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할머니의 명당 - 2 >

옥 영 경


“할매요, 할매요.”
성구네 아줌마가 뛰어옵니다. 성구네 집 전화는 동네에 몇 안 되는 전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할매요, 전화왔어요!”
어머니일 겁니다. 우리 집에 전화하는 사람은 우리 어머니밖에 없으니까요. 아니 아주 가끔 이모들도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갑십니다.”
성구 아줌마가 걱정을 합니다.
나도 따라갑니다.
“일 안하고...”
그러면서도 가라고는 안 하십니다.
“그래. 알았다. 전화세 올라간다. 끊어라.”
몇 마디 들으시더니 할머니는 그만 전화를 놓으십니다.
“애 에미가 다쳤는갑다.”
“우짜다가예?”
“내사 잘 아나?”
“아이구, 할마시 또 밤잠 못자겄다.”
성구네 아줌마 걱정을 뒤로하고 와서 고구마를 자루 자루에 담습니다. 할머닌 더 자세히 얘길 안하십니다.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그런 게 있다, 그렇게 말씀하실 거니까요.
마지막 남은 작은 자루를 이고 집에 오니 할머니는 벌써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삽짝으로 나가 도랑에 손을 닦습니다. 수돗가에서 씻는 것보다 이게 더 좋습니다. 여름 내내도 여기서 세수를 많이 합니다. 아침에 잠깐 햇살이 이 작은 물에서 놀면 난 오래오래 손으로 그걸 붙잡아 봅니다.
“또!”
할머니 그 소리에야 아침을 먹으러 들어가기 일쑤지요.

“들어 온나.”
마루에 오르자마자 부르십니다. 기도를 하신 모양입니다. 빨간 천이 걷힌 명당에 촛불이 켜져 있습니다.
“세상은 사람 손만으로 안되는 게 있다. 그럴 땐 하는 데까지 애를 쓰다가 저 높은 곳에 있는 큰 힘들 앞에 기도를 하는 거다.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건지 아나?”
“...”
“그렇다고 기도만 하면 쓰나. 사람 손으로 할 것 다 하면서 그래야 되지... 너거 엄마 다쳤단다. 하루만 장사 안 해도 손해가 많을 낀데...“
할머니는 어머니랑 사이가 썩 좋진 않습니다. 그건 다 저 명당 때문입니다. 집안에 신기가 있으면 그게 또 자식한테 대물림을 하는 거라 합니다. 누가 받아도 그 신기를 받아야 집이 평안하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의 신기가 바로 어머니한테로 간 거지요.
처음 어머니는 가게에 딸린 골방에다 작은 명당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농사꺼리를 어머니한테 갖다 주러 다녀오셨을 때 할머니는 엄청 화가 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명당을 없앴더랍니다.
“나는 내 자식한테는 이런 거 안 물려줄랍니다.”
어머니가 그러면서 없앴다는 건, 나중에 째보 할매가 한 밤에 놀러와서 할머니랑 주고받는 이야기를 이불 속에서 들어서야 알았지요.
“살라고 하는 짓인데 내가 뭐라 그러겠노. 하지만 애새끼들 앞길 막을까봐 그라지. 여자가 혼자 술장사하면 혹시 놀림이나 안받을까, 어린 애들 앞길 망치진 않을까 싶어서.. 저거가 내 속을 어찌 다 알겠노...”
어머니가 술집 하는 걸 말리다 어쩔 수 없다 싶어 잔소리를 그만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었습니다. 할머닌 어머니가 다친 게 아무래도 명당을 뜯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다시 절을 하고 계신 할머니를 두고 나왔습니다.
아래채 지붕에 낮은 쪽으로 사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슬레트 지붕인 아래채는 무며 산나물이며 고구마를 삶아 썰어 넌 빼때기(고구마를 삶아 말린 것)들이 늘 있습니다. 무랑 호박도. 할머니가 사다리를 두어 칸 올라가서 바구니를 주면 지붕에 있던 내가 알맞게 널어놓고 합니다.
햇볕이 너무 따갑지는 않는 날, 그것도 살랑살랑 바람까지 기분 좋게 부는 날이면 나는 아래채 지붕에 오릅니다. 화장실 아래 성구네 밭가 후미진 데는 고마리가 지천입니다. 분홍색과 흰색이 섞인 것도 곱지만 하얀 색만으로 밥풀 같은 꽃은 더 이쁩니다. 담장을 타고 오른 며느리배꼽이며 꼭두서니도 보이지요.
큰길을 내려다보는데도 아래채는 좋습니다. 물론 납딱 감나무에 오래 오래 앉아서 큰길을 보기도 하지만, 여긴 어두울 때도 오를 수 있거든요.
달이 밝은 날도 여기 올라 달이 내려앉은 마당이며 하늘타리 매달린 담장이며를 봅니다. 가끔 어른들이 ‘술에 취한다’라고 하는 말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달빛아래 앉아 있을 땐. 아주 가끔씩 큰 길로 지나가는 차가 분위기를 깨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언잖을 것도 없습니다.
오늘같이 우울하거나 쓸쓸할 때도 이렇게 지붕에 오르는 건 위로가 됩니다.
할머니는 저녁을 드시고 초를 챙겨 산으로 가셨습니다. 할머닌 한 밤에도 산에 잘 올라가십니다. 깊은 골 어느 바위 위에서 밤새 기도하고 오셔서 문을 열면 난 먼 꿈나라에서 허적이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할머니를 그 신들은 지켜주고 계신 걸까요?

한 번은 정민이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자매님!”
사람들은 오랫동안 봐왔던 것처럼 친절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대표 기도하는 사람 말을 들으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을 정말 애쓰며 사는 착한 사람들이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겨우 일기를 쓰는 때나 하는 반성을 저렇게 겸손하게 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세상을 환하게 만드는 사람들일 거다, ...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거야. 그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거지. 그러니까 니네 할머니 제사지낼 때도 넌 절을 해서는 안돼.”
정민이는 제사 많은 우리 집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사만이 아니라 그 엄청난 명당이며 굿이며...
그 때 우리 곁엔 인숙이라는 친구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는데, 교회를 다니면 사람들한테 훨씬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정민이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할머니께 하게 됐는데, 그잖아도 내가 교회 가는 걸 탐탁잖아 하시던 할머니는 이제 그만 다니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남 생각도 하는 게 교회지 자기들끼리만 좋을 라고 하면 그게 무슨 교회고. 교회 다니는 사람한테만 주는 도움이면 그게 무슨 올바른 하느님이고?”
‘할머니 믿는 신은 정민이네 신도 신이라는데, 정민이가 믿는 신은 왜 할머니가 믿는 신을 신이 아니라고 하는 거지? 선생님 말씀대로 비과학적인 신이라 그런 걸까?’

오래 오래 고생할 거라는 어머닌 금세 나았습니다. 다리뼈도 제대로 잘 붙었답니다.
“할머니 믿는 신은 힘이 센 갑네예?”
“간절한 마음이면 어디 건 닿는 법이다. 바램이 차고 넘치면 이루어지는 벱이지.”

요새 몸이 안 좋은 할머니는 정성이 부족해서 다 그런 거라고 명당을 구석구석 애써서 청소하십니다, 명당에 쓰는 그릇인 ‘제기’도 정성스럽게 닦으시고.
할머니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사셨는데도 여전히 세상 사는 일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십니다. 그렇게 많이 살아서 아는 것도 많을 텐데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니다. 많이 살아서 자신 있는 것도 많을 텐데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사십니다.
나는 곧 중학생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주 내게 틀림없이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와 세상의 훌륭한 일꾼이 될 거라고 기댈 합니다. 나도 역시 그런 큰 꿈을 꾸며 가끔 산으로 이어지는 이 오솔길을 걷습니다. 빨리 자라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서 이 산길 저 청미래덩굴 빠알간 열매 같은 숨은 보석들, 귀한 어떤 것들을 찾고 싶습니다. 알아도 알아도 아는 척 하는 것에 힘주지 않고 자신 있어도 자신 있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할 겁니다. 정말 신이란 게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겸손하게 할머니의 그 기도하는 마음을 닮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