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11.흙날. 비 지나니 또 떨어진 기온

조회 수 1487 추천 수 0 2008.10.20 04:54:00

2008.10.11.흙날. 비 지나니 또 떨어진 기온


한밤입니다.
달이 어찌나 밝은지요.
마을을 지나 달골에 올라 내려다보니 온 천지가 화안합니다.
마을 가운데서 학교 마당은 불빛으로 훤했지요.
불을 꺼보라고 할 걸,
달빛에 충분히 서로의 눈까지 보일텐데,
불을 켜둔 것에 익숙해서 미처 아무도 그 생각을 못하지 싶습니다.
이 고운 산자락에서
달빛이 내려앉은 산야에 젖는 것도 고운 일일 것을, 안타깝습니다.

족히 예순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틀 동안 바깥 사람들이 학교 공간을 쓰기로 하였지요.
본관과 고래방, 그리고 마당에서
귀농사랑방모임의 가을맞이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식구들이 대청소를 바삐 했지요.
손님 치른다고 따로 준비할 여력이 없으니
사정을 헤아리고 오십사하였으나
그래도 쓸고 닦는 거야 해두어야지요.
끝나지 않은 공사로 더 부산스러운 요즘이었는 데다
여전히 재료들이 마당 한켠에 쌓여있어 너저분함이 더합니다.
시골살림, 특히 오래된 폐교는 참 윤이 나지 않습니다.
이게 그래요, 하면 표 안 나지만
안하면 또 표 나는 게 낡은 살림의 특징이랍니다.
어쨌든 덕분에 청소 한 판 했네요,
해도 해도 끝없는 낡고 오래된 구석들을
(이런, 큰해우소는 아무래도 아무도 손을 못 댔지 싶은데...).

열한 시께부터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부엌에선 그들을 위해 국수를 삶고 또 삶아내고 있었습니다.
물꼬 식구들도 잘 말아 먹었지요.
곳곳에서 회원들의 협찬 물품들이 도착하기도 하고
작은 농산물장터도 열렸습니다.
물꼬도 몇 가지를 구색으로 내다 놨지요.
오후엔 간수대신 붉나무로 두부도 만들었다고 하고
산골짝 색소폰 연주가 일품이었다 하고
꽃차산방님이 꽃차를 우려내서 좋았다고도 하고
불가에서 나눈 정담이 구운 고구마만큼 달콤했다고도 했습니다.
대전을 좀 나갔다 오느라고 그 좋은 구경들을 다 놓치고 말았네요.

저녁에는 우려했던 한 가지 문제가 등장하여 좀 시끄러웠습니다.
속이 상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라나요.
분명 달골 창고동을 쓰지 않기로 했고
그래서 기름을 넣어놓지도, 청소를 해두지도 못하였는데,
난롯가에 나무도 들여놓지 않았는데,
공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 것입니다.
서로 의견조율도 없이
달골로 올라간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었지요.
“이런 줄 알았으면 (이곳으로 장소 결정)안했을 거예요.”
어느 여자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난방도 없이 공간을 왜 내주었냐는 비난으로 들렸습니다.
분명 우리가 공간을 대여해주는 곳이 아니라는 상황을 전했고,
이곳 시월의 밤은 한겨울에 다름 아니며
그렇더라도 우리가 화목보일러에 불을 때줄 처지가 못 된다 했지요.
그런데도,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도 있고
한겨울에 야외 잠자리도 끄덕없다며
굳이 이곳으로 결정했던 분들이셨습니다.
더구나 답사도 다녀갔고,
그러면서 학교와 달골 공간 둘 가운데
학교 공간만을 쓴다고 최종 확인을 받았구요.
그래도 이곳을 쓰는 데 끝까지 말리지 못했던 건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고,
우리가 필요하다니 쓰이고 싶었던 거고,
뭐 덤으로 물꼬살림에 보탬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얇은 이불이 있는데,
그래도 가능하면 차로들 오는 길이니
담요나 침낭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였지요.
그런데 마치 말도 안 되는 공간을 돈으로 빌려준 사람들이 된 것만 같아
영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좋은 일 하려던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할까 운영진과 논의가 있었습니다.
무리하게라도 달골로 올라가는 걸로 하자,
아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는데 알아서들 하도록 하자,
분분하다가 결국 숨꼬방에 우선 난방을 하고
여자들과 아이들이 자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불 환히 밝혀두고 빡빡 닦아두었던 본관 모둠방 둘은
불을 꺼야 했지요.
그런데, 숨꼬방도 저녁에야 불을 넣었으면
새벽녘에 가서야 그나마 따사로운 기운 감돌텐데,
아니나 다를까 또 그런 얘기가 나왔네요.
“일찍 좀 (불을)넣어두지...”
아니, 그게 어디 물꼬 실수랍니까.
그럴 때 누가 그건 물꼬측의 책임이 아님을 변명 좀 해주지 싶데요.
아닙니다, 미처 그런 걸 헤아리지 못한 실수는 있겠네요.
어쨌든 일을 준비하는 쪽에서 들어야할 얘기들을 물꼬가 듣는다 싶어,
사실 공동체식구들이 빌려주지 말라 말리던 일을 무리하게 한 저로서는
내내 가시방석이었답니다.
우리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고생시키고...
(딱히 뭐 일을 하지 않아도 낯선 이들이 와 있고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 대기하고 있는 게 이미 일이지요.)

그리고 한 또 하나의 실수.
무리해서라도 잠잘 이들은 달골로 이동하자고 했어야는데...
식구들이 애를 먹더라도 서둘러 청소 좀 하고
난로에 불 지피고 바닥에 불 넣고 할 걸.
어쨌든 겨울 같은 밤은 깊어갑니다요,
모임구성원들끼리 충분히 협의되지 않았던 일이
고스란히 물꼬에 대한 비난으로 넘겨진 것 같아
불편한 마음 가셔지지 않은 채.


참, 한남대에서 춤을 추고 온 날입니다.
옛이야기를 가지고 춤으로 바꿔본 것이지요.
사과 씨 하나와 빗방울 흩뿌리는 병과 이슬 머금은 거미줄과
별님 새의 깃털과 햇살 한 줌과 무지개 한 조각과
그리고 노래 한 가락이 어우러진 춤이었답니다.
아이들과 겨울에 해볼 수 있으려나 가늠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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