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옮겨 놓습니다.


< 남의 나라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땐 >


“무슨 일이야?”
남편이 급히 들어섭니다.
화장실에 있는 사이에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 아이는 일단 집으로 오라는 말만을 했다 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서던 남편과 다운타운의 한 건물 앞에서 점심 때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남쪽에 있는 박물관을 가기로 했지요. 그런데 가던 걸음을 접고 모자가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생일은 자신을 이 세상에 내준 부모님께 감사하는 날이야."
생일 선물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의 분위기에서 이렇게 아이의 기대치를 일찌감치 잘라왔으니 이번 생일이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 아이의 생일에 가족이 한 지붕에 모인 건 몇 해 만이라 정작 아비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했지요. 주말에는 뮤지컬을 하나 보러 가기로 예약을 해놓았고, 오늘은 먼 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바리바리 도시락을 싸고, 도서관에서 하는 ‘북 리포팅’에 먼저 참석하러 갔지요.

도서관은 한산했습니다. 평일 점심 무렵이니 더 그랬을 겝니다. 둥근 테이블이 네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 방에는 어린 두 아이랑 책을 읽고 있는 엄마가 한 테이블에 앉았을 뿐입니다. 다른 테이블 위에 도시락 가방, 그리고 또 다른 가방을 놓고 책을 골라와 읽었지요.
아이는 공간을 분리하고 있는 낮은 책장을 지나 어린이 공간 담당 사서와 자원봉사자가 있는 쪽으로 가서 자신의 북 리포팅 폴더를 찾아내 책을 읽은 소감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다 하던 작업이 잘 안 풀렸던지 이 편의 엄마를 부릅니다.

잠시 건너가 마무리 하는 걸 도와주고 널린 그림도구들을 한켠으로 정리하고 일어섰지요. 약속 시간을 잘 맞출 수 있겠습니다.
어린이 책 공간으로 가서 테이블 위에 있던 가방을 드는 순간 이상한 예감에 얼른 안을 열었습니다. 이런! 지갑이 없는 겁니다.
일어나 인사를 건네려던 사서가 더 당황해 합니다. 들고 온 게 맞냐, 경찰에 신고 할 거냐, 남편이랑 약속은 어떻게 하냐...
“어린이 공간이란 걸 너무 믿었던 거지요, 뭐.”

제가요, 사실 지갑분실 전력이 여럿 됩니다.
“자기같이 야문 사람이, 뭘 칠칠맞게 흘리고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꼭 지갑은 그렇게 잃어버리더라.”
남편이 자신의 미국 신용카드부터 정지를 시키며(같은 구좌로 연결된 제 2카드를 제가 쓰고 있었으니까요) 짧은 잔소리를 했지요.
“누군가 잘 썼다면 공덕이지.”
“그러니 잃어버리지.”
“아니, 왜 남의 지갑을 가져 가냐구?”
“견물생심인 법이니까.”
“가방을 열어서까지 가져갔잖아. 나빠.”

지갑 같은 건 가져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 일이 잊힐 쯤이면 또 지갑을 잃어버릴 지도 모르겠네요.

낯선 나라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참 난감합니다. 모자는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2층의 성인공간으로 갔습니다. 2층의 사서가 저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어린이관 쪽 사서가 안내를 해주었지요.

경찰서에 연락을 했습니다. 당황스럽거나 도저히 말 한 마디 안나올 만큼 낙담한 상황이라면, 게다 그 나라 말까지 서툴다면 이 나라 말이 나의 제 1언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통역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기야 말이 어눌하다면 자신의 국적만 밝혀도 통역인과 연결됩니다. 그러면 경찰과 통역과 통화자, 그렇게 3자가 연결되어 리포트를 작성할 수 있지요.

만약 카드나 지갑에 있던 것들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생길 때 이 리포트의 기록은 중요합니다. 리포팅 번호를 바로 부여받으니 기록을 해두면 되고, 머무는 곳이 확실하면 그곳으로 경찰이 보내주는 서류를 받아둘 수도 있습니다.

외국 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자보험을 넣어두면 갑자기 병원을 간다든가 하는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는 오는 마지막 날까지 원고 하나를 마감하느라 부랴부랴 짐을 싸야 해서 놓쳤지만, 다른 때는 여행자보험덕을 보았지요. 물론 잘 간수하는 게 최선인 거야 두말해 무엇하려나요. 호주에서도 같은 경험을 하여 경찰에서 리포터를 작성해두었는데, 그것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지갑과 들어있던 현금에 대해 보상을 받았답니다.

다음은 카드를 정지시켜두는 겁니다. 인터넷이 아니어도 그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거든요. 카드는 현지에서 바로 다시 받을 수 있답니다. 여권이 들어있었다면 대사관에 연락부터도 해야겠지요.
도서관을 나오기 전 모자는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한 뒤 화장실을 뒤집니다. 현금만 꺼내고 버려놓을 수도 있다는 사서의 도움말 때문이었답니다. 아쉽게도, 없었지요.

사람살이 어데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다시 생각하는 교훈! 지갑을 잃으면 경찰서에 가서, 혹은 전화로 분실리포트부터 작성해둘 것.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불이익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여행자보험을 넣었다면 보상까지도 받을 수 있으므로.

그리고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할 것. “사람이 할퀸 상처는 아니잖아. 더구나 아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이 가져간 건데 왜 그건 상처가 아니냐구요? 얼마나 아쉬우면 그랬을까요. 나를 해꼬지하려고 한 짓은 아닐 겁니다. 다만 속이 상한 것일 뿐.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챙겨야하는 것들이고 더러 중요한 메모며들이 같이 날아갔을 테니까.

(2006년 6월 14일 물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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