이를 찾기 위해 멈추지 않는다!”
잃은 사람을 찾기 위해 머뭇거리면 모두가 위험해지니까요.

낙타 한 마리가 쓰러져 있습니다. 대상무리가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나 봅니다. 낙타의 눈에 하늘이 담겨있습니다. 너무 고요해 보여서 언젠가 본 호수 같았습니다. 눈 안에는 구름도 하늘은 더 없이 높습니다. 그가 도무지 죽은 거 같지가 않아요.
“낙타에게 곧 구데기가 생길 거다. 그러면 호바나이 느시가 찾아오지.”
그 새가 다녀가고 난 밤에는 홀로 사는 줄무늬 하이애나가 찾아온다 합니다.
“사막은 남은 마지막 뼈를 삼킨단다.”
걸어가는 낙타 다리들 사이로 하늘과 사막을 쳐다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입니다. 오래 잊혀지지 않을 풍경입니다. 지는 해는 긴 그림자를 낳습니다. 온통 붉게 타는 하늘 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앞서가는 낙타와 사람들을 보노라면 마치 불 속에 함께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기엔 좋지만 뜨겁지는 않은 불속.
닷새만에는 오아시스에 닿아야 합니다. 낙타도 자기 몸에 저장했던 물을 다 먹은 뒤라 더는 견딜 수가 없게 되거든요. 닷새를 넘길까봐 우리는 이제 밤에도 걷습니다. 두려울 땐 다만 기도를 하지요.

나무 세 그루가 보입니다. 기적처럼 정말 우물이 있습니다. 옛적 울창한 숲의 흔적이라 합니다.
지난 며칠이 먼 과거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낙타에게 먹일 물을 길러야 하니까요. 한꺼번에 110리터를 먹는 낙타들이니까요.
한숨을 돌리니 어른들은 그제서야 제가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너는 낙타를 타고도 자는 법을 알아냈더구나. 떨어질듯 떨어질듯 하면서도 흔들흔들...”
“괜찮니?”
“끝까지 갈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됐다.”
낙타 안장에 새긴 상처에 소독도 해야 합니다. 불로 지지는 게 잔인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을 위해서입니다. 낙타는 어른들 네 사람 몫을 거뜬히 하는데 그들 가운데 한 마리만 사라져도 여간 곤란한 게 아니지요.

다시 빌마로 향합니다. 오아시스 도시인 그곳에는 물이 마른 소금 호수에 염전이 있습니다. 움푹하게 파진 땅은 다 소금을 얻기 위한 곳이라 해요. 거기 사는 투부족에게서 우리는 소금을 삽니다. 질이 뛰어나서 빌마의 소금이라 하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고 해요.
집을 떠나온 지 까마득합니다. 빌마는 아득하기만 하고. 언제나 오늘이 젤 긴 듯합니다. 한걸음 한걸음이 이젠 정말이지 무겁습니다.
“보인다!”
낙타 등에서 자다가 소리에 깼습니다.
빌마가 절벽부터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절벽들은 여행객들을 위로하려고 노래를 불렀다 합니다. 오랜 여행객의 귀에는 들린다더니 타르고의 귀에도 아련히 들리는 듯합니다.
염전은 넓었습니다. 기둥 같은 틀에다 소금을 넣어 거꾸로 세워 다지고 틀을 빼니 작은 소금기둥이 됩니다. 그런 기둥이 셀 수 없이 줄을 맞추고 있네요.
우리가 소금을 사고 있을 때 트럭도 와서 소금을 삽니다. 그들은 쉴 필요가 없이 빌마를 떠났죠. 한꺼번에 많은 소금을 사니 조금 부서져도 상관이 없으므로 그들은 빠르게 싣고 떠납니다.
그래서 시기를 잘 맞추지 않으면 소금 장사가 허탕이 될 수도 있다 들었습니다. 빌마에서 보통 열흘을 쉬어야 한다는데 우리는 닷새 만에 다시 짐을 꾸려 남쪽 시장으로 향합니다. 아침 저녁 소금을 낙타 등에서 오르내려야 하므로 짚으로 조심스레 하나씩 싸야 하니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 소금으로 곡식도 사고 옷도 살 테지요.
서두르지만 사막의 끄트머리 고대사원 에케디에 들리는 걸 잊지는 않았습니다. 여행이 잘되고 못되는 것에 상관없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신께 기도 합니다. 모두 엎드려 절을 하고 한 사람씩 사원을 돌며 바위를 찬찬히 쓰다듬고 얼굴에 그 기운을 묻힙니다. 마치 신의 손길이 제게도 미치는 것 같았지요.
남쪽 시장에서 장사를 마치고 다시 2400킬로미터를 돌아가면 석류나무 대신 새 계절의 다른 것들이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친구들에게서는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들을 것이고, 저는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겠지요.
쓰러진 낙타처럼 죽은 것이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고 싶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오지 않은 날들을 너무 걱정할 건 아니라고, 우리들이 지닌 소망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다가 우리 손이 닿지 않은 것은 마음을 무릎에 붙이고 기도를 함께 하자고...
고되기도 하지만, 사막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할 말이 더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