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밥을 합니다

조회 수 906 추천 수 0 2009.03.16 22:48:00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오전 10시 12분 54초 +0900

이제야 답장을 보내네요.

양평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달력을 보고 엄마가 벌써 한달이 다 되었네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더라구요.

사망신고를 한 달이내에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나온다기에
(어찌나 착한 국민인지) 기일을 어기지 않기 위해 날짜를 세고 있더랬습니다.
시간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사실로 신속히 확인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살구꽃이 피면 연락을 달라고
빈이를 데리고 가겠다 말씀드렸었는데 올봄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양평에서 취직했거든요.
전교생이 60명이 안 되는 초등학교에 돌봄교사 모집공고가 나서
어쩌다 지원하고 또 어쩌다 합격해서 출근한 지 일주일입니다.

1년 계약직인데 주로 하는 일은
학교가 파하고 집에 가지 못(?) 하거나 안(?) 하거나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아이들의 신청을 받아
놀아주고 저녁을 먹여 보내는 일입니다.
저에게 '밥'과 관련된 일들과 사건사고들이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성빈이는 이 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닙니다.
같이 출근해서 빈이는 엄마가 4시 30분에 데려가고 저는 7시까지 일을 합니다.

새로 만나는 상황과 사람들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일단 밥을 합니다.
저녁을 세그릇씩 먹는 녀석들이 있거든요.
어찌됐던 1년은 양평에서 보낼 생각입니다.

물꼬의 살구꽃을 보지 못 하게 될 듯 해 몹시 아쉽습니다.

밥하는 실력을 더욱 연마하여
여름 계자에 보태 볼까요?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또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

* 선정샘으로부터 글이 왔습니다.
"이제야"로 이름 붙은 글월을 저는 "일단 밥을 합니다"로 고쳐 부릅니다.
지난 글월에 이어 '밥 2탄'이 되는 건가요.

그래요, 순전히 밥 때문입니다.
밥 말입니다
(물론, 어디 그것만이 까닭이겠는지요만).
눈 앞에 형제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걸 보면서도,
자식을 앞세우고도,
때가 되어 곡기를 넣고 있으면
사는 일이 참 징헐 테지요.
아비를 잃고 자식을 잃고도
남은 이들을 위해 일단 밥을 합니다.
산 자들을 위해 밥을 합니다.
이 골짝에서 오늘도 그리 밥을 했지요.

샘, 아실지요,
샘의 글월을 읽으며 밥 잘 먹고 잘 살고 싶었습니다.
힘에 겨운 보따리를 나누었거나
먼 길을 가던 두 아낙이 그늘로 들어 다리쉼을 하는 글이었더이다.

고맙습니다.
양평의 봄날 속에서 복사꽃 살구꽃 보시거들랑
대해리거니 여겨주소서.
성빈이도 퍽 보고픕니다.

모두 건강하옵길.
품성 좋은 따님을 길러내신 어머님도 언젠가 뵈옵기를 바랍니다.


옥영경

2009.03.20 00:00:00
*.155.246.137

그래요, 샘, 일단 밥을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물꼬를 다녀간 박상규님의 10일간의 기록 [5] 박상규 2003-12-23 125097
1738 Re..<물꼬통신원>지금 물꼬는.. 김재은 2002-09-06 893
1737 나는 무슨샘이가 하면... 김희정 2002-04-08 893
1736 [초등6학년] 예비중학생을 위한 겨울방학 집중캠프 유학가자 image 아이플랜센터 2009-12-08 892
1735 옥샘 저 현곤이요... [1] 현곤 2009-09-04 892
1734 2008 푸드뱅크&#8228;푸드마켓 식품후원 한마당 서울시사회복지협의회 2008-05-06 892
1733 제가 만든 눈사람 file 장선진 2007-12-11 892
1732 글쓰기 됩니다 물꼬 2006-09-27 892
1731 잘 도착했습니다! [4] 선진 2006-01-26 892
1730 10월 8일 벼벨 거래요 물꼬생태공동체 2005-10-08 892
1729 입금완료 [1] 창욱이고모 2005-09-11 892
1728 최고의 학교 [4] 정소희 2005-08-22 892
1727 매듭잔치 file [1] 도형빠 2004-12-27 892
1726 비가 쏟아지는데.. [1] 구리정아 2004-07-16 892
1725 물꼬를 우리에게도 터 주시기를..... [1] 권순영 2004-04-23 892
1724 제목 없음. [1] 조인영 2003-10-29 892
1723 Re.. 고맙습니다. 신상범 2002-01-09 892
1722 Re.어쩌나~! 박의숙 2001-12-31 892
1721 기적은 진행중... [2] 김미향 2010-10-25 891
1720 세영이 보내요~♡ [1] 오세영 2010-07-22 891
1719 물꼬에서 지내면서... [5] 희중 2010-03-18 89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