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9.나무날. 맑음 / 단식 첫날

조회 수 1202 추천 수 0 2009.11.27 11:02:00

2009.11.19.나무날. 맑음 / 단식 첫날


하늘 좀 보십시오,
저녁달이 떴습니다.
공주의 손톱달인 바로 그 가냘픈 초승달이랍니다!
곱기도 곱기도 어쩜 저리 고울지요.
풀렸다는 날씨는 여전히 맵네요.

“전화기 좀 꺼내볼래?”
“네.”
“ooo을 찾아서...”
“ooo!”
달리는 차에서 뒤에 앉은 아이에게
손전화의 전화번호부를 열게 하고 사람을 찾게 합니다.
“열한시에...”
“열한시에...”
“띄어쓰기는 안 해도 되고.”
“알아요.”
“어디로.”
“어디로.”
“가면.”
“가면.”
아이가 전할 말을 받아 문자메시지를 작성합니다.
“다 됐어요.”
“보자, 아이다, 읽어줘 봐라.”
아이의 문자대필(?)은 제 어린 날을 언제나 끌고 옵니다.
외가에서 오래 살며
외할머니와 딸들, 그러니까 이모들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받아쓰면서
외할머니가 하시는 생각을 들여다보고
어른들의 관계를 이해하고는 하였더랍니다.
그 세계는 온 논밭과 산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세계와는 다른 고민과 걱정이 있었고
그 세계만의 절박함들이 있었지요.
호박 줄기를 따서 국수를 말던 소꿉놀이 속과는 다른
삶의 어떤 무게들이 거대한 삶이라는 산자락을 이루고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사람살이의 지난한 과정이
일찍이 막연하나마 그려지던 시간이었던 건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도 그럴까요,
어쩌다 삶이 너무 무거워져버리는 건 아닐라나
경계해야겠단 생각이 듭디다.
삶이 어찌 다 고행이라고만 할지요...

한 대학의 학보에 객원으로 글 하나 쓰게 됐습니다.
참 오래 전의 일을 다시 해봅니다.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서 아들딸 같은 연배의 사람들,
혹은 손주들 같은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을 드나들고 있는 이들을
달에 한 차례씩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지요.
잡지사 객원기자 일을 하던 시절
두 가지 아주 즐겼던 일이
여행지를 가는 것과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더랬습니다.
이번에는 예순도 더 지난 할머니 학생을
낮에 만났더랬지요.

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이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가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나날이 퇴색되어가는 감각을 살리는 과정으로
바느질을 꾸준히 하게 되었고
상품으로까지 물건을 내고 계시다지요.
뜻하지 않은 선물로 문득 자기 생이 귀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무어여서 이런 선물을 다 받는가,
잘 살아야겠다 다시 마음을 다 잡아지더라고나 할까요.
고맙습니다.
이런 귀한 걸 들고 다닐 만큼 제 생이 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들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잘 쓰겠습니다.

가을 단식 첫 날입니다.
좀 늦었습니다.
몇 해 전 한 겨울에 하고 혼이 나고는
추운 때는 피하려는데,
그러고 보니 재작년도 겨울 지날 무렵 하였네요,
날 한 번 받기가 쉽잖습니다.
지난 닷새를 조금씩 감식을 해왔고,
이번에는 특히나 장을 잘 살피고 시작했습니다.
밤에 마그밀도 미리 챙겨먹고,
주말에 여기까지 오지는 못해도 함께 하겠다는 이들에게
안내 메일도 꼼꼼이 적어서 보냈습니다.
두통이 좀 있습니다.
단식을 할 땐 어떤 변화들이 몸에 있고,
그것을 민감하게 들여다보게 되지요.
몸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가장 간단하게 지킬 것들만 지키기로 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만큼 가벼이 지나갈 수 있도록.
- 단식 전: 감식, 마그밀로 장 미리 비우기, 읽을거리 준비, ...
- 단식 중: 뒤통수냉각법, 붕어운동, 모관운동, 합장합척운동, 국선도수련, 운전 않기
- 단식 후: 회복식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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