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 하하하

조회 수 870 추천 수 0 2009.06.01 23:12:00

수민아...

이제 정말 우리가 동시대 성인으로 살아가는 게 실감난다 싶으이.
우리 처음 만난 때가 초등 3학년 때?

네가 쓴 글들을 곱씹는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그냥 버팅기고 있는 중이라는.
세상도 그렇고, 내 삶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나도 학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대해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낼 여름날의 열기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한몫하리라.

“어떤 교수님은 지금 가장 슬퍼해야하는 것은 대학생들인데,
사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훌륭한 교수님을 두었구나.
변방의 작은 대학들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대학은 국상(國喪)중에
(국민 모두 상복(喪服)을 입던 왕실의 초상을 일컫는 말이긴 하나
국민의 전체 이름으로 치르는 국민장이 그 의미랑 무에 다르겠냐)
sexy dance를 주제로 축제를 했다고도 한다,
준비하느라고 얼마나들 애들을 썼을까만,
그래서 결국 치를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이 없지야 않았겠으나.
안타까워 그예 글 하나를 학생회 앞으로 쓰기도 했더랬다.

“...
명색이 대학입니다.
시대가 어찌 변했더라도
대학, 그래도 여전히 상아탑 아래 있다 믿습니다.
진리가 있고
저항하는 기상이 있으며
고뇌하는 젊음이 있고
항거하는 우직함이 있으며
역사를 인식하는 의기가 있는 곳 아닐지요.
바로 그들을 대표하는 곳이 학생회이겠습니다.
80년대 뜨거웠던 시대를 재현하는 학생회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학생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본분'이 있지 않을까,
정녕 고민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학생회는 그럴 책무가 있습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이들조차 날아오는 등록고지서를 통해
일괄적으로 납부하는 것이 바로 학생회비입니다.
학생회 존립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그것이고,
그래서 더욱 공적인 존재로서의 역할을 외면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를 들먹였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답니다.
1990년 이란 북부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코케 마을로
감독인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길을 떠납니다.
지나는 이들을 태워주기도 하지요.
"세상이 이런데 뭘 사오세요?"
"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산 사람은 또 먹고 살아야..."
집들은 무너지고 숱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지만
머리를 감고 화분에 물을 주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무너진 더미에서 주전자를 찾아내고 카펫을 꺼내고,
월드컵을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설치하고,
결혼을 하고 토마토를 나누고 이웃을 거드는 이들이 화면을 채우지요.
아, 산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네, 온 나라가 뒤숭숭한 속에도 우리 삶은
연구세심(年久歲深) 흐르는 강물처럼 그리 흘러가고 있다 싶습니다.
고인이 들으시면 서운할지 모를 일이지만
사람 나고 죽는 일이 무에 그리 대수일까요,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가지요.
죽은 이를 둘러싼 세상이 아무리 황망하여도
그래도 밥을 먹고 그래도 일을 하고 그래도 수업을 듣고
그리고 숙제를 해야겠지요,
죽지 않고 살아갈 거라면.
그러나 역사로부터 단절된 개인이 어딨으며
시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 어디 있답니까...”

망연하여
이적지 상복을 입고 다니는구나.
한동안도 그러지 싶다.

아, 그래, 그래, 기다리마.
언제 들어와서 언제 나갈 건지 기간을 잘 헤아려
다시 연락다고.

두루 안부전하고.

염수민

2009.06.01 00:00:00
*.155.246.137

토요일, 원래 주점이 예정되어 있던 저희 학교는 학생회 측에서 주점을 취소하였다지요. 들인 돈도 있고 아이들이 한 고생도 있기에 아쉽긴 했지만 그게 맞는 거 같긴 하더라고요. 아쉬운 거라면 그래서 월요일로 미뤄진 주점이 학교 측의 장소 대여 불가라는 농간으로 완전 물 건너 갔다는 거에요. 아, 옥샘 그리고 요즘 학교 사람들과 학교 안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오는 걸 우리 힘으로 막아보려고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네요. 씁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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